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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폐 Aug 19. 2023

풀 깎기

산골 일기

옆 뜰 & 앞 뜰


산골의 이즈음 새벽, 또는 해질 무렵이면 한 번씩 나는 소리가 있다. 풀 깎는 기계 소리다.


날마다 쏟아지는 소나기와 쨍쨍 내리쬐는 날씨에 신난 건 풀들이다.

하룻밤 자고 나면 쑥- 자라 있고 뽑고 돌아서면 한 뼘 자라 있는 듯하다.

뽑을라치면 뿌리에 흙을 한 사발 달고 나오는 풀. 쏟아지는 소나기에 멈칫, 너무 뜨겁고 후덥지근하여 멈칫, 이래저래 멈칫멈칫하다 보니 앞뜰 꽃밭 뒷 뜰 풀밭 옆 뜰 주차장과 꽃밭은 뭐가 풀이고 뭐가 꽃인지 모르도록 키재기 하며 내 키만큼 자라 있고, 씨를 여무리기 바쁜 가운데 둘레를 우거진 수풀로 만들고 있다.




비록 손바닥(?)만 한 꽃밭이지만 틈틈이 관리를 하지 않으면 작은 숲이 되고 말기에, 꽃포기 사이의 풀은 하나씩 뽑아야 하고, 꽃도 피지 않는 잡초는 두 번도 볼 것 없이 야멸차게 뽑아내고 밑 둥을 잘라내지 않으면 안 된다.

옆 뜰 풀섶은 고라니(들인가?)가 좋아하는지 노닐다

남기고 간 콩알만 한 흔적(똥)이 너무 많다.

하아, 풀을 깎아야 할 텐데...!


한 이틀 물기를 말려주기에 해가 뉘엿 넘어갈 때 엄두를 내 예초기 엔진 키를 당겨 짊어지고 뒷 뜰로 간다.

해가 진 뒤라 덥지도 않을뿐더러 어둑하니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 좋다.


풀로 보이는 것에 예초기 날을 대니 쇠어버린 풀대궁 잘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내친김에 들머리길 옆 환삼덩굴도 쳐내고 싶어 들이댔다가 억센 덩굴이 와이어 날을 휘감는다.

동네를 요란하게 하던 부르릉 거림을 휘리릭 감아버리더니 돌아가던 와이어날까지 뚝 멈추어 버린다.

고정쇠를 당겨놓고는 어깨에 멨던 예초기를 내려놓는다.

예초기 자루는 잘려나가면서 들러붙은 풀찌꺼기로 검푸름 해졌다. 스위치를 끄고 감긴 덩굴을 풀어낸다.


와이어날을 조금 더 빼낸다. 다시 시동을 건 뒤 둘러메고  곧바로 풀을 쳐낸다.

다시 감기지 않도록 위부터 끊어내면서 몇 번이고 같은 곳에서 부르릉 거린다.

조각난 풀잎들은 쉴 새 없이 바짓가랑이에 날아와 꽂히듯 들러붙고, 안경에 얼굴까지 날아와 들러붙는다. 싱그러운 풀팩이다.


마당 끝 자갈 사이사이에 뿌리를 내린 풀들을 쳐내자 자갈이 튄다.

땀이 흘러내린다. 소리가 더 요란해는 걸 보니 부탄가스가 다 닳았나 보다.

싱그러우면서도 비릿한 풀내음이 깔린 어스름한 저녁, 옆뜰 뒤뜰이 시커먼 풀숲으로 보이진 않고 훤해진 걸 보니 마음까지 개운해진다. 행복이다.




행복이 뭐 벌건가!

괴로움 없고 불편함 없으면 그게 행복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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