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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폐 Oct 08. 2023

똑똑한 그러나 수명은 짧은 너를 보내고 다시...,

산골 일기

똑똑한 아이(?)를 벗이 선물하며 써준 글


똑똑한 그러나 수명은 짧은 너를 보내고 다시...,

 

늘, 하루에 한 번씩 만나는 네가

언젠가부터 정상이 아닌 듯 느껴졌어.

하지만 나의 어리석음과 미련은 '설마, 설마!'

하면서 병원에 가 볼 생각은 하지 않았지.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라는 말은

까마득한 옛말이 됐고 지금은 두 달도 안 돼

없던 산이 생기는가 하면 있던 산이 사라지고,

두 해쯤이면 있던 마을이 사라지고 없던 도시가

버젓이 들어서는 게 놀랍지도 않은 세상이 됐지.


하루가 다르게 휙휙 바뀌어 가는 세상을 오롯이

받아들이기는커녕 뒤쫓아가기도 버거워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는 걸, 너는 나를 만날 때마다 줄곧 알려왔지.


어리석음과 미련이 게으름과 짝짜꿍 노닥거림에

두 손 두 발 다 든 너는 해석 불가능한 말을 해댔지.


ㄱㄱ기ㅣㅣㄱㄱㅏㆍ가ㅏㅏㅏㅐㆍ

ㅁㅁㅁㅣᆢ마ㅏㅏㅏㅏㄱㄱㄱㅎㅎㅕㅣㅣ혛


홑소리 닿소리가 제 멋대로 다다닥 뛰어다니고

폴짝폴짝 뛰다가 튀다가 핑하고 날아다니더니

아예 나타나지도 않고 감쪽같이 사라지는 걸

보고 나서야 심각함을 알아차리고는 응급조치로

반창고를 붙여줬으나..., 근본 치료가 아니어서인가

얼마 못 가 다시 뛰고 날고 튀고 사라지고 나타났지.


나는, 바뀌어 가는 세상 속도가 너무 빨라

미처 못 따라가 그러는 줄 모르고 그저,

너에게 저장된 모든 기억을 싹 다 지우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아무 일 없던 듯 지내려 했어.

그것도 모자라 너와 영영 이별을 꾀하기도 했지.


전문의(?)는 너의 몸뚱이에 보조기를 달면

홑소리 닿소리가 뛰거나 날아다닐 일은 없다더군.

늙은 몸뚱이에 젊은 몸뚱이 일부를 덧다는,

너는 그렇게 해도 된다더군.


해마다 기억 저장고를 싹 비우기도 하고

늙어서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면 새 몸뚱이로

싹 바꾸어 주어야 한다고. 버벅거릴 때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저앉는다고.


그렇구나, 너는 그래도 되는 거였구나.

너는 그렇게 다시 태어나면 되는데

나는 어쩌면 좋을까!

받아들이기도 버겁고 따라가기는 더 버겁고

안 따라가자니 까막눈 되기 쉽고

따라가자니 숨차고 버겁고 힘들고...!


'날마다 생일'을 맞으며

나도 안 좋은 데를 떼어낸 뒤 다른 걸로 바꾸고 

시침 뚝 떼고 다시 날 수 있다면 좋은 일일까!


워~ 워~ 워~!!! 아서라 말아라.

그러지 않아도 누리고 있는 자들은

누리던 걸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인데

인간에게도 너와 같은 방법을 쓴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아수라 지옥일 테니.


다행히도 빠름 세상에서 안 되는 것도 있더군.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빼박아내는 판박이가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멀끔하고 멀쩡한데

세상에 나온 지 너무 오래되어 쓸모가 없으니

차라리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는 게 낫다는 거야.


세상이 좋아진 건지 안 좋아진 건지 하루 만에

배달돼 온 새 판박이가 헌 판박이가 있던 자리로

들어가 신고식을 하는데, 비싼 빛깔물이 네 개나

필요했던 헌 판박이와는 다르게 훨씬 싸면서도

빛깔물 두 개만으로도 판박 시간이 훨씬 빠르더군.


똑똑한 그러나 수명은 짧은 너희들의 조물주는

쉼 없이 만들어내느라 골치깨나 아프겠지?

우덜 또한 너희 조물주가 만든 똑똑하고 수명 짧은

빠름 세상에 끌려들어 가 휘둘리고 허우적거리다

그러다가..., 사람답게 사는 일을 놓치고 잊다가

끝내는 포기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끔찍한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다가

번뜩, 정신 차리며 각오했지.


아직은 종이로 된 책을 보는 게 더 편하고

아직은 종이에 손으로 쓰는 일이 좋으니까

'꼭 필요한 만큼 아주 쪼금만 들락날락 하자'라고.

'휘둘리거나 끌려가지 않으려 잘 챙기자'라고.


비록, 어쩔 수 없어서 손가락 끝으로 마음 표현하고,

손가락 끝으로 뜻을 표현하는 빠름 세상을 아주

등지고 살 수는 없어서 이쪽저쪽 다리 걸쳐 놓고,

비겁하게 살지만 꼭, 필요한 만큼은 신세 지자꾸나!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은 나를 위하여!



* 똑똑한 너 1 : 노트북
* 똑똑한 너 2 : 프린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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