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일기
산속의 사계
모처럼 바람이 잠잠한 가운데 볕이 따사로운 날이다. 녹지 못한 눈을 밟으며 한가로운 날이다. 엄동설한 겨울 가운데 드물고 드문 날이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눈 물방울이 찰나의 순간 만나는 햇살과 포옹하며 순간 빛나는 날이다. 봄이 멀지 않은 듯 느껴지는 날이다. 더불어 산속에서 보고 느꼈던 사계를 떠올려 보는 날이다. 파노라마처럼 그려보는 날이다.
봄,
한동안 황사 바람에 하늘도 우중충하더니 어제오늘은 맑은 날씨다.
쨍쨍 내리쬐는 햇살에 사방 벽은 물론 지붕까지도 천막인 방 안은 뜨끈뜨끈 찜질방 같다. 벽은 천막이지만 지붕은 함석인 법당도 후덥지근하긴 마찬가지다. 이따금 부는 바람이 아니라면 주르륵 땀이 흐를 판이다.
언제부턴가 봄이라는 계절이 없어진 듯하다.
사월 초까지 눈바람이더니 어느새 땅심 풀린 곳에선 수북수북 쑥이 올라오고 냉이 꽃다지 달래가 지천인가 싶더니 금방 쇠어 버린다. 봄꽃이 차례대로 피었다 지는 것이 일일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뒷간에서 바라보이는 나무의 새순이 엊그제 돋는가 싶더니 벌써 너울거리고 있다. 우물가 산복사꽃은 언제 피었다 졌는지 꿈인가 싶다. 사람들 삶이 하나같이 여유 없이 속전속결(速戰速決)이니 나무와 풀꽃도 발맞추고 있나 보다. 사람들의 욕망에 응하는 자연의 응대인가 보다. 봄날 같지 않은 봄날이다.
해마다 한두 차례씩 몸살을 앓고 있다. 내리쬐는 햇살이 그렇고 피고 지는 나무 풀꽃이 그렇다. 동물들만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니라 나무와 꽃들도 계절을 모르고 피고 지다가 사라져 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변한 기후에 맞게 새로운 식물들이 생겨나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산속만 해도 지난해엔 안 보이던 꽃이 제일 먼저 피어 지금까지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행히도 돌탑 언저리나 솔숲 길가 바위 축대 언저리에 자리 잡아 나의 손을 바쁘게 하진 않는다. 분명 이름이 있을 텐데 몰라서 노란 꽃이라고 하고 있는데 마가렛처럼 몇 년 뒤에나 알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도 흉하진 않다. (나중에 알고 보니 노란 산괴불주머니꽃이다.)
긴 가뭄 끝 한울에서 은실 꾸러미를 소슬소슬 풀어놓을 때면, 들꽃들 들풀들 영롱한 구슬 빚어내느라 바쁘다. 은빛 발 사이로 아련히 보이는 소나무는 말라붙은 산새들 똥 씻어내느라 바쁘고, 산 아래 골짜기 끝에서 굼실굼실 휘감아 오르는 안개구름은 어느새 산 중턱에 걸터앉아 있다.
비 오는 날이라서, 구름 낀 날이라서, 달빛 좋은 날이라서, 별빛 좋은 날이라서…, 좋은 날엔 차를 마시기에도 더없이 좋다.
여름,
손전등을 켜고 주간신문을 본다.
우르르 쾅쾅 퍼붓는 소리에 라디오를 듣는 일도 쉽지 않으니 빗소리를 가락 삼아 눈을 수고롭게 하는 일도 괜찮은 일이리라. 잠깐 앉아서 마음 들여다보다 보니 어둠이 슬며시 곁에 와 있다. 눅눅한 방, 아궁이에 장작 몇 개비 지펴놓고 연기를 피해 마당으로 나간다. 한낮의 비와 천둥 번개는 어디로 갔는지 선들바람과 함께 고요하다. 부엌에서 새어 나오는 양초 불빛과 법당 비닐 창으로 새어 나오는 촛불 빛을 빼면 칠흑 어둠이다. 아니다. 소나무밭 옆 골짜기로 반짝이는 것들이 있다. 깜박깜박….
오미자 영글어가는 수풀 속에서는 반딧불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가만가만 날아오른다. 이리저리 날아오르다가 그 자리에서만 반짝거리다가 낙엽송 숲 쪽으로 돌배나무 언저리로 상추밭으로 나의 머리 위로도 맘껏 한껏 날아다닌다. 마당 둘레로 너울너울 춤을 추기에 나도 너울너울 춤을 춰본다. 춤을 추다가 부엌으로 들어가 아궁이 안에서 타들어 가는 나무를 안으로 밀어 넣는다.
해가 어스름 질 때, 집 둘레의 풀을 뽑거나 베다 보면 모기나 벌레에 물릴 때가 많다.
물리면 금방 벌겋게 부어오르며 몹시도 가렵다. 팔다리엔 여름철만의 훈장이 여러 군데다. 이 또한 다른 생명과 더불어 산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리라.
한 뼘 텃밭에 심어 두었던 감자가 어느새 잎과 줄기를 땅속으로 돌려보내고 잡풀만 덩그러니 남겨놓았다. ‘벌써 캘 때가 되었나?’ 은근히 설레어 캐고 싶지만 이어지는 장맛비에 참고 참는다. 한 이틀 그치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벌써 만나게 될 감자알을 상상하며 호미를 들고 조심스레 흙을 긁어낸다. 설렘을 저버리지 않은 아이 주먹 정도 되는 감자알이 뽀얀 모습으로 흙 속에 박혀있다. 겨울 동안 먹다 남은 감자에 싹이 났길래 칼로 도려서 심은 것이 이렇듯 거둠의 기쁨을 주다니 고맙고 행복하다. 내리쬐는 볕에 떨어지는 땀방울이 싫지 않은 날이다.
오솔길에 풀이 많이 자랐다.
사람 키만큼 자라 길을 덮고 있는 풀을 한 달 남짓 전 풀 깎는 기계로 쳐주었는데 그새 또 자라 있다. 빗방울을 머금은 풀들이 발목을 휘감으며 바짓가랑이를 적신다. 활짝 핀 채 껑충 자라 있는 황금 마타리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이파리가 이상하다. 식물도감을 다시 찾아보니 ‘은대가리’ 나물은 마타리과의 ‘쥐오줌풀’이란다. [봄이나 초여름에 줄기와 잎을 삶아 나물로 먹거나 말려두고 먹는다]는 길초근, 길초, 은대가리나물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황금 마타리는 미역취였다. ‘-과’가 같은 것이었다. 오솔길에는 마타리뿐 아니라 동자꽃이랑 칡꽃도 흐드러져 향기를 맘껏 내뿜고 있다.
아! 이 여름이 저물고 있다. 엊그제 입추(立秋)가 지났으니 말이다.
가을,
바람 몹시 부는, 구름과 해님이 숨바꼭질하는 날이다.
오가는 이 아무도 없이 바람만 들락날락하는 산속 움막집, 바람은 제 맘대로 문을 쾅쾅 열었다가 쾅 닫고는 솔밭길로 내달려간다. 이런 날 또한 2A 건전지 여섯 개로 켜지는 작은 소리통이 수고롭지 않아도 되는 날이다. 바람이 지휘하는 자연 음악회를 경청해야 한다. 협연이 한창이다. 우~우우우 ~우 나무들의 웅장한 소리에 끊어지지 않을 만큼 처마 끝 풍경이 땡그렁- 뎅그렁 땡-그러-렁. 양철 지붕은 드을썩 우당타탕, 바스라락 펄러덕 펄럭- 비닐 벽이 한몫하고, 부엌문이 삐이걱- 쾅- !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땡그렁 땡땡 그렁그렁 우~~~ 우 ~ 우- -! 심심할 겨를이 없다.
거센 바람에 떠밀려 먹구름 산등성이 넘어갈 제, 풍경(風磬)은 또 목놓아 울고, 삭고 삭아 부러진 문살에 마지못해 붙어 남아있는 비닐 문은 삐-익- 삐-거-덕- 제멋대로 들락날락한다. 한울이 우울하고 구름이 우울하고 바람이 우울해하니 덩달아 우울해야 할 듯하다.
어슬렁거림으로 우울감을 털어내는데 해바라기 하던 뱀 한 마리가 사람 발소리에 깜짝 놀라 금사초(禁蛇草) 흐드러진 곳으로 화들짝 들어간다. 양 볼 가득 팥알을 물고 돌담 위에서 곁을 살피던 다람쥐도 돌 틈으로 숨어들어간다.
겨울,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히도 엊그제 하루 밤낮 동안 눈이 오신다.
늦가을까지 옷을 죄다 벗은 나무는 담채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린 가슴을 드러내고 있어서 보는 이조차 가슴이 시린 듯 느껴진다. 바람이 불라치면 더더욱 춥게 느껴지곤 하는데 이처럼 눈이 오시어 골골 마다 빈자리를 덮어 주어 보는 눈(目)은 좋단다.
밤새 오신 눈이 발목 위 종아리까지 차오르더니 채 녹기도 전 아침부터 어지러이 바람을 타고 내려앉는 눈은 뒷간 다녀오는 발자국을 재빨리 덮어 버리고 만다. 바람을 앞세워 이리저리 앉을 곳을 한참이나 찾는 걸 보니 말 그대로 난설분분(亂雪粉粉)이다. 산도 언덕도 바위도 나무도 하얀 솜이불을 덮고 있으니 비로소 겨울 같다. 아주 푸근하게 느껴지는 겨울이다. 어쨌거나 겨울은 눈이 쌓여있어야 아름답다.
눈이 그칠 기미를 안 보인다.
싸리비가 아닌 플라스틱 빗자루질에 쓸린 눈이 한쪽으로 밀려나면서 소롯길이 드러난다. 바라보자니 또한 아름다운 풍경이다. 부엌에서 법당으로 가고 뒷간으로 가는 길만 쓸어내고는 어지러이 내려앉는 눈을 바라본다. 선 채로 얼굴 위로 내려앉는 눈을 맞는다. 눈 알갱이만큼의 시림이 잠깐 번졌다 사라진다. 사방을 둘러보니 늘 보이던 산봉우리가 보이질 않고 부엌문만 바람에 펄럭거린다.
우수가 지나면 바로 녹을진대 한파(寒波)가 온다는 소식과 함께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쌓인 눈을 얼리고 녹던 눈도 얼렸다. 참 눈이라 얼마간은 눈 구경을 맘껏 하게 되었다. 또한, 걱정하던 가뭄도 조금은 해갈될 것 같아 흐뭇하다.
벗이 있으면 차 한 잔 나누고픈 날 어느 스님의 「선방일기」와 함께 보내다가, ‘이런 날이었을까! 아님, 사락사락 조용히 내려앉는 날이었을까!’를 그려보게 되는 중국의 원통 법수선사(圓通法秀禪師)의 글을 만났다.
- 아주 뛰어난 이는 자신이 앉은자리에서 바로 참선(參禪)하고,
- 보통 뛰어난 이는 붓을 들고 시(詩)를 지으며,
- 그리 뛰어나지 않은 이는 화롯가에 둘러앉아 먹고 떠든다.
눈 오시는 날에 부쳐 수행자의 그릇 됨됨이를 셋으로 헤아려 매긴 글이다.
오늘 같은 날은 새들조차도 제집에서 나오질 않는다. 그저 풍경만 뎅그렁거릴 뿐이다. 바람 벗이 오는 날은 늘 그렇지만 저녁에 불을 지피려면 눈물깨나 흘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