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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폐 Jul 20. 2023

생 살 찢고 뼈 때리고

병상일기 8

거의 석 달 만에 퇴원을 하고도 걷지를 못해 동네 한의원과 가정의원으로 물리치료실을 출근하듯 다니던 어느 날, 면 보건소 주차장으로 이동 건강검진 차량이 온다는 안내문을 보았다.

안 하고 싶은 일 가운데 한 가지지만, 안 하면 불이익이 따른다는 말을 들은 데다 동네까지 온다니 승용차로 한 시간을 가야 할 수고로움을 더는 일이니 받기로 했다.


보건소 주차장에는 진료 장비를 장착한 버스가 서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검진받으려는 이는 나밖에 없고, 직원들은 접수와 함께 혈압, 키, 몸무게, 허리둘레, 가슴둘레, 키, 몸무게, 시력, 혈액 검사를 하게끔 안내를 했고 의사는 문진을 다.

허리 복대를 하고 있는 데다 지팡이까지 짚고 걷고 있어서 일 것이다.

나는 얼마 전에 디스크 수술을 했다고 했다. 그랬더니 어느 병원에서 했냐고 묻는다. 한방대학병원에서 했다고 했더니 의사는 코웃음을 치며 '한방병원에서 무슨 수술을 하느냐'며 믿지 않는다.

나는, '다리가 마비돼 처럼 생긴 침으로 디스크에 유착돼 있는 것을 끊어내는 치료를 받았다' 했더니, "어, 그건 수술인데...? "



시술이 아닌 수술은, 살을 째고 디스크에 들러붙은 것을 떼어내는 이다. 

도침 치료는 수술 권유를 받은 추간판 탈출증(디스크)이나 협착증 환자에게 적용하는 데 장점은 살을 많이 찢지 않아도 된다는 것. 단점은 마취 없이(마취를 하는 이도 있단다) 하기 때문에 생살을 찢고 뼈를 때리는 아픔을 그대로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모든 한의사들이 다 도침을 놓을 줄 아는 건 아니다.

 

두 달 남짓 입원을 하고 있지만 효과 빠른 (벌의 독을 정제한) 봉약침은 심한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녹용침은 단백질 알레르기를 일으키니 못 놓고, 천연 식물성 약침으로 호전 반응이 너무 느리고 입원일 수는 적잖이 쌓였으니 속이 타는 담당 교수는 어느 날 말한다.


"내일모레는 지금 까지 맞은 침 가운데 가장 아픈 침을 놓을 거예요. 너무 아프니까 못 견디겠으면 언제든 멈추라 하세요."




그렇게 나는 그해 여름 같은 봄날 최고의 선물이자 마지막 선물을 받았다.


입원 환자들 치료를 모두 마친 진료실에는 도침 몇 개와 소독솜 그리고 수술할 때 끼는 듯한 장갑이 청록빛 천 위에 잔뜩 올려져 있었고 담당 교수와 주치의가 다가오고 있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몸 견디겠으면 손가락으로라도 그만하라는 신호를 주세요. 시작하겠습니다~"


과연 아팠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감각에 집중해 본다. 

작은 칼이라지만 살을 찢고 뼈까지 가는 듯한 느낌이 날 것 그대로 팔딱팔딱 뛰듯 세포 하나하나에 전해지고 있었고, 신경을 누르며 뼈에 들러붙어 있는 것들을 칼로 끊어내는 소리가 척추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고 느끼고 있을 때,

"하, 어떻게 표정 변화가 하나도 없으세요?"

"아니에요. 마음은 엄청 찡그렸어요. ~......~  '뼈 때린다'는 말을 이제 알겠어요."

"아..., 그 말이 적당하긴 하네요. 학생들에게 침요법(針療法) 가르치는 과정가운데 뼈까지 찔러 넣는 요법이 있는데, 지금이 그런 경우지요."

"換腸(환장)하겠다는 말을 미얀마에서 체험하고 '함부로 쓰면 안 되겠구나!' 했는데, 앞으로는 '뼈 때린다'는 말도..., "

"ㅎㅎㅎㅎㅎ 이제 못 쓰시겠어요?"

"예, 함부로 못 쓰겠네요. ~......!~

아, 이번 거는 뼈도 때리고 살도 때리네요."

"살을 먼저 찢고 들어가니까요."

"그렇긴 한데 좀 전 것은 바로 들어가 뼈를 때렸는데, 이건 살을 찢는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져요."


하는데, 옆에 있던 주치의에게, "두 개만 더 갖고 와요." 그러면서 "조금 전 손가락으로 (아프다는) 표현하신 거죠?"

(헉! 저번에도 두 대만 다더니 다섯 대하고. 이번에는 다섯  준비했다가 일곱 를...,)

"네...., 이게 마지막인가요?"

"예, 마지막이에요."

"저번 주에도 그랬지만 마지막 것이 더 아프네요. (ㄷㄷㄷ) '최고의 선물' 마지막인 거죠?"

"예, 마지막이에요. 다시는 안 해요..(밴드를 마저 다 붙인 뒤) 고생하셨습니다~"

"아, 고생 많으셨어요. 고맙습니다~"




오후 진료 시간, 주치의가 묻는다. 

"좀 어떠셔요? 최고의 선물 받으셨는데..., 별 보이세요?" (며칠 전 처음 맞았을 때는 눈을 떴을 때 별이 뱅뱅뱅 돌았었다.)

"오늘은 별보다 속이 울렁거려요."

"아, 그럼 오후 진료는 안 할게요. 추나도 안 하고. 저녁은 죽으로 드릴까요?"

"예, 그러는 게 좋겠어요. 물리치료는 다녀와도 될까요? 엉치랑 다리 발목이 너무 시큰거려서..., "

"예, 다녀오시고 조금이라도 더 힘들거나 못 견디겠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네, 고맙습니다~"


걸음보조기를 의지해 물리치료실에 갔다.

"안녕하세요~?"

젊은 물리치료사의 까칠한 반응을 보았던 실장이 먼저 인사를 받으며, (젊은 치료사에게) "내가 할게." 하고는, "오늘 오전에 도침(刀針) 맞고 힘드셔서 못 오시나 보다 했어요."

"예, 오늘은 지난번보다 두 개를 더 맞아서인가 어지럽네요."

"빛이 안 들어오는 이쪽으로 오세요......! 아유, 심하게 맞으셨네.. 길게 설정했으니 그동안 주무셔요."

본디는 찜질팩 두 개에 저주파 한 번인데, 찜질 팩 두 개는 기본으로 하고, 저주파는 허리 어깨에 처방전에도 없는 발목까지 해준다.



간호사든 식당 조리사든 모두 친절한 관심으로 뭐라도 해주려고 애를 썼다.

알고 보니 몇 년째 없던 일이었단다. (도침 치료를) 환자 본인이 원해서 했는데 너무 아프니까 항의를 하는 일이 있은 뒤 웬만하면 약침으로 돌리고 아예 권하지를 않는단다.

사실 도침은 수술과 맞먹는 치료로 행여 신경을 건드릴까 혈관을 건드릴까 초집중해야 하는 치료다. 

게다가 아픈 부위에 놓기만 하면 되는 약침은 치료비도 더 비싼 반면 도침은 정확히 치료 부위에 찔러 넣어야 하기에 초집중해야 하므로 시간은 오~래 걸린다. 그럼에도 치료비는 제일 싼 일반 침치료비와 같으니 나라도 안 하고 싶겠다.


어쨌든, (디스크 마디마디를 무려 12 대) 흔히 없는  좋은(?) 치료 덕분에 세면대에서 세수를 할 수 있됐고, (시간은 좀 걸렸지만) 발바닥의 감각도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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