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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폐 Aug 27. 2023

당하는 게 아니라 맞이하고 싶다

단상

자료 사진 네이버

당하는 게 아니라 맞이하고 싶다.


올봄부터 초여름까지는 장례식장 갈 일이 잦았다.

몇 분은 유족(遺族)과의 인연이 있고, 또 몇 분은 유족은 물론 고인(故人)과도 몇 날을 함께 보낸 인연이 있다.

앞의 글자는 지역에 따라 서로 달랐지만 뒤의 이름은 저마다 같은 '장례식장'을 유족은 깊은 슬픔에 빠져 많이 힘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인은 걸림 없이 미련 없이 훨훨 잘 가시라 배웅하는 마음으로 갔다.


규모가 크든 작든 장례식장 건물에 들어서면 먼저 전광판을 자세히 보아야 한다. 고인과 유족들을 만나려면 몇 호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기에.

알려주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서 오라 반기는 듯 복도 양옆으로 화환(花環)들이 늘어서 있다.

마치 새해가 되면 주고받는 덕담 인사 '꽃길만 걸으라'의 주인공이 된 듯 화환의 환영(?)을 먼저 받는 셈이다.


꽃길을 따라간 끝에는 부의금을 받는 책상이 놓여있고 어떤 곳은 문상객들이 벗어놓고 간 (흐트러져 있거나 엉켜있는) 신발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는 상주 가족 가운데 젊은이들이 있기도 한 공간이 나온다.

숫자 뒤에 붙은 호(號)에는 몇몇 사람들이 비닐이 깔린 상위에 차려진 음식을 먹고 있고 막 들어서는 문상객에게 인사를 한다. 가볍게 인사를 받고 고인과 상주를 만나러 간다.

고인은 꽃으로 둘러 싸여있다. 고인은 아마도 친인척은 물론 잘 알지도 못하는 가족의 지인들이 문상을 올 이런 날이 올 걸 안다는 듯 사진기 초점을 바라보는 표정에는 웃음기가 싹 빠져있다.

마치 '세상과 가족들과 떠난 날을 위해 사진을 찍는데 뭐가 행복해 웃을까!'라는 것처럼 영정 사진은 거의 다 무표정에 가깝다. 어쨌든 그 아래에서 검은 양복 검은 한복을 입은 상주들과 검은 빛깔 옷을 입고 조문을 온 문상객은 인사를 나눈다.


요즘 문상 풍경이다. 고인도 유족들도 분명 다르지만 거의 같은 상황 비슷한 표정 비슷한 음식 같은 풍경이어서 마치 한 집을 여러 번 다녀온 듯한 착각마저 든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같은 건 복도 양옆의 화환들이다.




옛날에는 초상이 나면 상갓집이라고 했고 집 대문 기둥에 초상이 났음을 알리는 등을 켜두었다. 그러나 요즘은 집에서 돌아가셔도 장례식장으로 옮긴 뒤 상을 치르는 걸 당연하게 여기다 보니 초상이 났어도 집만 보고는 알 수가 없다.

결혼식을 집에서 하지 않고 예식장에서 하듯 상을 치르는 곳도 장례식장이라는 이름으로 으레 껏 거쳐가야 하는 곳이 된 것이다.


그런데 화환을 보내는 문화는 언제부터였을까?

화환의 유래를 찾아보니 마라톤 선수가 1등으로 결승점에 들어오면 월계관을 씌워주던 것에서 비롯하여 경기에서 이긴 선수들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주는 것으로 이어졌고, 크리스마스 때 화환(리스)을 만들어 거는 것으로 악귀(惡鬼)를 쫓겠다는 의미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결혼식이나 장례식에도 꽃을 쓰던 풍습이 문화로 굳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서양 문화였던 것이다.


자료 사진 네이버에서


어렸을 적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나의 조부모와 부모는 초상집이던 잔치집이든 그 철에 맞는 떡을 해서 짊어지고 가곤 했다. 잘 살진 않았지만 여름철엔 기정떡 봄이나 가을엔 개피떡(계피떡), 겨울엔 시루떡을 했다.

철없고 어린 나이라 집안에 무슨 일이 있는지 자세히는 몰라도 술을 빚고 엿을 고으면 명절 아니면 잔치가 있는가 보다 짐작을 했다.

어떤 때는 그렇게 만든 떡을 함지박에 채곡채곡 담아 베보자기를 덮어 여무리고는 지게에 얹어 몇 고개 넘어 친척집으로 지고 가기도 했다.


이미지 네이버 쇼핑몰에서

사실 우리나라는 꽃이 아니라 향을 피우고 음식을 부조하는 풍습이었다. 상복(喪服)도 흰 옷이었다. 그런데 서양의 기독교 풍습과 문화가 들어오면서 오늘날에는 으레 껏 검은 옷에 화환을 보내는 것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국화를 쓰는 이유도 국화의 꽃말이 '정중히' '고이 기림'이라는 뜻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렇다 치고 그런데 '이 화환, 꽃들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문제는 이 화환이 허례허식(虛禮虛飾)의 본보기가 되어버린 듯하다는 것이다.

사실 화환은 고인을 기리는 일과는 아무런 상관없어 보인다다. 그저 유족들의 (자본주의 세상에서 재는 잣대로) 부와 명예 지위를 나타내는 잣대 같다.

그리고 고인이 부모일 경우에는 자식(들)의 효를 가늠하는 잣대도 된다. 복도 길이에 맞추어 양 옆으로 늘어 세워 두어야만 '아, 고인이 자식 농사를 잘 지었군.'또는 '고인이 살아생전 인맥이 많았고 잘 살았는가 보군.' 인정받는 일인 양 말이다.


그렇게 세워둔 화환은 유족들 아니 상주의 시간 편의를 위해 짧게는 1박 2일 길게는 4박 5일 동안 복도에 서있다가 고인을 따라(?) 화장장 앞 또는 장지까지 실려갔다가 식이 끝나는 곧바로 쓰레기 또는 재활용 상태로 분류된다.




이른 봄, 살아생전 딸 사위 아들 며느리에 장성한 손주들로부터 고루 효도를 받으시던 고인을 배웅하러 간 장례식장에는 딸이며 사위며 아들의 지인들이 보낸 3단 화환이 100개 남짓 됐다. 작은 읍에 있는 장례식장이지만 꽃은 전국에서 보냈을 텐데, 조금만 자세히 보면 그 꽃이 몇 번 재활용되었는지 알 것만 같다.

그렇게 많은 화환 가운데 싱싱한 꽃송이로 장식된 건 겨우 2개 남짓이고 나머지는 잎은 거의 없고 떨어지기 일보 직전의 마른 꽃잎 또는 조화로 만든 것이었다.


나는 평소 '아나바다'를 선호하는 편이기에 꽃도 재활용할 수 있으면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례식에 늘어선 수십 수백 개의 화환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숫자에 엄청 약하지만) 수십 개의 화환을 돈으로 대충 환산해 보았다. 엄청난 돈이다.

'그 화환(돈)을 좀 더 가치 있게 쓸 수는 없을까, 화환이 고인을 위한 일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끝에, 화환은 고인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유족들 저마다의 인연 그물코, 말하자면 크고 작은 비즈니스 저울추에 지나지 않을 뿐이고, 정말 고인을 위하는 일이라면 화환을 안 받거나 음덕(陰德)을 지을 다른 방식으로 받으면 된다.




고인을 기리는 한편 가치로우려면 고인이 세상과 이별하기 전 살아온 언행(言行)이나 생활 모습 또는  삶의 가치관이 뚜렷했거나 유언(遺言)을 분명하게 전했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사는 동안, 죽음을 어느 날 갑자기 당하는 게 아니라 당연하게 맞이해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 없고, 감각이 이끄는 대로 눈앞에 펼쳐지는 희노애락(喜怒愛樂)에만 끌려다니며, 죽은 뒤 세상과 이별식(장려식)을 어떻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면 분명 허례허식의 풍경이 이별식 풍경이 될 것이다.


올해 쓸 유서 봉투

나는, 죽음을 당하지 않고 맞이하고자 20년 남짓 전부터 유서를 쓰고 1년마다 생각과 기억, 기록을 경신(更新)하고 있다. 생각과 같이 이루고 싶어 날마다 틈마다 마음 곳간을 업그레이드시키려고 한다.

나를 아는 이들, 내 이별식에 참여할지도 모를 이도 함께 기억해 주면 좋겠다는 바람도 안고 있다.


맞이하는 일은 반가운 일이어야 하고 그날은 잔칫날이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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