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후

28 Years Later

by 애프릭

올 가을 개봉한 영화 <28년 후>는 2003년의 <28일 후>의 속편으로 대니 보일이 다시 연출을 맡았습니다. 2007년 <28주 후>는 세계관을 공유하지만 감독이 다릅니다. 연배가 있는 관객이라면 이완 맥그리거를 스타로 만든 <트레인 스포팅>을 기억하고, 조금 낮다면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그를 만났을 겁니다. 좀비 영화의 계보에서 처음으로 뛰어다니는 좀비를 선보인 감독이기도 합니다.


28년 전, 영국은 분노 바이러스가 창궐해서 나라가 통째로 봉쇄되었습니다. 남겨진 사람들은 좀비가 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자기들만의 안전지대를 만들어 살아남았습니다. 새로 태어난 아이들은 현대 과학을 알지 못한채, 창과 화살, 수레 정도의 문명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스파이크(알피 윌리엄스)는 아버지를 따라 첫 사냥 여행을 떠납니다. 안전지대인 섬을 떠나 좀비가 있을지도 모를 본토에 발을 딛는 겁니다. 순조로웠던 탐험은 알파 좀비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공포로 바뀌고 주인공은 무기력한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전작인 <28일 후>, <28주 후>와 비교하지만 설정은 닐 마셜 감독의 2008년 작 <둠스데이 지구 최후의 날>에 가깝습니다. 여기서는 스코틀랜드만 봉쇄됩니다. <레지던트 이블>과 같이 좀비를 쓸어버리는 액션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감독은 이번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행태에 집중합니다. 나름 안락한 고향이 있고, 여기에 들지 못하는 외톨이가 있으며, 아버지에게 분노하고, 어머니와 사별한 후, 길에 나서는 모습은 액션이라기보다 지독한 성장 영화에 가깝습니다.


영화 중반 주인공은 순시선이 좌초되어 어쩔 수 없이 섬에 오른 군인과 조우합니다. 한번 발을 딛은 이상 문명 세계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택배기사를 할 걸 그랬다’며 투덜대다 택배를 어린 소년에게 설명하는 장면은 괴이한 화면들 사이에서 쉄표처럼 미소 짓게 합니다. 여러 예술 중에서 인생의 의미를 기대하는 것은 서사 문학이 유일합니다. 음악, 미술, 건축, 춤은 하나의 이미지, 인상을 남기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영화 안에는 권선징악도, 인생의 힌트도 없지만 서사를 넘어 느낌을 남기는 수작입니다.

금요일 연재
이전 02화날씨의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