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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폐 Aug 13. 2023

뭔지 모르게 가슴이 시리네요.

병상일기 - 9

그해 봄(2021년 3월),  한 달 입원했다가 퇴원했지만 일상의 움직임이 뜻대로 되질 않았다. 100걸음 정도 (겨우) 걷고 주저앉던 것이 몇 걸음도 못 걷고 주저앉아야 했다.

담당 진료과에 전화를 걸었다. 간호사는 담당 교수를 바꿔주었다. 그러지 않아도 걱정이 됐다며 다시 입원을 하는 게  좋겠단다.

짐을 챙겼고 지인의 도움을 받아 다시 입원을 했다.



호강하는 날들이 다시 시작됐다.

혼자만 호강하는 것 같아 어머니도 오시게 했다.


젊은 아니 어린 나이에 일곱 가족의 생계를 짊어져야만 했던, 순수(가 꼭 좋은 건 아니다. 어리숙하다와 같기에)하셨던 새댁은 대형(버스) 사고가 나 몸이 으스러져도 상대방 처지를 더 안타까워했고, 그 결과 병원 치료도 제대로 못 받은 건 물론이고 후유 보상금조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주변에서 도와줄만한 지식인이나 어른도 없었기에 사고 때부터 그 뒤 평생을 후유증에 시달리며 살고 계셨다.

뿐만이 아니다. 다니시던 공장들에서도 팔이 뽑히거나 허리를 다치는 산재를 당하고도 치료는커녕 해고당할까 봐 안 아픈 척하며 다니셨다.

그나마 마지막 사고 때는 내가 나서서 회사 측 간부들에게 따진 덕분에(?) 산재 처리를 하고 병원 치료를 하실 수 있었지만 후유증은 질기게 들러붙어 어머니를 힘들게 했다.


어머니가 (생계를) 짊어져야 했던 가족들 가운데 넷이나 되는 자식들은 1년에 한 번 모이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밥줄 따라 저마다 흩어져 살다 보니 오래전부터 혼자 사시지만, (가까운 곳에 365일 문을 여는) 한의원으로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그날그날의 통증을 달래고 계시는 듯했다.


그 통증의 무게를 더 얹어 드린 일에 일조를 했기에 입원이 된다면 '집중치료를 받으시면 좋겠다'는 마음에 (아우들과 의논한 뒤) 오시게 하여 진료를 받으시게 했다.




"퇴원할 때 뭐가 필요하냐고 묻고 가는데, 가슴이 '쿵-!' 하는 게 서운한 것 같기도 하고 뭔지 모르게 가슴이 시리 하네요.."


"그 느낌 쪼금은 알아요. 그럴 거예요."


"가만히 생각하니까 여기서는 날마다 이 사람 저 사람 아침 일찍부터 몇 번씩이나 '오늘은 어떠냐, 어디가 아프냐, 변은 봤냐, 밥은 얼마나 먹었냐?'  물어봐줬는데, 집에 가면 아무도 오는 사람 없고 그렇게 물어봐 주는 사람도 없을 거니까..., 그래서 그런가 봐요."


좀 더 치료를 받으시면 좋겠지만 공공근로 나가야 한 다시며 들어오는 날부터 퇴원 날짜를 꼽고 계셨는데, 어느새 그날이 다가오고 있고, 막상 '퇴원'이라는 말을 들으니 여러 가지 감정이 일어나셨는가 보다.


"쿵-! 하더라고요."


누구는 직업으로 누구는 환자로 만나, 맡은 바 일이라 묻고 대답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그 사이사이 인정(人情)도 함께 주고받았다는 걸. 어머니는 그 情을 거두는 보이지 않는 실금 같은 것이 가슴을 훑고 것이다.

의사나 간호사들은 직업인으로서 딱 그만큼만 정을 버릇하며 굳은살이 배겼을 것이다. 어쩌면 살가웠던 情을 거둘 때 생기는 실금이 싫어서 그렇게 버릇 들여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래서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것이리라.


어디 병원뿐이랴!

모든 인간사가 그렇다.

만나면 만나서 좋고 헤어져 혼자면 홀가분해서 좋다는 굳은살이 박혀야 덜 괴롭고 덜 아프다는 걸.

어머니도 이젠 (좋다까지는 아니지만) 자식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에 굳은살이 배겨 많이 덤덤해지신 듯하다. 아니 덤덤해지려  하시는 듯하다.


하긴, 떨어져 있다고 사랑이 없는 게 아니다. 함께 산다고 사랑이 깊은 게 아니다.

어쩌면 덤덤한 듯 무심한 듯 담백하게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품어주며 다독이는 사랑이 깊은 사랑일 수도 있다.

텁텁하지 않고 상큼하게, 눅눅하지 않고 바삭하게, 끈적거리지 않고 개운하게, 너무 달콤하지도 않고, 너무 쓰지도 않고, 너무 맵지도 짜지도 않고, 뭔지 모를 불편함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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