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 마을 널나드리, 역사는 흐른다
산골 사람 시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연氏 김氏 집
동창 마을 널나드리, 역사는 흐른다
나말여초 때 불상과 탑도 번듯허니 있지만
어떤 주춧돌은 어느 집 장독받침이 되었고
언제 생긴 절인지 절 이름은 무엇인지
살았던 승려나 시주자 이름 흔적 또한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어 갸우뚱하다
세력에 끼어 큰 난리를 겪었나 보다 할 뿐인,
서석 내촌 버덩에서 거둔 쌀
대동세로 한양까지 보내기 위해
동창에 쟁여 뒀다가 큰 비에 너브내
강줄기 내촌천도 불어날 때 바리바리
뗏목에 실어 보내고는 뼈 빠지게 농사지어
먹어보도 못한 쌀 한양으로 실려가니
임금님 수라상에 올라가려나 부다 짐작할 뿐인,
사통팔달 역참 마방터가 있어
사람 물건이 무시로 드나들었고
이 마을 저 마을 나라 소식도 따라와
마침내 기미년에는 만세운동이 벌어지고
여덟 열사가 일본군 총에 맞아 돌아가시니
새기고 기리는 뜻으로 팔렬 학교를 세우고
해마다 그날이 되면 만세 삼창 이어지는
동창,
마을 앞 쪽 내촌천 건너 마을에는
널로 다리를 놓고 물을 건넜다던
널나드리말 오백석 부자 연 氏 집이 있었지
처음엔 굽어진 소나무로 ㄱ자 집을 지었고
덧붙여 사랑채 덧붙여 ㅁ자 집이 되었던
ㄱ자 집 기둥보다 ㄷ자 집 기둥이 곧고
ㄷ자 집보다 ㅁ자 곳간이 더 반듯했던 걸 보며
그 작은 마을에서 무려 오백 석이라니
보통 바지런한 사람이 아니었구나 알겠다
바지런했던 연 氏가 세상을 뜬 뒤
ㅁ자 집은 지관 일을 보던 김 氏가 주인이 됐고
김 氏는 아홉 남매를 낳아 기르고 살았단다
서울 사는 큰아들 사업 자금 대 주느라
부동산 업자에게 ㅁ자 집을 판 김氏는
서울서 사업하던 이氏가 자기가 판 값
배나 더 주고 산 걸 알고는 툭-하면
오만 원이나 밑지고 팔았다며 속상해했다
외양간 곳간에 디딜방아까지 있었던
그 ㅁ자 집은 '여기 그런 집이 있었나!'
할 정도로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내를 건너던 널 다리도 시멘트로 바뀌었으나
큰비만 오면 잠수교가 되었다
잠수교는 다시 길보다 두 배나 높은 콘크리트 다리로 바뀌고
널나드리 마을은 동창의 강남이 되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했다
동창 마을 널나드리 말
역사는 흐르고 있다
그 옛날 부잣집 부자 터에서 여섯 해를 살았다.
빈집이었을 때 인연이 되었는데 인연의 실마리가 되셨던 분의 49재가 어제였다. 아, 그러고 보니 그분도 연氏 셨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