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by 애프릭

서울은 논두렁을 지나 학교에 다녔다. 보통 초등학생 시절에 그런다는데 서울은 대학생이 되어 걸었다. 2학년부터 기숙사 배정이 성적순이다. 방값이 비싼 학교 앞이나 시내 대신 걸어 다닐만한 거리의 시골 동네를 골랐다. 그해 가을에 비가 많이 내렸고 다람쥐 한 마리가 떠내려왔다. 마침 길을 지나던 여학생이 발견해 기숙사에 데려왔다. 그녀는 떨고 있는 다람쥐를 드라이기로 말려 주고 먹을 것을 주었다.


그 후로 친구가 되어 어디든 함께 다녔다. 가방에 있다가 그녀 머리 위로 올라가고, 옷깃 속으로 들어가서 소매로 나왔다. 들장미 소녀 캔디 이후로 야생동물이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다. 평소 그녀를 흠모해 온 서울은 마음을 전할 선물을 고민해 왔다. 다람쥐가 동면을 한다고 하니 도토리가 좋겠다.



그날부터 수업이 끝나면 산과 들로 도토리를 주우러 다녔다. 도토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니 그 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 먼저 도토리가 유난히 많은 나무는 곧 죽을 나무다. 생존에 희망이 없음을 알고 생식에 집중하는 것이다. 다음은 땅꾼이다. 가을은 땅꾼에게 중요한 계절이다. 겨울잠에 들기 전에 살이 통통히 오른 뱀의 인기가 높다. 무릎 높이의 그물을 산허리에 둘러쳐 놓으면, 산을 오르내리는 뱀들이 그물을 따라 빙빙 돌다 땅꾼에게 잡혔다. 산에서 만나면 자연에서 길을 찾는 동지로서 유대의 눈빛을 나눴다.


도토리묵에 쓰려고 팔을 걷어붙이고 다니는 아주머니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무엇보다 처연하게 바라보는 다람쥐의 눈을 피해 도토리를 주웠다. 한 줌으로 시작한 것이 겨울 초입에는 한 포대가 되었다. 건네 줄 날을 손꼽고 있는데 방에 파리가 날아다닌다. 자취방에 불을 때면서 도토리 안의 벌레 알이 부화한 것이다. 그렇게 기대했던 사랑의 전령은 파리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서울은 아무것도 전하지 못하고 이듬해 봄에 입대했다. 힘든 겨울을 보냈을 매지리의 다람쥐들에게 이 글을 빌어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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