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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통, 돌대가리, 외골수

양심과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는 누가 만드나

by 죠니야

그렇게 융통성이 없어, 어떻게 살래!

참 답답하긴 앞뒤가 꽉 막힌 사람 같으니!

세상이 다 자기 같은 줄 알아? 혼자만 사는 세상 아니야!

누군 배알이 없어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세상 원래 다 그런거야!

참 세상 사는 법을 모르네! 안다고 다 말하는 거 아니고 옳다고 다 옳은 거 아니야!

불의와 타협하라는 말 참 많다. 그럼, 세상 정의는 어디에 있냐?

길영희 선생. 40년 전에 죽은 우리나라 전설적인 교육자다. 이 분 별명이 좋은 말로 석두(石頭) 보통 말로 ‘돌대가리’다. 유달리 양심을 강조하며 학교 교훈도 “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 ”으로 직접 지었다. 그는 양심을 주장한 선생답게 우리나라 최초로 자유접가식 도서관을 만들었고, 무감독시험(감독 없이 학생들의 양심을 믿고 명예롭게 보는 시험), 무보결생(과거에 결원이 생기면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보결생을 받았고, 부패의 온상이었다. 선생은 보결생제도 자체를 없앴다.) 무운동부(학과 공부를 아예 안 하고 운동만 하다 졸업하는 운동부도 아예 안 만들었다. )의 3무를 실천했다. 사람들은 무감독시험을 가장 큰 업적으로 생각하지만 길영희 선생 개인적으로는 무보결생제가 가장 힘들었을 것이다. 보결생으로 들어가기 위해 엄청난 회유와 매수 중상모략, 공갈 협박이 있었다 하지만 끝까지 버텨 정의롭고 양심적인 전통을 확립했다. 돌대가리란 소리를 들었지만, 양심을 지킨 참 스승이 되었다.

하야시 겐타로(林建太朗) 동경대학교 사학과 교수다. 1968년 적군파 학생들이 동경대 강당을 점거하였을 때 문학부장으로 재직하던 하야시 교수는 강당에 남아 학생들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학생들은 하야시 교수를 협박하기도 하고 어르기도 했지만, 하야시 교수는 끝까지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거부하고 학업에의 복귀를 설득했다. 끈질긴 대화 끝에 학생들은 “ 하야시 교수는 영 글러 먹었다. 그러나 시종일관 글러 먹었기에 그를 인정한다. ” 라며 점거를 풀었다. 돌대가리 하야시 교수의 원칙이 승리했다.


예체능계 대학 입시에서 또 부정이 발생했다. 입시부정이 벌어질 때마다. 항상 생각나는 게 “ 많이 배우고 존경받는 교수라는 분들이 왜 기본 중에 기본을 하지 않을까? ” 이다.

입시의 기본은 공정성이다.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노력하는가? 물론 좋은 부모 만나 머리가 좋은 학생, 비싼 과외를 받을 수 있는 학생들도 있다. 조금 억울하지만 그건 그 학생의 복이라 생각할 수 있다. 과외를 받든 머리가 좋든 다 본인의 노력이 없으면 안 되니까? 그런데 이런 노력이 아니라 다른 방법에 의해 합격, 불합격이 바뀐다면 정말 큰 문제다. 우선 불합격한 학생이 가장 큰 피해자고, 불법으로 합격한 학생도 피해자다. 크게 보면 우리 대학과 사회의 명예와 신뢰도가 크게 실추돼 모두가 피해자다. 양심을 팔고 부정을 저지른 교수들만 이익을 봤다. 부정을 저지른 사람들은 “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입시 판이 다 그렇다. 누구는 더 했다. ” 라고 변명한다. 그런 변명을 하는 건 두 번 죄를 짓는 것이다. 일고의 가치가 없다. 세상이 아무리 그래도 양심을 지키는 게 교수고 스승이다.

입시 스캔들이 벌어질 때마다. 길영희나 하야시 겐타로 같은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양심과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는 이런 꼴통 돌대가리 외골수들이 만든다. “ 양심의 0점이 부정의 100점보다 낫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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