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적당한 거리와 경계는 필요하다.
사람은 모여 사는 동물이다. 하지만 자기만의 공간도 필요하다. 그래서 자기 공간을 만들기 위해 담을 쌓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 담 안은 내 공간이니 들어오지 말라는 것이다. 담에다 문을 냈다. 문은 내가 허락한 사람만 드나들라는 것이다. 다시 창을 냈다. 자기 공간에서 밖이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창을 낸 것이다.
담을 넘어 내 공간에 들어온 건 침범이다. 함부로 문을 두드리며 들어오려는 건 간섭이다. 내 허락없이 창문을 들여다보면 감시다. 침범, 간섭, 감시 다 나쁘다. 같이 모여 살더라도 서로 간에 적당한 거리와 경계선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거리 사이는 정중함과 예의로 채워야 한다.
내가 다니던 교회에 참 훌륭한 어른이 계셨다. 믿음도 깊었지만, 언행도 바르고 성품도 점잖아 신자들의 모범이 되었다. 사회적으로도 명망이 있었고 재력도 있어 교회의 어른으로 모든 교인이 존경했다.
그 어른에게는 아주 예쁜 따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분은 참 불행했다. 훌륭한 아버님을 둔 덕분에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노출됐다. 학교 성적이 제일 먼저 알려지고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떤 액세서리를 했는지 하찮은 것 하나도 모두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모든 사람이 감시했고 간섭했다. 그분은 나중에 도망치듯 결혼해 외국으로 떠났다.
당시 사람들은 간섭과 감시를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다. 당시 제일 말이 많았던 사람의 자식들은 한 명도 교회에 안 나왔다. 참 똑똑한 친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