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아사히카와 여행을 하면서 광주는 자기가 얼마나 많은 양보를 했는지 서울과 용인에게 상기시켰다. 우선 여행 목적지로 동남아나 유럽이 아닌 일본으로 한 것부터 큰 양보였고, 비행기 세 자리 중에 창가에 용인을 앉히고 통로 자리는 서울에게 양보하여 가운데에 앉았으며, 숙소 역시 쇼핑을 좋아하는 용인을 위해 자연이 푸르른 곳 대신, 도심 한 복판에 구했다는 것이다. 물고기를 먹지 않는 용인 때문에 가고 싶은 이자카야를 가지 못했고, 서울이 비싼 것만 먹으려고 해서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싼 메뉴를 시켜 예산을 아꼈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다 맞는 말이다. 서울은 광주를 측은히 여겨 양보 노트를 적어보라고 권했다. 양보를 할 때마다 내역을 적고 돈으로 환산하여 기록해 두면 12월 25일 자정에 모두 갚겠다고 했다. 신이 난 광주는 양보를 할 때마다 기록을 남겼다. 마지막 남은 동그랑 땡을 서울이 낼름 먹어버린 것은 660원이다(12개 들이 동그랑땡이 8,000원). 치킨의 다리를 용인이 모두 먹은 것은 2,500원(20,000원짜리 닭이 8등분 되어 있었다). 용인에게 운동화를 사주고 자기 것을 사지 못한 값은 110,000원이다.
하루에 평균 만원 꼴로, 한 달이면 30만 원에 달했다. 1년이면 360만 원이다. 그 큰돈이 서울에게 있을 리 없다. 서울은 바로 양보 금지령을 내렸고 혹여나 광주가 양보하는 모습을 보면 물불을 가리지 말고 막으라고 용인에게 당부했다. 이제 집안은 양보를 하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로 나뉘고 치열한 눈치 싸움이 벌어졌다. 식당에서 아무도 광주보다 비싼 것을 먹지 않고, 비싼 옷을 입을 수 없게 되었다. 맥주 캔이 3개이면 당연히 광주가 2캔을 마시고 서울은 1캔으로 만족했다.
긍정적인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광주가 해외 출장을 가면 소고기를 사 먹었다. 용인은 새로 산 옷을 장롱 속에 꼭꼭 숨겼다. 그렇게 애를 썼음에도 가을이 저물어 가는 시점에 양보 노트를 보니 백만 원이 훌쩍 넘었다. 이렇게 큰돈을 날릴 수 없다고 생각한 서울은 중대 결심을 했다. 마지막 태풍이 올라오던 날, 거실 창문을 열고 양보 노트를 그 앞에 두었다. 세차게 들이친 비바람이 수성펜으로 적어 둔 양보의 기억을 지웠다. 야옹이가 그래도 괜찮겠냐는 표정으로 바라봤고 서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