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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뽀개지는 듯한 통증에 잠을 깨고

인도 기차를 타보고 싶다던 벗에게 - 8

by 버폐

나흘 동안 이 산을 오르는 동안, 지금껏 림이와 나의 걸음에 맞추던 제주도 스님의 갑자기 걸음이 빨라지셨어.

그러나 여전히 느린 걸음으로 걷는 우리 눈앞의 스님은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 하더니 어느 순간 보이질 않았어.

마음은 부지런히 쫓아가고 있는데 몸이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 신기하고 답답한 상황이더구먼.

스님이 다시 나타나셨어. 짐(배낭)을 캠프 처마밑에 내려놓고 우리 짐을 받으러 다시 오신 거였어.

림이의 짐을 받아지시고는 다시 앞장서 가셨어.


드디어 ABC


ABC (Anna Purna base Camp) 식구들이 나와서 눈을 털어주고 짐을 받아 들고 따뜻하게 맞아주면서 들어가는데 나도 모르게 기쁨이 출렁이는 거야.

우리 셋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꼬옥- 껴안았어.

나도 림이의 어깨와 등을 토닥이면서 "우리 거북이들이 해냈어."

감동을 나누었지.


캠프 식구들은 우리에게 옷을 갈아입고 오라고 하더군. 몇 시간 동안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맞으면서 느리게 느리게 걸어왔으니 옷이 흠뻑 젖어있었던 거지.

그러고 보니 어깨가 축축하고 서늘한 느낌이 드는 거야.

배낭 속의 옷으로 갈아입고 젖은 것들을 들고 난로가 있는 사랑방(Hall)으로 갔어. 그곳은 꽤나 훈훈했어.

ABC 식구들은 푹 젖어있는 우리의 장갑, 모자, 버선을 난로 가까이에 널 수 있게 해 주더군.




난로를 가운데 두고 놓여있는 탁자와 의자에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

낮부터 내리는 눈 때문에 이곳까지 오질 않고 MBC에서 머무는 이들이 많았던 거지.

몇 안 되는 이들 가운데는 한국 사람도 두 명이나 있었고, 우리와도 인사를 나누었어.

그들은 "MBC에서 묵고 오시지 어찌 이 눈보라를 헤치고 어두워지는 데를 올라왔느냐?"며 놀라워했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식했던 거지. 가이드나 포터(짐꾼)도 없이 왔으니 말이야.

게다가 정해 놓은 일정은 꼭 지켜야 한다고 여기며 왔으니...!

바깥을 보니 어느새 눈은 그쳐 있더군.


창문 밖, 눈이 풍경을 다 가렸다.


따뜻한 물로 추위를 녹이고 있으려니, 코밑이 헐어 쓰라리다는 느낌이 드는 거야. 올라오는 동안 (콧물이 얼마나 흘렀는지) 콧물 고드름이 달릴까 손수건으로 열심히(?) 닦아낸 결과였던 거지.

다행히도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그곳에서 만난 이들 거의는 그런 일을 겪어보았다는 듯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어.


우리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저녁을 시켜 먹었어. 이 높은 곳에서 먹을 것을 사 먹을 수 있다니...,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무척이나 고마운 마음이었지.


따뜻한 음식으로 속을 뎁힌 뒤 난로 옆에서 한참 더 몸을 녹이다가 잠자리에 들어갔는데,

고도가 높아서인지 잠이 쉬이 들지 않고 자꾸만 숨이 차는 거야. 두 겹의 침낭인 데도 찬기가 느껴지니까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겠는 거야. 그러더니 급기야 새벽에는 가슴이 뻐근하고 터질 듯하더니만 심장이 뽀개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는 거야. 얼른 침낭 지퍼를 열어 숨을 몰아 내 쉬고 나니 조금 나아졌어. 그러기를 두어 번 더 하다 보니 설핏 든 잠도 깼어.

동이 트려면 아직 멀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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