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시간
서울은 미니카를 산다.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후, 어린 시절 한을 풀듯이 사들이다가 별 쓸모없는 물건에 돈을 이리 써도 되는가 싶어 규칙을 정했다. 한 달에 한 개다. 사고 싶은 미니카가 여럿 보여도, 바라만 보다 품절이 되더라도 가급적 규칙을 지켰다. 사는 날도 정해져 있는데 매달 1일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사서, 6개 들이 아크릴 케이스에 넣어 책장 위에 올려놓고 보니, 12개면 벌써 1년의 시간이 지난 것이다. 독일 슈코사의 메르세데스 모형은 마케팅 팀 A와 싸울 때 산 것이다. 미국 그린라이트사의 머스탱은 영업팀 B와 갈등을 빚을 때 샀다. 일본 토미카사의 도요타 랜드 크루저는 재무팀의 C와 기싸움을 벌인 시기였다.
회사 누구 하고도 갈등이 없던 달은 광주와 싸우거나 용인과 다퉜다. 고전 평론가 고미숙은 <현자들의 죽음>에서 "여기에서와 같이 거기서도 그러하리라"라고 썼다. 여기가 이승이라면 거기는 저승이다. 여기가 이번 생이라면 거기는 다음 생이다. 돌이켜 생각해 봐도 피치 못할 일들이고 그냥 넘겼으면 화기 치밀어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다음 생까지 내가 옳다며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지금부터 달라져야 한다니 난감한 일이다. 서울은 이 플랫폼에 일주일에 글 하나를 올린다. 52개의 글이 모이면 1년이 지난 것이다. 미니카에도, 글 한 편에도 시간이 갇힌다. 나중에 들여다보면 재미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