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음 소희'의 한 장면올 2월 중순, 영화 한 편이 잠자던 기억을 두드렸다.
언제부턴가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인사말이 낯설지 않은 것도 모자라 당연하게 들릴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쯤부터 불편함, 불편한 진실이 곰팡이처럼 여기저기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도 그랬고 가까운 과거 1970년 대 8, 90년 대 까지만 해도 '사랑한다'는 말은 흔하게 쓰이는 말이 아니었다.
가족은 물론 연인끼리도 대놓고 쉽게 쓰질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며 나의 조부모나 부모님들도 손주 자식인 우리 형제들에게 한 번도 안 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며 들어본 기억도 없다. 우리 가족이 다른 가족들보다 사랑한다는 말에 더 인색했던 까닭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말로 안 들었을 뿐이지 사랑을 안 하셨던 건 아니다. 특히나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살았다는 걸 돌아가신 지 3,40년이 넘은 지금도 몽글몽글 따사로운 느낌으로 마음곳간에 저장 돼있음을 안다.
그럼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부터 표현에 인색하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걸 넘어 너무 흔하게 쓰는 말이 되었을까!
유래를 찾아보니 2006년부터 2012년까지 '114 전화안내 고객센터에서 썼던 인사말'이라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합니다, 고객님~!'은 주로 여성이 했기에 전화를 걸은 어떤 일부 남성들은 '사랑한다고? 그럼 지금 만나 사랑하자.'라고 받아치기도 하였는데, '지금 만나 사랑하자'는 속 뜻은 그냥 말로 하는 사랑이 아닌 성희롱이었기에 고객 센터에서 일하는 이들, 특히 여성들은 이중삼중 감정 노동에 시달렸음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사랑', 그때는 거의 모두에게 낯선 흔한 말이라 개그 프로나 우스개거리로 패러디가 난무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끝내는 2012년 7월 경, 114 인사말은 '사랑합니다, 고객님'에서 '힘내세요, 고객님~'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몇 년 전,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와서 겪었던 일이다.
[Web발신]
'안녕하세요. 고객님과의 만남이 행복했던 상담사 최**입니다. 상담 시작부터 종료까지 변함없이 따뜻한 음성으로 대해 주셔서 반복적인 저의 일상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저 또한 고객님의 따뜻한 음성을 기억하며 더욱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상담사 안**입니다. 고객님의 부드럽고 따뜻한 음성에 너무 행복했습니다. 고객님의 한결같이
부드럽고 따뜻함에 저도 더 친절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날 되세요~~'
2016년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는 마을로 이사를 했는데, 가장 가까운 거리에 지나는 게 kt라 고객센터에 인터넷 신청을 했더니, 인터넷을 쓰려면 3 회선 이상을 신청해야 하고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
인터넷 카페를 관리하는 나로서는 며칠 고민이 됐고, 가까운 벗들과 의논 끝에 1 회선은 벗이 2 회선은 내가 부담하기로 한 뒤 인터넷을 쓰기 1년 8개월이 지났다.
다달이 2회선 인터넷 통신비를 내는 것보다 약정기간이 넘지 않았기 때문에 위약금을 물고라도 1 회선 비용만 내는 것이 1년이면 20만 원 남짓 이익인지라 해지하기로 하고 kt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1 회선을 해지 시켜달라는 상담을 했고, '그러는 게 좋겠다'며 인터넷 설비팀에 접수를 시켜 주는 것으로 해지 처리 완료가 됐다.
몇 분 뒤 문자가 왔다. [web발신]이라는 제목으로.
전국의 모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거나 시키면 SK 주유가 기준에서 80원 할인과 톨게이트비가 30%로 할인된다는 카드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팩스 발송 청구하기
위해 손해보험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상담원과 통화한 뒤 전화를 끊고 나니 문자가 왔다. [web발신]으로.
문자를 받고 보니, '감정노동자'의 애환이 느껴졌다. 통화할 때 인사를 하거나 묻거나 대답하거나 또는 통화를 마치면서 '좋은 날 되세요~'라는 말 한마디에 감동을 받고 있음을 느끼긴 했지만 이렇듯 문자를 받고 보니 그미들의 고충과 애환이 가슴으로 훅- 들어오는 것 같고 가슴이 저렸다.
그냥 덤덤히 삭제하려니 손끝이 떨렸다.
'감정 노동자' 언제부턴가 낯설지 않은 낱말이 됐다.
'노동' '노동자'라는 낱말은 공장에서 일하는, 또는 건물이나 건축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이름인 줄 알았다.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거나 무대에서 화려한 모습을 한 사람들은 노동자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줄 알았고, 소금땀 비지땀 흘리는 이들에게만 '노동'이라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낱말을 써야 하는 줄 알았는데...,
며칠 사이, 두 건의 문자를 받으면서 딱 꼬집어 알 수 없고 까닭 모를 아픔이 뭉글뭉글 가슴을 훑는 걸 느꼈다.
까닭 모를 아픔이 뭉글뭉글한 건 어쩌면 2018년 동계올림픽을 치르고 있던 평창군(의)민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두 번이나 퇴짜 맞고도 포기 안 하고 세 번이나 도전해서 끝내는 개최하게 됐음을 '인간 승리'처럼 자랑스럽게 포장하던 사람들이 나중에 가서는 사사건건 딴지 걸고, 마음이나 힘을 보태지 않고 당최 아랑곳 않는 모습으로 보이는 건 나만의 지나친 오해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2018년 나는 가까운 곳에서 보았고 들었고 겪었다.
며칠 남지 않은 동계올림픽 개최일이 코 앞인데 (아직도)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볼이 터질 것 같은 추운 날씨에 도로 한복판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었다는 걸.
개막식이 코 앞인데 준비가 덜 되어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좋은 글보다는 안 좋은 글은 물론 비난의 글만 보이는 걸.
그래도 편협한 내 마음 내 눈 탓이라고 생각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안 좋은 말을 들으면 그 까닭을 자세히 알려하기보다는, 안 좋은 말을 한 그 사람 탓하기보다는, 다짜고짜 사랑하는 사람에게 짜증을 내는 미성숙한 인간의 어설픈 사랑처럼 나는 그때, 상담원의 문자를 받고 어디에다 하소연해야 할지 모를 가슴 저림에 구시렁 거림이 생각 바다에서 문득문득 자맥질하는 걸 지켜보아야만 해야 했다.
그리고 4년이 지났다.
올 초 누군가 추천한 영화 '다음 소희'를 보았다. 영화 속 현실은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퉁치고 넘어가기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거대하고 견고한 장벽이 '다음 소희'들 앞을 우뚝 막고 있는 게 영화가 아니라 '지금 현실'이라는 사실에.
대한민국을 앞서 살아온 우리 세대들이 그렇게 만든 거라는 생각에.
그리고 그때 내게 보냈던 문자의 주인공은 '다음 소희'일지도 아니 '다음 소희'였기에.
* 다음 소희 : 2023년 2월 8일 개봉한 영화.
주인공 소희는 현실의 벽에 들이 받혀 죽음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고, 유진은 벽을 들이받으며 깨트려 보려고 멍이 들고 있는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