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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폐 May 18. 2023

풀인지 꽃인지

산골 일기


날마다 또는 사나흘에 한 번 꼴로 풀 뽑기를 해도 모르겠고, 뽑을 것인뽑지 말아야  것인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 데 풀을 뽑아내야 한다.

풀인지 꽃인지, 이 풀이 저 꽃 같고 저 꽃이 이 풀 같다.

(어쩌다 풀을 뽑는 이의 )


서울 사는 할머니는 멋내느라 일부러 구멍낸 손주의 청바지를 꿰매서 기워 놓고, 시골 사는 할머니는 곡식만 뺀 나머지는 풀이라고 사다 심어 놓은 꽃모종을 다 뽑아내더라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 일상에서 진짜로 경험한 이야기다.


위 집, 밭이었던 곳에 집이 들어섰고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지난해 이사 오셨다. 어찌나 부지런하신지 집 앞은 새싹 풀꽃 한 포기 없다. 보이는 족족 싸그리 뽑아내서 지나다니며 보는 이들은 '먹을 것이 떨어져도 티가 안 묻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인데, 올해는 아예 저 아랫길 들머리의 풀들까지 말끔히 뽑아치우시더니 끝내 비닐을 씌운 뒤 꽃을 심으시는데,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고 누구나 아는 꽃들이다.




3년 전, 처음 이사를 왔을 때 풍경(?)은 농사지으러 다니는 이들이 여기저기 버리고 간 비닐이며 쓰레기가 곳곳에 차여있는가 하면, 밭은 제초제를 쳤기 때문에 검은 비닐 조각이 풀처럼 나풀거리고 정작 풀은 없으나 그 옆은 경쟁에서 살아남은 억센 풀과 환삼덩굴이 해를 거듭해 나고 지고 나고 지고를 해서 마른 덩굴 무더기가 가득 길을 덮고 있어 심란해 보였다.

하여, 날마다 환삼덩굴을 뽑아내는 한편, 벗들과 철에 한 번씩 쓰레기를 줍고 길가에 코스모스니 봉선화를 심고 틈틈이 풀을 뽑아댔던 기억이 있다.


그 뒤, 마당 끝 길가는 환삼덩굴 대신 풀인지 꽃인지 모를 푸름이들이 빽빽하기 그지없다. 윗 집 어르신이 보기에 답답하셨는지, '풀을 매도되겠느냐?'라고 하시는 걸 '꽃을 심어 놓았다.' 하였더니 뭔가 뽑고 싶지만 손을 못 대신다.

그 까닭은 풀인지 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엊그제도 열심히 풀을 매고 계셨는데 풀만 뽑은 게 아니라 꽃까지 다 뽑으셔서 과꽃을 남겨 두셨던 할머니로부터 타박을 받고 계시더라는 소리를 들었다.


도심에서 이사 오셨으니 당연한 일이다. 가까이 사는 벗도 시골살이 몇 년이지만 아직 어느 것이 풀이고 어느 것이 꽃인지 모른다. 코스모스, 해바라기, 봉선화 정도만 분명히 알뿐 나팔꽃, 수레국화, 벌개미취, 비올라, 광대나물꽃, 양귀비, 범의 꼬리나 꽈리순은 꽃인 줄 모르겠단다.




오늘도 풀을 뽑는다.

비가 오신 뒤라 그런지 며칠 전만 해도 두 마치 정도 되던 풀들이 한 뼘 넘게 자라 있다. 꽃보다 키가 더 크다. 꽃 사이의 풀을 상추 솎아 내듯 뽑아낸다.

풀이든 꽃이든 자연 그대로 두면 더없이 좋겠지만 '사람이 산다'는 티는 내야 할 듯싶어 무조건 지 않고 요령 껏 솎아 내는데 멀리서 보면 뽑았는지 안 뽑았는지 잘 모른다.


이러할 지니, 어쩌다 한  가끔씩 오는 벗들이 어찌 풀 뽑을 엄두를 낼 수 있을까 싶으면서 우리네들이 '좋은 생각인지 안 좋은 생각인지, 좋은 일인지 안 좋은 일인지를 구분하는 일이 이와 같겠구나!'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말과 행동안 좋은 결과가 오는 일인지도 모르는데 하물며 과보가 안 남는 바른 일을 어찌 알겠나 싶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좋은 일이라면 무조건 하고 보는, 하고 나서 괴롭고 불편함이  닥치면 '이럴 줄 몰랐네' 후회하고 다시는 안 하겠다 작심하다가 또 그런 상황이 오면 '좋은 일이니까' 하고 마는 이를 주변에서 흔히 본다.


꽃인 줄 알고 안 뽑았는데 알고 보니 억센 풀이라 꽃밭을 장악해 버리는 결과를 얻거나, 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귀한 꽃인 경우도 많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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