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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폐 May 10. 2023

그리운 맛 찾아 산으로 간다

산골 일기

이맘때가 되그리운 맛이 있어요.

누구에게나 추억의 맛 그리운 맛 한두 가지쯤은 있을 거예요.


도깨비방망이 같은 돈만 있으면 구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그리움으로 저장하지 않아도 될 만큼 모든 것이 흔해진 세상이지만, 뚝딱! 해결하지 못하는 게 어쩌면 추억의 맛이나 그리운 맛일 겁니다.


아주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것이 있습니다. 다시는 맛볼 수 없을 거라 체념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살기 전까지는요.




땅심이 풀리면 하루가 멀다 하고 산으로 갑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산할머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만큼 산을 좋아하시던 할머니께선 아침 일찍, 진지를 드시면 다래끼와 망태기를 챙겨 산으로 가셨지요.

한나절이 지날 때쯤, 산에서 내려오신 할머니의 망태기안 더덕과 도라지 말고도 이런저런 약초뿌리가 한가득 들어있었고요. 다래끼에는 파릇한 산나물과 손녀딸 주려 꺾어 넣은 개불알꽃(복주머니란) 몇 송이도 들어 있었지요.

할머니께서 꽃에 묻어있는 검불을 툭툭 털어낸 뒤 손에 쥐어 주시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을 받은 듯 좋아했거든요. 

그리고 그 다래끼 안 파릇한 이파리들 가운데는 추억의 맛으로 저장될 삽주싹이 들어 있었지요.




삽주싹! 한약재로 쓰이는 창출과 백출 싹인데요.

삽주싹에 묻어있는 검불들을 샘물 한 바가지로 설렁설렁 씻어 몇 이파리 고추장에 찍어 물 말은 식은 밥과 우적우적 씹어 넘길라치면 입천정이며 목구멍을 까슬까슬 따끔따끔 건드리며 넘어가던 그 맛! 

그 옛날 산골의 이맘때엔 더없는 훌륭한 반찬이었지요.


까슬까슬 따끔따끔! 

세상 그 어디에도 없을 삽주싹만이 가진 매력이라는 걸 산골을 떠나서야 알았습니다. 맛은 뚜렷이 기억나지 않았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 느껴지는 그 까슬거림과 따끔거림 그리고 몇 년 묵은 고추장이 더해주는 맛은 해마다 그리움의 이었어요.


삽주싹...!

몇 해 전부터는 그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삽주싹이 올라올 무렵이 되면 이런저런 핑계 대지 않고 가까운 산으로 가면 만날 수 있으니까요. 자칫 시기를 놓치면 잔뜩 쇠어 억센 나무줄기나 나뭇잎 같아 그 맛이 나지 않기에 시기를 잘 맞추어야 하지만, 할머니와의 추억을 다시 새기기엔 모자람이 없답니다.


내가 그리워하는 이 맛을 누구나 다 좋아하지는 않을 겁니다. 혹, 누군가 이 맛이 궁금하여 삽주싹을 꺾어다 고추장에 찍어 물 말은 밥과 먹어 본다면 실망할지도 모를 일이지요.


추억의 맛에는 저마다의 서사가 깃들어 있으며 그리움 한 움큼이 버무려져 있으니까요.


오늘 저녁, 낮에 꺾어 온 삽주싹을 씻어 밥상에 올려놓고 할머니께서 들여놓은 입맛을 더듬어가며 우적우적 씹어 삼켜봅니다.


아, 이 맛이에요. 까슬까슬 따끔따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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