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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폐 Apr 12. 2023

소중한 걸 저당 잡히진 않았나요?

산골 일기

행복을 저당 잡히진 않았나요?


내가 태어났던 곳이자 지금 사는 곳은 분명 산골이다.

어릴 때만 해도 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을 갈 일이 없었고, 있어도 두 시간쯤 걸어 다니는 걸 당연하게 여겼고, 차가 다니는 길이라곤 산판(山坂)에서 나무를 실어 나르는 (제무시) 차가 드나드는 울퉁불퉁 신작로길이 전부였다.

그러나 오늘날 이곳은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딴 세상이 되었고 사람들의 삶의 방식도 엄청 달라졌다.

여느 산골과도 다른 점이 있다. 스키장과 계곡이 있어 추울 때는 스키나 썰매를, 더울 때는 더위를 피해서 물놀이를 하기 위해, 그리고  근현대에 이름난 소설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전통 오일장이 제법 알려져 있어 서울 경기권 또는 다른 지역에 사는 이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러다 보니 호텔 리조트 펜션 민박 캠핑장이라는 이름의 숙박 시설이 다양하게 있고, 산골치고는 식당도 다양하게 있는 편이다.

게다가 고속도로로 들고 나는 IC도 가깝게 있고, 도심으로 나고 드는 터미널도 가깝고, 고속철도(KTX) 역도 가까이 있다.

황이 이렇고 보니 조금이라도 젊다 싶은 이들은 일손이 필요한 곳으로 돈을 벌러 다니기 바쁘다.

붙박이로 직장생활을 하던 시간 짬 일을 하던 어떤 식으로든 돈을 벌기 위한 일을 찾아다니고 있다.

행복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을 쓰려면 벌어야 하니까.


그러므로 (내가 볼 때는) 도심 쪽에서 사는 이들과 별다르지 않은 삶의 모습을 띠고 있다.

이를테면 주 5일 또는 6일은 일을 다니고 주말이나 쉬는 날은 서울로 나들이를 하거나 개봉작을 상영하는 (작은) 영화관을 찾는다.


웬만한 소도시에나 있음 직한 365 뱅킹이나 편의점 그리고 프랜차이즈 치킨가게들도 좀 있는 편이다.

어떤 산골 시골은 가장 가까운 영화관이 걸어서 대여섯 시간을 가야 하고 튀김옷을 입혀 튀긴 치킨이 아니라 기름 빼서 구운 통닭 밖에 선택할 수 없다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으니 결코 답답하지도 않고 누릴 것이 꽤 많다 여기는데, 자본주의 세상인 만큼 요즘 소비 정서와 문화를 비교하는 이들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애가 이도 튼튼치 않은 데다 뭘 잘 먹지도 않고 탄산음료만 좋아하더니 이빨이 다 썩어서 치료하고 (이빨을) 해 넣으려면 몇 백이 든다잖아요. 돈 벌어서 병원비로 다 나간다니까...?"


"애 키우고 학원비 내고 병원도 가야 해서 5천만 원짜리 마이너스 통장에서 야금야금 다 빼 썼더니만..., 갚으라 하기에 할 수 없어 계를 들었다니까. 앞으로 곗돈 부으려면 죽어났지 뭐."


스스로 말하면서도 느낄 모순(矛盾)의 삶이다.

날마다 시간 맞춰 일하러 가는 이유, 틈만 나면 알바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이유가 결국  병원에 가서 병원려고 버는 셈이니까.


'오늘'을 돈 버는 일로 보내는 이들이 가득 찬 오늘의 현실..., 따지고 보면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 행복을 저당 잡히고 있는 셈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 ,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게 되풀이하있다.


지식이 모자라는 사람 없고, 학력 낮은 사람도 없고, 못 배운 사람도 없고, 저마다 전문가 못지않은데 뭔가 알맹이는 없는 듯 보인다.

아이들은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행복한 삶'을 보고 듣고 느끼기보다는 점수 잘 나온 것에 칭찬받고 인정받으며 연봉이 쎈 대기업의 '고급 노예'가 되는 길을 은근히 또는 대놓고 강요당해야 하는 현실.

행복은 동화 속 이야기가 되어가는 오늘의 이 상황 꿈이좋겠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일지라도 돈과 물질로 대가를 받으면 행복감이 사라지더라는, 아무리 힘든 일일지라도 대가 없이 그저 남을 도울 뿐이었을 때 편안함과 행복감이 가득하더라는 실험결과가 있다.


도심의 휘황찬란한 불빛은 우리 안의 욕망에 불을 붙일 부싯돌 같은 것이다. 한 번 불이 붙으면 쉽사리 꺼지지 않는다.

꺼진 듯하지만 불씨가 남아있다가 바람이 불면 살아나 더 크게 번지려 하는 게 불씨의 특성이다.


삶의 고난함만 한탄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어디로? '나를 만나는 내 안으로의 여행'이다.

자신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고 어떤 선입견 무슨 생각, 어떤 성향 어떤 취미, 무엇에 반응하고 어떤 것에 사로잡혀 집착하고 있는지, 무엇을 후회하고 어떤 걱정 어떤 불안에 감겨있는지,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맺힌 건 무언지 들여다보는 거다.


문 밖으로 나가 가만히 산새들 지저귐이나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바람 소리 물소리에 귀를 씻고 마음을 훨훨 털어내 보자. 더 늦기 전에.

산골이 주는 큰 혜택이다.



* 산판 :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 파는 일 또는 그런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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