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심한 잡배(雜輩)들

나라를 망친 사람들

by 죠니야

매천 황현 선생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 보면 가끔 한심하다 못해 헛웃음이 나는 사실이 쓰여있다. 왕과 대신들이 모여 정책을 논하는 자리에서 왕이 “ 어찌 우리 조종의 원한을 씻을 수 있을까? ” 하고 물었다. 과거 병자년 삼전도의 굴욕을 어떻게 하면 씻을 수 있을까?를 물은 것이었다. 그랬더니 무승지 직에 있던 대신이 “ 폐하 덕을 닦으시옵소서 ”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무승지는 문관이 아니고 무관이다.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목숨걸고 싸워야 하는 군인이 이런 말을 한 것이었다. 한심한 잡배(雜輩)다 “00대학에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돼요? ” 하고 묻는 학생에게 “ 응! 버스 타고 가면 돼! ” 하는 선생과 무엇이 다를까?

대한제국 시기 유길준, 박영효, 김가진, 김윤식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친일파였지만 매국노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일본의 선진문물과 시민정신이 부러워 친일파는 됐지만 엄연히 대한제국 대신들이었다. 협조할 건 협조하고 따질 건 따진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제의 침략을 혼자라도 막거나 나중에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유길준은 이토오 히로부미에게 조선독립을 주장했고, 박영효는 고종퇴위와 군대해산에 반대했으며 김가진은 임시정부에 참여했고 김윤식은 한일합방을 끝까지 반대했다. 일본도 이들은 인정했다. 그러나 이완용 송병준 이용구 같은 매국노들은 철저히 무시했다. 당시 일본 공사 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는 이들을 한심한 잡배(雜輩)라고 불렀다. 일본도 이들을 기회나 엿보다 강한 놈에게 붙어 이익이나 구하는 잡배로 본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브레이크가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