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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닿으니 땅이요, 머리 위에 있으니 하늘인 길

인도 기차를 타보고 싶다던 벗에게 - 7

by 버폐

게스트 하우스 '히말라야'에서 아침을 안 먹고 '데우랄리'로 가서 먹기로 하고 길을 떠났어.

눈과 얼음으로 덮인 길은 처음부터 갈 길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 주었지.

도무지 길이라고는 볼 수 없는 길들이 나타났거든.



서로서로 도와주지 않으면 낭떠러지로 구르던지 차가운 얼음물로 '첨벙!' 하기 십상이었어.

온 마음을 발끝과 손끝에 모으며 어찌저찌 '데우랄리(3230m)'에 도착했는데 시간을 보니 9시 20분.

림이는 "여기까지만요."라더군. 제주도 스님도 그러자고 하셨고.

제대로 된 등산복도 안 입었고, 아이젠이나 등산화도 변변치 않은 터라 더 이상은 무리라고.

알고 보니 신발에 물이 스며들고 있던 거야.


내게도 의견을 물으셨는데 나는 망설임 없이 "가볼 때까지 가야지요. 두 분은 여기 계셔요. 다녀올게요." 했어.

뜻밖의 대답에 (스님은) 잠시 고민하셨어.

그리고 다시 부딪쳐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하였어.

해결책은, '데우랄리' 게스트 하우스 주인장의 신발과

이웃집(게스트 하우스) 안 주인의 신발까지 빌려 신는 걸로.

신발을 해결한 뒤, 아침을 먹었어. 메뉴는 언제나 그렇듯 삶은 달걀과 채소 볶음밥.



10시 20분, MBC로 향했어.

가파르고 험한 오르막길이 거듭 이어지는데 12시쯤부터는 눈발도 날리기 시작하는 거야.

허위허위, 한 발 한 발 힘겹게 내딛는 '나를 보는' 그 가운데서도 눈 오시는 풍경은 그저 좋기만 한 거야.

내가 이럴진대 눈을 처음 보는 림이는 어떨까! 림은 미얀마가 고향이기에 눈 내리는 한 번도 적이 없었거든.




한낮 1시 50분, 드디어 MBC에 다다랐어, (3700m) 눈보라를 헤치고 올라오는 사람들(우리)을

반갑게 맞아주며 눈을 털어주고 따뜻한 곳으로 이끄는 캠프 사람들 덕분에 추위까지 사르르 녹았어.

우리는 몸을 녹인 뒤 점심으로 마찬가지로 볶음밥과 채소 감자 수프를 시켜 먹고 떠날 채비를 하는데.

다른 트래커들은 눈이 온다는 이유로 ABC까지는 안 가고 이곳(MBC)에서 묵을 거라며 느긋하게 있었어.

그러나 우리는 계획한 일정대로 ABC까지 가기로 했지.


거북이걸음으로 남들보다 일찍 길을 나서고 남들보다 늦게 도착하기를 나흘 째였지만,

하늘과 땅을 알아볼 수 없는, 희미하게 보이는 흔적들이 자꾸 사라지고 눈은 자구 쌓여가는데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어.

힘들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고도가 높아서인지 걸음이 무겁고 느리기만 한 거야.

다섯 걸음 걷고 쉬고 다섯 걸음 걷고 쉬기를 되풀이하는 가운데 가스통을 지고 가던 포터는

벌써 사라져 흔적도 보이지 않았어. 분명 우리보다 뒤에 오고 있었는데 어느새 앞질러 간 거지.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일까!

발바닥이 닿으니 땅이요. 머리 위에 있으니 하늘이라고 할 정도로 눈인지 산인지 하늘인지...,

길이 보이질 않았어.


이젠...,

말 그대로 하얀 눈나라. 그 나라 한가운데 우리뿐인 듯해.

ABC까지 예상시간이 2시간이라는데 우리는 그 시간을 벌써 훨씬 넘긴 지 오래야.

하얀 세상이지만 어둠이 찾아들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어.

그래도 오직 걸을 뿐이었지.



내가 가는 길 또한 이와 같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희미한, 잊혀가는, 길이 안 보인다고 포기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곳이 있기에', '그곳을 믿기에' 천둥 번개 비바람 눈보라 낭떠러지 길을 헤치고라도 가야 할.

모두가 즐겁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길을 갈 때, 뜻대로 안 되고 오직, 제 힘으로 닿을 수 있는 길!

오늘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그와 같은 길'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끼며

한 발 한 발 내디뎠지.


콧물이 쉴 새 없이 흘러 자꾸 훔치다 보니 코밑이 허는 거야.

훔칠 때마다 따끔따끔, 피가 나는 건 아닌가 싶을 때

아득히 보이는 저 끝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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