綠山

1. 북중 철교

by 신관복

유난히 더웠던 2004년 6월 중순 나는 열두 살 난 아들과 함께 평양발 베이징행 국제열차로 압록강을 건넜다.

차대표 부인과 내 아들보다 두 살 어린 차대표 아들이 우리와 동행했다.

우리는 발령지에 2개월 먼저 가있는 남편들에게로 가고 있었다.

명색이 국제열차였지만 평양을 떠나 신의주로 향하는 기나긴 철길 위에서 뜨거운 태양의 열기로 객차 안은 찜통처럼 달아올랐고 더위를 식힐 물건은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한 대뿐이었다.

가뜩이나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인 나는 미지의 세계였던 외국으로의 출국이라는 환희와 설레 임도 잠시, 더위에 지쳐 허덕거리며 달려오고 달려가는 초라하고 궁기 흐르는 마을과 산촌을 초점 없는 눈으로 흘러 보내며 기차가 정차하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앉았다 누웠다 안절부절못했다.

아이들은 더위에도 지치지 않았다. 창가에 붙어 앉아 재잘거렸고 침대칸이라 1층, 2층 침대를 오르내리며 잠시도 가만있질 못했다.

내 아들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사색이 되어 앉아있는 나와 가끔 얼굴을 부딪치며 엄마가 옆에 있는 것을 확인하곤 했다.

더위에 지쳐 몸은 바스러졌고 시간과 열기는 버무려져서 지루하게 마주오고 흘러갔다.

차창 밖의 들과 산천도 6월이라는 계절의 수려함을 담아내지 못하고 작열하는 태양열에 못 이겨 삶아진 듯 생기가 없어 보였고 메말라 비틀어진 듯 보였다.

교과서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푸른 주단 펼쳐진 협동농장의 드넓은 논밭과 아담하고 깨끗한 문화주택마을, 그리고 아이들이 뛰노는 평화로운 학교들은 저기 헐벗고 메마른 산 너머 아득한 곳에 펼쳐 있는 듯싶었다.

오전 10시 평양역을 출발한 열차가 오후 4시가 거의 다 되어 신의주역에 들어서 정차했다.

여기서 또 얼마나 오래 객실에 앉아 있었는지.

밖에서 무얼 하는지도 모르고 하염없이 앉아서 기다리는 우리들에게 신의주 세관원들인가 아무튼 여권제시를 요구하며 다가왔다.

내어 민 여권의 사진과 일일이 얼굴대조를 깐깐하게 하더니 돌려주지 않고 그대로 다 걷어 가지고 물러났다.

우리 일행은 손가방 외에 짐이 없어 그대로 물러난 듯했고 다른 객실들에서는 휴대하고 국경을 넘는 짐들에 대해 면밀히 검사를 진행한다고 차대표 부인이 말해주었다. 그리고 여권은 무슨 통과도장을 찍어주려고 걷어간 것이라고 덧붙였다.

먼 옛날 조선시대 수백 년 동안 북경으로 가는 삼백~오백명의 사행(使行) 이 긴 대열을 이루며 눈비 속을 걸어 의주에 도착하면 마부나 짐꾼을 가장해 끼어든 상인들이 짐을 검사하는 의주 관원들에게 은근슬쩍 뇌물을 찔러주면서 통과해 압록강을 건너 요동을 지나 북경으로 향했다는 이야기들을 책 속에서 많이 보아왔다.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경의 관문인 이 신의주에서 압록강을 넘으려는 자들에 기대어 살아가는 옛날 관원들이나 지금의 세관원들의 삶의 방식은 변함이 없고 대를 이어 계속되어 진화할 것 같은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바스러진 몸이 되어버린 나는 아무런 감명도 없이 북중 철교를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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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하던 태양은 강 서쪽하늘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고 강 이켠과 강 건너 저쪽의 시간이 똑같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시간이 달라져 있었다.

신의주에서 5시쯤 출발해서 다리 하나를 건넜을 뿐인데 강 건너 단동역의 시간은 거꾸로 다시 5시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신의주세관원들과는 다른 복장의 단동세관원들이 객실마다 돌며 열을 체크했다.

그 전해 겨울부터 창궐한 사스 병균으로 말미암아 두 나라 국경을 오가는 사람들은 엄중한 건강체크를 받고 있었다.

온 하루 낮 동안 찜통 같은 객실에서 부대낀 나의 몸은 열기가 아직 가라앉지 않아 37.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체온기를 보는 세관원의 눈길은 나의 벌건 얼굴은 더듬었고 나는 덜컥 겁이 나 소심해졌는데 20분쯤 후 다시 체크하겠다는 악센트가 섞인 이국의 말을 듣고 안심했고 다행히 다른 이상이 없어 여권마다 도장을 받고 하차했다.

그와 차대표가 단동역 홈에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두 달 만에 아빠를 보는 아이들은 뜀박질했고 여자들은 스스러워 건성 안부만 물을 뿐이었다.

더위에 바스러진 몸을 편히 누이고 싶었는데 단동대표부 몇몇 주재원 가족들이 오늘 도착한 우리 일행을 맞이하는 저녁모임이 있다고 그가 서둘러 채비를 당부했다.

벌써 서쪽하늘엔 진한 석양이 비꼈고 이국나라의 자주색 택시를 타고 달리는 도로 양옆건물들에서 어지럽게 네온사인이 명멸하고 있었다.

강 건너 이쪽 즐비한 아파트들과 도로 위에 분주한 차들의 소음, 냄새부터 다른 이 낯선 이국의 도시가 내 앞에 숨이 막히게 거대한, 깎아지른 절벽이 되어 마주 다가왔다.

이 이국의 소도시에서 내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2023년 2월 4일 신관복.

KakaoTalk_20230204_165718049_01.jpg 올 겨울엔 눈도 많이 와 2~3일에 한 번씩 눈을 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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