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일기
정신 차려!
씽크대 개수대를 닦는다
배수구를 닦는다
냄새나지 말라고
덮은 몇 겹의 뚜껑을 하나
하나 꺼내서 이빨 못 닦는
칫솔로 닦는다
구멍 뚫린 스텐 거름망을 꺼낸다
온갖 찌꺼기가 빠져나가면서
남긴 시커머죽죽한 흔적들
칫솔모에 벗겨진다
차갑고도 덤덤한 빛깔을 찾은 스텐 거름망
그 아래 세 개의 챙을 가진 모자처럼
배수구 관을 덮고 있는 뚜껑을 꺼낸다
미끄덩,
똑 부러지지 못하고 미적지근 우유부단하게
요 핑계로 조리 빠지고 조 핑계로 요리 빠지고
비겁하게 살아가는 흔적마냥 거기에
미끄덩 허니 들러붙어 있다
요리조리 빠져나가고 빠져나가려 해도
흔적은 말끔히 빠져나갈 수 없는 법이라는 듯
미끄덩하니 들러붙어 남는 법이라는 듯
야금야금 오염 물질을 키우는 법이라는 듯
하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욕망이 이끄는 대로
그럴싸한 논리로 남들이 말하는 대로
흐리멍텅 대충 생각하고 우물쭈물 주춤주춤
그러다 보면 쓸모 있는 사람은커녕
부림 당하고 이용만 당하다가 가는 거지
정신 차려,
아직 다 문드러지지는 않았다면
한 줌 서릿발 남아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