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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승규 Jul 07. 2021

꿈을 좇는 한국판 페스탈로치

이선재 일성여중고 교장의 인생보

6월 말 어느 여름날 이른 아침, 마포 염리동 45번지 고갯길에 위치한 한 빌딩으로 한 중년 여성이 들어선다. 분명 책가방을 맨 듯한데, 총총 걸음새와 반백의 머리 결에 비추어 60세 이순(耳順)을 훨씬 넘어선 듯하다. 비좁은 계단을 올라 2층 사무실로 들어선다. 장년의 선생님과 잠시 상담을 나누는가 싶더니 두 손을 펼쳐 내민다.

80대 선생님은 초콜릿 1개씩 건네며 선창하고 70대 흰머리 학생은 이를 받아 들며 따라 복창한다.

‘공부는 재미있게~, 학교는 즐겁게~, 인생은 행복하게~’

목사의 세례 의식 같기도 하고 마술사의 주문 같기도 하다.

일성여중고 이선재 교장

중국 남북조 시대의 고위관리 송계아(宋季雅)는 정년퇴직 후 거주할 집을 매입하면서 백만금에 불과한 여승진(呂僧珍)의 이웃집을 무려 천백만금이나 지불한다. 그 어떤 것도 사람보다 향기로울 수 없다는 주향백리(酒香百里), 난향 천리(蘭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라는 고사의 배경이다.

60~70년대, 가난과 전쟁으로 얼룩진 대한민국에 희망의 불씨가 자라기 시작한다.‘잘 살아 보자’는 국민성이 움텄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리더십도 한몫한다. 그러나 이 시대를 이끈 가장 강력한 국민 마취제는‘배워야 한다’는 교육열이다.

사람이 곧 경쟁력이다는 인재 제일주의는 대한민국 근대사와 맥을 같이 한다. 반세기 만에 가난한 나라를 10대 경제대국으로 이끈 힘도 교육이다. 이 같은 교육에 한평생 몸담은 분은 적지 않다. 그러나 그 교육에서 소외된 분들의 ‘배움 한’을 풀어주는데 평생 투신한 분은 많지 않다.

오늘의 주인공은 문해 교육(文解 敎育) 현장의 산 증인 이선재 일성 여자 중고등학교 교장이다.

인터넷 사전에서 문해 교육의 뜻을 검색해 본다.

손병희 선생님의 사모님 주옥경여사와 함께 1972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교육이다. 전통적인 문해는 인쇄된 교재로부터 의미를 구성하기 위해 읽기와 쓰기를 활용하는 능력을 의미하지만, 현대에는 기본 학습 능력으로써 읽기, 쓰기, 수학뿐만 아니라 지식, 문제 해결, 생활 기술 등을 포함한다.”

교육부가 2017년 성인 문해 교육 활성화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의무교육인 중학교 학력을 취득하지 못한 성인을 500만 명 이상으로 추산했다.

일성고등공민학교 주산 수업 장면 1969

‘개천에서 용이 나온다’는 게 근대 교육 철학의 한 아키텍처이다. 누구나 열심히 하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사회적 신뢰이다. 그게 공정이었고 당장 공평하지 않아도 미래를 위해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에게 그런 환경이 주어지지는 않았다. 한 집안의 대표 선수를 내보내기 위해 누군가는 희생이 필요하다. 우리들의 어머니, 누이, 형들 중 누군가는 그 희생의 그림자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삶의 환경을 원망할 겨를 없이 허리띠를 졸라맨 채 밤낮으로 일한다. 어렵게 번 돈을 동생 학비로 주저 없이 송금한다. 그러나 자신 또한 배움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져만 간다. 영어도 배우고 싶고 수학도 공부하고 싶다. 큰 결심 끝에 찾는 곳은 일과가 끝난 시간에 문을 여는 야학교실이고, 일요학교이다.    

배움의 한에 사무친 이들이 배울 곳을 찾아 나섰을 때 이선재 교장이 그곳에 있었다.

북한 개성 태생의 청소년 이선재는 한국 전쟁을 거치는 어려운 생업현장에서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다. 휴일엔 미군부대 주변을 배회하며 흘러나오는 다양한 ‘미제 물품’을 떼다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판다. 물건을 뺏으려는 불량배들과 죽을힘을 다해 싸우기도 하고 값을 후하게 쳐주는 인심 좋은 어른도 만난다.

그러나 항상 부족하고 결핍 투성이다. 학교 월사금도 밀리기 일쑤이다. 그때마다 ‘월남 고학생’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은인, 은사들이 나타났다.

양원주부학교 졸업식 1994

‘자선의 바이러스’는 ‘좌절의 바이러스’보다 생명력이 강하다. 청년 이선재는 자신이 받은 배움의 혜택을 더 어려운 이웃들에게 갚아야 했다. 어린 시절,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았을 때 그건 이미 정해진 운명으로 다가왔다.

전쟁의 상처는 깊었고 서울 거리에도 고아와 다리 밑 노숙자가 즐비했다. 그들에게 희망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야학을 시작했다. 다리 밑 노천 교실에서 어린 새싹들과 작은 꿈을 꾸기 시작한다. 뜻을 같이 하는 지인들이 봉사에 참여한다. 약간의 운영비를 조달하기 위해 주변 지인들을 찾아다닌다.

https://youtu.be/GUPopBalt64

가난 때문에 거리에 내몰린 학생들을 다시 배움의 장소로 어떻게 이끌 수 있을까? 청년 이선재의 고민이 깊어가던 참에 한 신문기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공덕동 로터리에 위치한 한 고등 공민학교가 재정난 때문에 거리로 쫓겨나 노천 수업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피난민의 자녀들을 가르치던 학교였다. 무작정 학교를 찾아갔다. 전후 사정 얘기를 듣고 도움 줄 방법을 찾아 나선다.

일성 고등공민학교 전경


청년 이선재는 호주머니를 털었지만 터무니없는 액수이다. 재정적으로 지원해 줄 독지가를 찾았다. 마침 한의원을 운영 중이던 지인이 나선다.

처음엔 학교를 살려놓고 그만둘 계획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의지와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교사를 구하는 일부터 각종 살림살이에 이르기까지 이선재가 없는 학교 운영은 상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학교 살림이나 학업 환경은 결핍, 그 자체였다. 한 학급당 70~80명의 학생 중 도시락을 싸오는 학생은 대여섯 명에 불과하다. 아침, 점심을 모두 굶은 학생들은 공중 수도에서 받아온 물만 먹어댔다. 영양상태 불량으로 학생들의 얼굴은 누렇고 까칠하다. 그래도 배우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흙 연필에 침을 발라 길거리에서 주운 신문지 위에 힘주어 글씨를 쓴다.

교육자 이선재는 배움에 굶주린 이들의 눈빛에서 희망을 얻는다. 선택할 수 있는 길이라면 궁핍을 이겨내야 하는 도전뿐이었다. 오늘 허기진 물 배를 움켜쥐고 있지만 내일도 이 가난을 지속시킬 수는 없다. 남이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닌 내가 필요해 시작하지 않았는가? 이선재 교장의 참 교육은 이렇듯 매사 도전에서 시작된다.

평일 날 일과 공부를 병행할 수 없는 공장 근로자들을 위해 일요학교를 연다. 선생님들은 주중에 고등 공민학교에서 가르치고 휴일엔 다시 일요학교에서 일해야 하는 고난의 행군이 이어진다. 버티기 끝에 건강악화가 겹치면서 일부 선생님은 결국 교단을 떠나고 만다. 또 다른 선생님이 나타나 이어받기까지 학생들을 돌보는 일은 이 교장의 몫이다.  

일성고등공민학교 이세정교장과 직원들 1964

어려움의 연속이지만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의 도움도 컸다. 10년 동안 무보수로 교장을 맡아준 스승이 있었다. 무려 17 동안 재정적으로 후원한 독지가도 있었다. 그분들의 땀과 성원으로 학교는 점차 자리를 잡아 나간다.

중학교가 의무교육이 되면서 중등 교육을 담당했던 고등 공민학교는 학생들이 급격히 줄어든다. 문을 닫아야 했다. 대신 배움에서 소외돼 온 늦깎이 성년 여성들이 학교를 찾아와 배움을 호소한다. 이들의 외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이 교장은 따뜻한 손을 내민다.

좁은 교실의 불꽃이 다시 활활 타오른다. 양원 주부학교와 일성 여자 중고등학교로 간판을 바꿔 단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40~50대 주부와 60대 이상의 머리 희끗한 중년 여성이다. 어린 시절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다 배움의 시기를 놓친 분들이다. 문맹퇴치가 개교 이념인데 대부분 여성들이 입학하면서 급기야 아예 주부학교, 여중고로 자리매김한다. 우리 사회의 성장 역사에서 그만큼 여성이 희생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만학도 학생들의 수업 장면 2018

늦깎이 학생들의 배움 열망은 대단하다. 못 배운 게 평생의 한이 되었던 만큼,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향학열을 불태운다. 학교 문이 열리지 않은 7시 이전에 등교하여 문 앞에서 기다리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다.

국어, 영어, 수학, 국사 등 일반 학교의 커리큘럼을 2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소화해야 했다. 늦깎이 학생들인 만큼 초등, 중등, 고등 교육을 빨리 이수하고 꿈에 그리던 대학에 진학하려면 속성 코스가 필요했다.

다양한 특별활동을 통해 생활현장에서 찌들고 황량해진 인성교육에도 힘써야 했다. 시낭송, 합창, 국악, 영어회화, 영어연극, 한자공부, 글짓기, 컴퓨터, 하모니카, 걷기 동아리, 노래교실, 웃자 동아리 등 다양한 특별 활동반을 통해 각자의 취미와 특기 교육을 받도록 한다.

이 교장에게 국가가 담당해야 할 문맹 퇴치, 문해 사업에 평생 투신한 이유를 물었다.

이 교장은 문맹 퇴치가 곧 인권의 문제라는 굳은 신념을 강조한다. 배움은 학습권이자 행복추구권이라고 단언한다. 언제 어디에서나 주인이 되는 수처작주(隨處作主)가 내 인권을 지키는 길이고 그것은 교육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어온 이 교장의 지난 59년간 성적표는 눈부시다.

졸업생은 6만 명을 넘어서고 현재도 매년 1,200여 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 고등학교의 경우 지난 15년 연속 졸업생 전원이 각종 대학에 진학하는 진기록을 세운다. 정규 학교 학제를 3년에서 2년으로 단축하며 이뤄낸 성과여서 더욱 찬란하다.

일성여중고 스승의 날 행사 2012

20년 전부터 문예 창작반을 통한 문학교육을 활성화했다. 교내는 물론 외부 기관에서 유치하는 시 낭송회, 글짓기 대회에 앞다퉈 참가한다. 꿈, 날개, 해오름, 희망, 열정 등을 주제로 학생들이 직접 창작한 글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한다. ‘행복충전소’’날개를 다는 사람들’ 등 지난해까지 발간된 책은 총 33권이다. 여름및 겨울방학에는 학생들이 직접 쓴 손 편지 1,000여 통이 이 교장 책상에 전달된다. 이 같은 교육 덕택에 힘입어 교사 3인을 포함한 102명의 ‘일성 작가 사단’이 시, 소설, 수필 등 다양한 장르로 문단에 등단한다.

18~19세기의 위대한 교육사상가 페스탈로치는 왕이나 농민이 모두 같은 인간이라며 농민 대중 교육에 진력했다. 이 교장은 야학, 고등 공민학교, 일요학교, 주부학교, 일성 여중고 등을 거치며 대중의 ‘배움의 한’을 푸는데 투신한다. 한국판 페스탈로치라는 별명이 따라다니는 이유이다.

이선재 행복충전소에서는 교육만으론 콘텐츠가 부족했던 것일까? 그의 삶 속에는 또 하나의 DNA인 ‘지역 문화 창달’이 왕성한 생명력을 발현한다.

학생들과 함께 지역 문화 탐방하는 이선재교장

문화에서도 철저히 낮은 곳을 향한다. 민중의 삶을 지켜온 토속 문화, 우리 생활 현장에 녹아든 지역문화이다.

이선재 문화사랑의 출발은 문화원 설립으로 시작한다. 마포 구청과 서울시를 찾아다니며 문화원 창립의 필요성을 설득했지만 핑퐁 게임, 예산 타령만 메아리친다. 권력의 지원이 필요했다. 스스로 서울시의원에 도전하여 문화 권력을 확보한 뒤에야 마포문화원 창립은 결실을 맺는다.

97년 마포문화원을 창립한 뒤 2001년 이 교장은 3대 원장으로 취임한다. 4대까지 두 번의 임기를 거치며 다양한 족적을 남긴다.

지역 문화 창달 1호는 공민왕 사당제를 격식 있게 복원하는 사업이다. 조정의 미곡창고였던 광흥창을 비롯해 지역의 안녕을 비는 공민왕 사당제는 마을제사 형식의 민간전승행사로 이어왔다. 그만큼 전통문화 행사로는 부족하다. 옛 문헌을 찾고 지역 어른들의 고증 등을 거치며 정체성 복원에 매진한다. 제를 지내기 위한 누각을 복원하여 문화재로 등록하고 전통 제례의식도 정비한다.

이 원장의 두 번째 역점 사업은 마포나루 굿과 새우젓 축제의 복원이다.

마포나루는 조선시대 삼남지방에서 올라오는 곡물이나 소금, 젓갈류를 비롯한 해산물 유통의 중심지이다. 도화동 일대는 새우젓 가게들이 많아 새우젓 동네로 통했다. 매년 5월 단오 이전에 뱃사람들과 주민들은 마포나루의 안녕과 번영, 이곳을 드나드는 선박들의 무사항해를 위해 나루 굿을 실시했다.

마포의 혼을 살려 내면 지역의 정체성은 그만큼 단단해진다. 매년 5월, 월드컵공원과 주변 한강에서는 그 혼을 불러내는 마포나루 굿 행사가 성대하게 열린다. 마포나루가 한양과 삼남 지방을 연결하는 플랫폼이었던 화려한 마포의 복원이다. 변두리 마포가 ‘마용성’이라는 새로운 중심지로 거듭난 것도 정체성의 복원에 힘입은 바 크다.

10월에는 옛 새우젓 골 도화동에서 열리던 작은 새우젓 축제를 월드컵 공원의 큰 무대로 옮겨 전국에서 수십만 명이 찾는 서울 최고의 지역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이선재 교장의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국가가 평생학습을 강화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한 번 배운 것을 가지고 평생을 써먹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빠른 변화는 평생 교육을 받아도 모자라는 환경으로 바뀌었다. 평생교육은 국가 경쟁력과 밀접한 관계이다. 북유럽 국가의 평생학습 참여율은 70%에 육박한다. 우리나라는 40%에도 미치지 않는다.

90세 김순실 최고령자 졸업식 2019

“선진국은 국민 교육에서 잉태되고 선진 국민은 평생학습에서 배양된다”는 이선재 교장의 어록을 뒤로하며 학교 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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