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자
서울에게는 화병이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학창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졸업을 앞두고 논문 실험에 어깃장을 놓는 조교를 향해 자취방에서 혼자 화를 풀었던 기억은 분명히 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증세는 심해졌다. 혼자 조용히 되뇌던 것이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게 되었고 중얼거림은 어느새 외침이 되었다. 그래도 정신은 있어서 골목길에 사람은 없는지, 목소리가 방 밖으로 새어 나가지는 않는지 확인한 후에 외쳤다.
결혼을 하면서 증세는 잠시 멈췄다. 새 신부가 도망을 갈까 봐서다. 아이를 낳고 생활이 안정되자 버릇이 다시 도졌다. 어린 용인은 아빠가 왜 허공에 주먹질을 하는지 궁금해하며 옹알이를 했다. 용인이 중학생이 될 때쯤 그는 증세를 공식화했다. 더 이상 몰래 하기보다 가족에게 밝히고 받아들이기를 강요했다. 광주가 안방에 있어도 베란다에서 소리쳤다. 용인이 자기 방에 있어도 소리쳤다(용인의 방은 베란다 바로 옆이다). 처음엔 괴이하게,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시선은 곧 무관심으로 바뀌었다. 용인이 친구와 통화 중이니 좀 조용히 해달라고 했을 뿐이다.
서울은 외국계 회사에 다닌다. 화상 미팅으로 중국, 일본 그리고 인도 사람들과 회의를 한다.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집에 와서 화를 풀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잘잘못을 소리 내어 외치니 자연스레 영어 연습이 된다. 증세가 심할수록 그의 논리는 날카로워지고 발음은 좋아졌다. 그날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광주가 베란다 문을 열었다. 이웃들이 베트남 여자와 산다고 생각할지 모르니 조용히 해달라고 했다. 꼭 해야 한다면 한국말로 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