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

어제 일기

by 버폐

성묘


할아버지 산소에 왔다

오십 년 전에는 없었을 낙엽송이

그림자를 마중 내보낸 골짜기 밭가


여적 묻히실 때 그대로일까

부질없는 생각 한 줌에 추억을 얹는다


무릎에 앉아 응석 부릴 수도 없고

있었던 일 조잘댈 수도 없는

세간의 개념으로 라면 이미 벌써

다른 몸으로 다른 세상에 나서

나 같은 건 찰나도 기억 못 할 텐데


그런 줄 뻔히 알면서도 굳이

노루똥 잦아드는 양지 봉긋한

이 흙더미를 찾은 까닭은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핏줄이라는 보이지 않는 끈이

귀하다 이쁨 받던 손녀의 도리

사람 노릇 기꺼이 하라 하네


산소가 자손이 없으면 모를까

산소가 자손이 가까이 있으니

설날 아침 그늘진 얼음길 오른 뒤

엄동설한 한파 바람에 뚝뚝

꺾이고 부러져 널브러진 봉분 위

낙엽송 가지들을 주워 걷어내고는


기억 속 할아버지 생각하며 한 잔

여기엔 계시지 않다 여기며 한 잔

사람 노릇 핑계로 핏줄 생각하며 한 잔


엎디어, 세 잔의 차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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