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역사 책을 읽고난 후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녀 덕혜옹주 그녀는 망국의 한을 고스란히 짊어진 불쌍한 왕족이었다. 이복 오빠 영친왕과 같이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 일본 교육을 받았고 원하지도 않는 일본 귀족과 강제결혼을 했다. 유일한 혈육이었던 딸도 잃었다. 해방은 됐지만 귀국하지 못하고 이국 땅에서 버림을 받았다. 조현병이 발병해 정신병원을 전전하다 1962년에야 겨우 귀국해 낙선재에서 쓸쓸한 노년을 보내다 1989년 별세했다.
인정되진 않았지만 또 한명의 왕녀가 문용옹주였다. 그녀는 고종이 염상궁이라는 궁인에게서 낳은 딸이라고 했는데 당시 영친왕을 낳은 엄귀비의 위세가 워낙 등등해 어머니 염상궁은 엄귀비가 내린 사약을 받고 죽었다. 문용옹주도 죽을 운명이었지만 어머니의 친구 임상궁이 문용옹주를 몰래 빼돌려 한 천민 부부에게 맡겼다. 이들은 김천 지역으로 도망가 거지처럼 살았는데 나중에 임상궁이 다시 문용옹주를 서울로 데려와 키우면서 공부도 시켰다 이후 문용옹주는 결혼도 하고 잘 사나 싶었는데 남편과 자식이 연이어 죽고 유일한 의지처였던 시부모도 죽었다. 시동생이 한명 있었는데 그는 좌익운동을 했다. 문용옹주는 시동생의 도움을 받아 생활했는데 이로 인해 나중에 빨갱이로 몰려 10여년 이상 옥살이를 했다. 출옥한 후에 삯바느질로 연명하다. 1987년 별세했다. 생전에 왕녀로 인정받고자 전주 이씨 종친회에 탄원했지만 출생에 관한 승정원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했다. 심하게는 사기꾼으로 매도되기도 했다. 죽을 때까지 문용옹주는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다 30년이 지난 2016년 부터는 같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왕녀로 인정은 받았지만 평생을 병석에서 지낸 덕혜옹주나 왕녀의 신분을 숨기고 살다 끝까지 인정받지 못했던 문용옹주나 둘다 기구한 삶을 살았다. 누가 더 낫고 못하고가 없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건 문용옹주다 전주 이씨 종친회에서 생전에 왕녀로 인정해줬다면 덕은 보지 못하더라도 한은 남지 않았을 것이다.
오랜만에 다시 읽은 역사책을 덮으며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