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어렸을 때 우울했다. 자기가 바라는 모습과 자기의 모습이 너무 달라서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했고 최선을 다해 바꾸려고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달라질 수 없다고 확신이 드는 순간, 한껏 당겨진 기타 줄이 '띵' 하며 끊어지듯(이건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현이다) 우울증에 빠졌다. 셋이 모여 있으면 셋 중에서 가장 바보 같고, 열이 모여 있으면 열명 중에 가장 바보 같았다. 학교 도서관에 앉아 있는 200여 명 중에 제일 모자라게 느껴졌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잠실 구장에 갔더라면 공황에 빠졌을 것이다.
극심한 자기 혐오는 거울을 보지 않게 만들었다. 버스를 타면 유리창에 비치는 자신을 피해 창틀 사이에 맞춰 섰다. 대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던 어느 가을밤, 000과 000이 호수에 빠져 실종 상태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가깝지는 않지만 대화를 몇 번 나눈 선배였다. 장학금을 내리 받았고 부족하지 않은 집안이었다. 근래 연애를 한 적이 없으니 헤어질 사람도 없다. 경찰은 호숫가에 신발이 나란히 있고 마시다 만 소주병이 있는 점으로 실족이 아닐 것으로 추정했다. 알 수 없는 죽음이라는 수군거림 속에 며칠 후 인양되어 장례를 치렀다.
이 사건은 서울에게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다는 기억을 남겼다. 하루아침에 우울증에 빠지지 않듯이 나오는데도 여러 해가 걸린다. 도움이 된 것을 꼽는다면 로맹 롤랑이 있고, 김국진의 <테마 게임>이 있으며, 버틀란트 러셀의 글이 있었다. 세상을 가볍게 보고, 뒤돌아보지 않으며, 자기의 관심이 자기로 향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일상에서는 반성하지 않는 것으로 구현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울의 정신 건강은 좋아졌고 주위 사람들은 힘들어했다.
그렇게 한 세월이 지나고 퇴직이 코 앞에 다가왔다. 멀쩡한 사람도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는 기사를 보고 서울은 더럭 겁이 났다. 잔소리하고 참견할 일이 사라지면 관심은 자연스레 자기에게 쏠릴 것이다. 버틀란트 러셀이 극구 말렸던 일이다. 고전 평론가 김미숙은 예전 세대의 멘탈이 더 튼튼한 이유로 타인에 대한 헌신과 걱정을 꼽았다. 고민이 밖을 향하고 있는 한, 우울한 기분에 침식당하지 않는다. 이제 서울은 걱정거리를 찾아 머나먼 여정에 나서야 한다. 스타트랙의 내레이션이 머리에 맴돈다.
"우주 미지의 영역, 인간의 마음도 그러하다. 주어진 임무는 지나온 시간을 후회하지 않고 새로운 타인과 관심을 찾아 자신을 잠식하려는 어둠에서 벗어나 아무도 가보지 않는 내일로 나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