9시는 아니구나

커피도 아니구나

by 박솔

보통 우리집 아이들이 9시 반에서 10시 사이에 잠이 든다. 아이들 하원, 하교시간부터 10시까지는 여지없이아이들한테 메여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어제는 고맙게도 둘다 피곤해해서 평소보다 일찍 방으로 들어갔다. 정말 고마웠다. 아이들은 예상대로 일찍 잠들었고, 거실로 나와보니 9시가 채 안 되어 있었다. 이제부터 온전히 내 시간이라는 얘기다. 만세. 9시부터 자유라니.

아이들이 태어나고부터 나의 가장 큰 소원은 내 시간을 원없이 써보는 것이다.(플러스 숙면) 늦게 들어오고 출장이 많은 남편으로 인해 내 시간을 통째로 아이들에게 넘겨줬었다. 그런 시간을 꽤 오래 살았다. 잠깐이라도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쓸 수 없다는 건 너무 큰 스트레스였다. 책도 영화도 사람들도 다 멀어졌다. 이로 인한 큰 변화는 남들이랑 말을 하면 어버버버하고 문장을 쓰면 끝을 잘 맺지 못했다. 주어 서술어 호응이 잘 안되는 말을 수도 없이 내뱉었다. 내 일하던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일상 생활에서도 점차 바보가 되어 가는 나를 수시로 볼 수 있었다. 시간만 있으면, 시간만 있었으면 안 그럴텐데 이 모든 것은 시간 부족으로 귀결 되었다. 시간, 시간 좀 주세요!

그렇게 아기다리 고긱다리던 시간이라는 것이 이제 주어졌다. 이제 9시. 12시까지 3시간이나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렇게 바라던 일인데, 시간이 주어졌는데, 제대로 이용할 수가 없다. 문제는 나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오면 온 집안이 캄캄한데 다시 불을 켜고 싶지가 않고, 누워있다가 나와서인지 정신도 약간 몽롱하다. 나 스스로도 뇌를 더 깨우고 싶지 않고, 편안히 조용히 있게 하고 싶다. 그사이 내 신체도 나이가 든 것이다. 9시부터 12시까지 활기차게 쓸 수 있는 몸이 아닌 것이다.

시간을 꿈꿀 땐 무언가 생산적인 일, 나만을 위한 일을 하고 싶은데 노트북을 켜고 책을 펴고 공부를 하고 이런 일들을 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주어진 지금은 그런 일들은 지금 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9-12시를 생산적으로 보내고 나면 나는 분명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것 같고 잠을 제대로 못자면 내일 하루가 엉망이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지금 눈이 20%쯤 감겨 있을 때, 이 상태를 조금 더 유지하다가 조금 더 수치를 끌어올려 최고의 숙면을 취하고 싶다. 이게 다 아이들이 더 어릴 때 제대로 못자서 한이 맺힌, 일종의 수면 트라우마라고 해야 하나. 다섯 살까지 통잠을 잔 적 없는 둘째 때문에 새벽에 두 세 번 깨는 것은 기본이고 그 이상 깨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 팔을 찾아서 만지며 다시 잠을 청했다. 아이의 팔 만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아무리 피곤해도 잠을 깰 수 밖에 없었다. 그냥 만지는 것이 아니고 어찌나 살살 간지럽게 만지는지. 그래서 출산 이후 잠에 집착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제 알았다. 9-12시는 과거에 내가 필요했던 시간이고, 지금의 나에게는 9시는 시작의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그 시간에 자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생활로 변경을 신청할 때인가보다. 아이고야.

p.s. 어제 조금 마신 카랴멜 마끼아또. 분명 디카페인으로 반 잔 밖에 안마셨는데 이 친구도 내 몸이 잘 소화를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흑흑.


9시는 아니구나. 커피도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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