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기차를 타보고 싶다던 벗에게 - 1
* 이 글은 2011년 인도에서 벗을 생각 하며 썼던 글로 인도는 물론 나는 그때와 지금 무엇이 달라졌는지 살피려 한다.
수진, 지금(2011년 1월 24일) 난 인도의 어느 도시에서 또 다른 도시로 가는 기차 안에 있어.
도시와 도시를 이어주는 탈 것들로는 비행기, 기차. 버스인데 모든 곳에 쓰이는 건 아니더군.
언젠가 네가 그랬지? "인도의 기차를 타보고 싶다."고.
네가 그리던 그 기차는 아닐 테지만 나는 지금 인도 사람들과 함께 같은 칸에 앉아 어디론가 가고 있어.
'수진은 무슨 까닭으로 인도의 기차를 꿈꾸었을까!'
너는 그 꿈을 이루었니? 가끔은 궁금하기도 해.
나는 사실 잿빛 옷에 머리카락을 밀어낼 무렵, 그즈음부터 '한 번쯤은 다녀와야겠다.' 생각했어.
근본 스승의 고향, 붓다를 이룬 곳이며 진리를 편 무대이기 때문이야.
우습지?나의 부모, 조부모의 고향을 그리거나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으면서, 본 적도 없고 시대도 동 떨어진 스승을 기루며 그 고향에 가보고 싶다는 꿈을 꾸었으니 말이야.
비록 두 달 밖에 안 됐지만 와보니 어렴풋이 알겠어.
그리고 인도라는 나라의 사람들이 가진 힘이
많은 나라 사람들을 이곳으로 이끄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어.
그런데 이곳에 와서 무얼 제일 많이 만난 줄 아니?
기차역, 버스 터미널, 성지(聖地), 숙박업소, 시장, 길거리..., 어디든 할 것 없이 가장 먼저 반기는 것들은 온갖 똥(소, 개, 사람...,)과 먼지와 뒤엉킨 지린내와 커리 냄새야. 그리고 상점이고 대합실이고 거리고 차도고 할 것 없이 느긋하게 느기적거리며 돌아다니다가 쓰레기를 뒤지고 먹을 것을 찾다가 똥을 싸는 소들, 그런 속에서 음식을 팔고 먹고 싸는 사람들..., 그리고 거지들이야. 그런 곳이 인도더구나.
그나마 성지와 떨어진 도시에선 거지 떼는 안 만난다.
성지, 더구나 불교성지에는 외국 사람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아주 많은 거지들을 가는 곳마다 만나야만 해.
그래서 섣불리(?) 베풀었다가는 떼로 몰려오는 거지들을 떨쳐내기가 어렵고 힘들어.
달려오는, 달려드는 모든 이들 거의가 꾀죄죄한, 아니 다 떨어진 옷에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처량한 눈빛으로
끈질기게 쫓아오는 그들을 모질게 물리치지 못하고 몇 푼 주기라도 할라치면 놀랍게도 곧바로, (어디에서
나타나는 건지) 수많은 이들에게 에워싸이곤 해. 그때서야 비로소 베풂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돼.
나? 나는 한 번도 준 적이 없어. 나 또한 거지이기도 하고 더 크게는 그들에게 구걸하는 그 업(業, 행위)을
이어가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야.
성지 들머리에 앉아 있거나 따라다니며 구걸하는 이들.
그래, 어쩌면 그들은 이미 업력(業力)으로 익어졌는지 몰라. 그렇지만 나도 나의 도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야.
무슨 뜻이냐고? 내가 그들에게 한두 푼 주는 일은 곧 그들에게 그 업을 이어가도록 부추기는 꼴이 된다고 생각하거든.
결코, 그렇게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이야. 그들이 싫어서도 아니고 미워서도 아니야.
그저,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그들이 더 건강한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컸기에 물리쳤던 거야.
구걸하는 이들 가운데는 아주 어린애도 있어. 이제 겨우 예닐곱 살이나 되었을까! 많아야 여덟아홉열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인형만 한 또는 제 덩치만 한 아이를 안고 다니며 손을 내밀어. 그런데 그 뒤에 누가 있는지 아니? 어쩌면 부모일지도 모를 어른이야. 아이가 한 푼 얻으면 뒤에서 지켜보다가 곧바로 낚아채듯 가져 간단 말이지. 그래서 나는 고작, 그 업이 바른 일이 아님을 알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런 일 안 했으면 좋겠어.'라고 중얼거려.
그런데..., 오늘은 2루피를 썼어. 바로 이 기차 안에서. 다섯 살에서 여덟 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들에게 말야.
왜냐고? 그들을 보았기 때문이야. 아니 그들을 봐 버렸기 때문이라는 말이 더 적확하겠다.
그러니 본 값을 줄 수밖에 없었어. 본 값이 뭐냐고?
그 아이들은 남매인지 아니면 그 업을 하도록 훈련을 받은 건지도 모르겠어. 암튼 그 애들은 침대칸의 통로, 그러니까 한쪽엔 여섯 개의 침대 또 한쪽엔 두 개의 침대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3등실 침대칸 통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게 되어 있는 그곳을 지나다니려면 조금은 겸손(?)해져야만 할 정도로 좁은 곳을 그 애들이, 그 좁은 곳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구르기를 하면서 오가는 거야. 마치 서커스를 하듯이 두 아이가 서로의 발목을 잡고 서로의 가랑이에 머리를 처박고 바퀴가 굴러가듯 구르기를 하는 거야. 얼굴에는 시커멓고 빨간 칠을 하고 말야. 그렇게 한 칸의 이쪽에서 저쪽, 저쪽에서 이쪽 끝과 끝을 왔다 갔다 구르더니 다음에는 남자애가 납작 엎드려 쭉 뻗으니까 남자애 등허리로 여자애가 기어 올라가서는 스윽- 발끝으로 기는 거야. 자세히 보니까 가늘고 좁은 링을 허리에 감고 있지 뭐니. 그러니까 남자애의 허리에 감긴 둥근 고리를 여자애가 남자애 몸에 붙일 대로 붙인 뒤 기어 빠져나오는 거야.
무언가에 홀린 듯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조금 있으니 남자애가 비빔 그릇만 한 양푼을 들고서 침대가 될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툭툭 치는 거야. 돈을 달라는 거지. 내게도 마찬가지로 그러더군.
어찌 안 줄 수 있을까 싶게 말이야. 그래서 2루피를 꺼내 주었어.
인도는 참 넓더구나. 그 가운데 우리는 북인도에서 남인도 쪽으로 갔다가 다시 북인도로 쪽으로 가고 있어. 기차를 한 번 타면 보통 10시간 정도는 가야 하는데 오늘은 '아우랑가바드'에서 6시 첫 차를 타고 '만마드'로 와서 여섯 시간을 기다렸다가 '보팔'로 가는 기차를 탔어.
내가 탄 3등 칸의 침대는 한 사람이 반듯하게 누워 팔을 얌전하게 두어야 할 만큼의 넓이야. 그런 침대를 세 개 다 펴면 중간 침대에 누운 사람은 일어나 앉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 허리를 펼 수 없는 높이거든. 말 그대로 옴싹달싹하기가 힘들어. 밤이 새고 아침이 되도록 뒤치락 엎치락하면서 가방도 지켜가며 잠을 자거나 누워있어야 하는 거지.
통로엔 뒷간 가는 사람, 짜이나 바나나 따위의 군입질 거리를 팔러 다니는 사람들의 번갈아 오가는 풍경이 펼쳐지는데 인도만이 가진 풍경이 아닐까 궁금하기도 해.
(2 편으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