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의 황새 쫓아가기

만혼의 조급함이여!

by 박솔

지금 서른 다섯에 결혼을 앞둔 신부가 있다면 사람들은 빠른 결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늦지도 않은 결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요즘은 마흔이 넘어서 결혼하는 사람들, 아예 안 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이니까.


내가 결혼을 앞둔 십 년 전에는 서른 다섯의 결혼은 그래도 늦은 편이었다. 특히 나는 직장을 일찍 잡은 편에 속한다. 나와 같은 전공의 친구들도 대부분 그랬다. 그래서인지 결혼을 일찍 한 친구들이 꽤 많았다. 이르면 스물 다섯, 보통은 이십 대 후반에서 삽심 대 초반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 친구들에 비해 나는 최소 3년 이상 늦은 결혼을 했다. 그래서인지 아이를 키우는 것도, 집을 장만하는 것도, 그리하여 삶이 편안해지는 것도 모두 다 느리고 더뎠다. 그래서 왜 나만 이렇게 힘들고 나만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런데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더 비싼 집, 많이 키운 딸을 가진 친구는 나보다 십 년이나 일찍 결혼했잖아. 내가 미혼의 삶을 즐길 때 친구는 십 년 동안 남편과 함께 돈을 모았고, 아이를 키웠다. 당연히 그만큼 아이의 나이가 우리 아이보다 많을 거고 그래서 현재는 한결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 없을 것이고, 돈도 우리집보다 훨씬 많이 모아놓았고.... 이런 것들이 참으로 당연하다는. 그동안은 그 친구는 왜 나보다 더 가진 것인가. 왜 그 친구는 편안한데 나는 이렇게 동동 거리나. 은연 중에 그 친구를 따라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부럽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당연한 것이었네. 나는 내가 결혼한 시간만큼 성장한 것이고, 그 친구는 나와 생물학적 나이는 같지만 결혼 나이는 훨씬 많다. 그만큼 나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이룬 것이 당연한데 내가 너무 좁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어린 아이를 키워 어른과의 대화가 간절한데 직장이나 자신들의 아이 학원 픽업 등으로 제대로 통화를 못할 때도 친구들이 야속했다. 그런데 그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들은 나를 소외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그들의 삶을 열심히 산 것 뿐이다. 이제야 친구들의 삶도 이해가 간다. 오히려 내가 왜 이해를 못했지? 왜 그래서 괜찮은 친구들을 괜히 미워하고 섭섭해 했었나 싶다.


그런데 그것도 이제야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나도 이제야 여유가 조금 생겼나보다. 이렇게 볼 수 있는 여유가. 만혼으로 뱁새가 황새 쫓듯 살다보니 피곤한 일들이 많았었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나의 속도로 걸어야 제대로 걸을 수 있다. 편안하게 나의 길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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