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목련이 지던 날

산골 일기

by 버폐

하얀 목련이 지던 날 (고 김성현 님을 기리며)


이맘 때면, 내가 사는 산골은 아직 목련이 지지 않았지만 원주나 안동은 목련이 지고 말았을 이 무렵이 되면 떠오르는 인연이 있다.


"이 남쪽으로는 바람이 안 부니껴~?"

"아, 그러게요.. 왜 그쪽으로는 안 불까요?"

"그르니까요? 다른 데는 다 부는가 본데 와 남풍은 안 부는지...,"

"다른 데도 잘 안 불어요."

"에이, 온양도 불고 미얀마도 불었다아인교?"

"아, 그건 저 혼자 가는 게 아니고, 함께 가야 하는 일이라서..., "


한 달에 한두 번 또는 몇 달에 한두 번씩 가끔가끔, 잊을만하면 전화를 거는 님이 계셨다. '언제 한 번 안 올 거냐?'라고 물을 때마다 막연하게 '언제 가겠다' '조만간 가겠다'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건데 '간다' 하고 못 가게 되면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는 게 되고, 막연하게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직도 남풍은 안 부니껴~? 내가 옷을 한 벌 구해놨는데 오시면 줄라꼬예."

"아, 그래요? 봄 지나면 불지도 모르겠네요. 고맙습니다~"


"여보세요, 아직도 이쪽으로는 바람이 안 부니껴. 아따, 마! 거 바람은 참 게으르고마.."

"그러게요.. 좀 부는가 기다렸는데 코로나가 막아서네요."




홍천 농가에 살 때, 지인과 함께 처음 인연이 된 님, 소변주머니를 차고 배에 스스로 인슐린을 놓으면서도 밤늦도록 지침 없이 이야기를 나눈 인연, 살 집이 없고 갈 곳이 없어 막막할 때 토굴이 있다며 보러 오라는 말에, 토굴보다는 낯선 곳을 향해 달리고 싶어 그가 사는 곳으로 달려간 곳은 안동. 함께 바다구경을 하고 함께 밥을 먹고 밤늦도록 또 한 번 이야기를 듣고 헤어진 뒤, 한 번도 먼저 안부를 물은 적이 없었다.


당신의 제자와 벗, 아내를 앞세워 지금 사는 봉평을 한 번 더 와서 이틀 밤을 머물다 가면서 '꼭 오라' 하였는데, 맨날 바쁘다는 이 핑계 저 핑계로 가질 못했다.


전화가 한동안 오지 않으면 '바쁘신가 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건강이 더 안 좋아져 병원과 저승 문턱을 다녀오기를 몇 번, 그래도 씩씩하게(?) 전화를 걸어 "내 이번에 저승 문턱 다녀오느라 쫌 바빴시니더."

"예? 더 악화되신 거예요? 글 쓰는 걸 좀 줄이셔야겠네요.."

"에이, 저승사자가 일 다 마칠 때까지는 오지 말라쿠드만요."




우리나라에서 아니 세계에서 생명철학을 최초로 편 그는 아프고 힘든 상황에서도 '생명철학' 강의를 하였고,

눈이 실명되는도 모자라 투석을 일주일에 세 번 나중에는 두 번을 하는 가운데서도 책 출간 작업을 하느라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전화를 하였을 때, '바쁘다' 하면 얼른 끊고, 여유롭게 받으면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모자랄 만큼 이야기샘이 마르지 않았다.

말귀를 알아듣는다 싶어서 그랬는지 늘 생명철학을 주제로 하였고, 가끔은 '불교에서는 어떻게 보냐?' 묻기도 하며, 종교인은 다 사기꾼이고 중놈인데 아닌 스님도 있더라며 말벗을 삼아 주곤 했다.


"아직도 남풍은 아직도 안 부니껴~? 책이 나왔는데 직접 와야 줄낍니더. 다른 사람들한테는 다 돈을 받고 주지 거저 안 주는데, 오믄 내 특별히 줄라꼬요."

"아유, 고생하셨네요.. 예, 가서 받을 께요.. 바람 불면 갈게요~"


정말로 가려고 했다. 건강 더 안 좋아지기 전에, 내 책도 나왔으니 한 번 보시라고 드리면서 밥도 먹고 말벗도 되어 드리려 했다.

하지만 2년 전, 그때는 세밑과 설을 병원에서 보내고 있었고, 몇 번 전화를 하였지만 시간이나 상황이 안 맞아 못 받다가 어느 날 통화를 하는데 기운이 많이 쇠하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몇 번이나 그랬고 여전히 예의 씩씩한 말버릇으로 눙치며, "내가 책을 보내드렸던가요?" 묻기에 "와야 준다고 직접 가지러 오라셨잖아요. 그래서 그러려고요."

"주소 알려 주소."




2021년 봄, 병원에 있다가 잠깐 퇴원해서 보니 책이 와있다. 무려 670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이었다.

잘 받았다는 인사를 드려야지 하면서도 뭣이 그렇게 바쁘고 여유가 없었는지 인사를 제대로 못했다.

그런데 그만 부고[訃告] 문자를 받고 말았다.

아, 生者必滅이라지만...!


오늘, 꽃이 진다는 소식들과 함께 다시 한번 그와 인연한 날들을 떠올리며 살아생전 뿌린 생명철학 씨앗이 튼실하게 뿌리를 내려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되살아 오길 염원한다. 그의 이름은 김 성 현 이다.


덧붙이는 말 : 고인은 자신이 세상과 이별할 것을 예감했는지 평소 소원(疏遠)하고 불편했던 친인척을 다 불러서 밥 한 끼 또는 차 한 잔을 나누면서 불편함을 푸는 자리를 가졌다는 말을, 나중에 유족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나는 한 번 더 못 찾아보고 한 번 더 오랜 시간 이야기를 못 나누었음이 잠깐 아쉬웠으나 고인과 생명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편하게 많이 나누어서인지 곧, 고인의 삶을 존중하는 한편 그가 얼마나 환경 그리고 지구와 생명철학에 열정 넘치는 삶을 살았는지를 기리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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