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모태신앙은 아니지만 거의 모태신앙이라 부를 수 있는 집에서 자라면서 학교만큼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교회의 가르침은 학교의 그것과는 상당히 달랐다. 학교는 성공을 가르쳤지만 교회는 낮아짐을 가르쳤고 학교는 경쟁을 부추겼지만 교회는 끌고 감을 가르쳤다. 알게 모르게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은 내 인생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마태복음의 성경구절처럼 마음의 가난함을 선물했다.
심령이 가난함은 확실히 세상의 가르침과는 달랐다. 마음이 가난함은 곧 내적 풍요로움을 의미했다. 그러한 가난함에는 실리(實利)가 들어갈 구석이 없었다. 모든 사람은 동등했고 모두 내가 믿는 신 앞에 평등한 존재로 인식됐던 것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는지, 얼마나 배웠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예수를 알고 있나, 모르고 있나 그 차이만이 있었다. 신앙이 성숙하면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살핌의 필요성을 느꼈고 ‘지극히 작은 자 한 명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라는 말씀의 뜻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거지도, 절름발이도, 저기 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는 장애인도 모두 내가 섬겨야 할 예수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교회 속 말씀과 삶의 모순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구걸하러 교회에 온 노숙자에게 도움의 손길은 있지만 어디에도 따뜻함은 없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때로는 왜 예배를 드리지 않느냐고 노숙자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다. 밥이 필요한 노숙자에게 목사님의 말씀이 무슨 의미이겠는가. 그들에겐 교회에서 주는 따뜻한 밥 한공기가, 성도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 구원 아니겠는가.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는 날이면 신촌에는 동성애자들과 보수 기독교인들의 전쟁이 시작된다. 누구보다 열심히 축제 현장에 찾아와 신랄한 욕을 퍼붓는 모습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원수도 사랑하라’는 성경 속 말씀이 떠오른다.
다름을 가장 순수하게 받아들였던 예수의 삶을 교회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예수에게 다름은 공존하는 법을 찾는 모험이었다면 성도들에게 다름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권리를 빼앗고 ‘그들’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아주 좋은 근거가 되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만이 예수였고 그들에게만 구원이 있었다. 지극히 작은 자 한 명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했다. 지금 내 앞의 작은 자는 누구인가? 과연 성경이 말하는 작은 자 한명이 내 앞에 있는가? 나는 떳떳하게 ‘그들’을 친구라 말할 수 있는가? 교인들의 친구는 세상의 친구들과 얼마나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