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일기
기쁜 날
지렁이가 없는 밭이 있습니다
타다 만 비닐 플라스틱 조각 녹슨 쇳조각
시멘트 유리 조각들이 돌처럼 많습니다
아궁이 속 재와 똥이 버무려진 두엄 더미
속에서 거름을 만들던 지렁이가 사라지고
이랴 이랴 워 워~ 추 추 추 소리와 함께
쟁기를 메고 밭을 갈던 소도 사라진 논밭엔
소와 장정 스무 몫을 하는 흙갈이 기계와
풀 못나게 덮은 꺼먼 비닐에 풀 죽이는 약으로
땅을 뒤덮는 동안 지렁이는 화석이 되었는가 보다
했습니다
한 해 동안 정성을 들였습니다
시멘트 비닐 유리 조각 보이는 대로 골라내고
풀이 나면 뽑을 수 있는 만큼 켜켜이 쌓아두고
커피나 차 찌꺼기 음식 찌꺼기 모아 모아
죄다 묻어주고 내버려 둔 채 긴 겨울 보내고
짧은 봄까지 보냈습니다
비오시던 여름날 호미를 들고 풀뿌리를 뽑는데
반들반들 토실토실한 지렁이가 튀어나옵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뿌듯한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