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잉태는 경의롭다
나는 일곱 살 때부터 할머니, 엄마, 고모들에 이끌려 오빠, 남동생과 함께 성묫길을 따라다녔다.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대성산기슭의 나지막한 언덕은 조상의 땅은 아니었고 할아버지 살아생전에 당신께서 미리 터를 잡아 놓은 어른들이 말하는 명당 묘 자리라고 고모들에게서 전해 들었었다.
룡흥동 우리 집 앞 전승역 지하철을 타고 대성산유원지가 있는 락원역에서 하차하면 안악궁터 방향의 교외버스를 또 타야 하는데 한식날이나 추석날에는 버스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어서 버스 타기를 단념하고 한 십리쯤 걸어서 묘소로 가곤 했었다.
우리 일행은 신작로를 따라 걷지 않고 빠른 지름길이라고 대성산유원지를 가로지르며 산길이나 오솔길을 걷곤 했는데 글 길 위에 사과나무나 모란병배나무가 심긴 과수원도 있었고 평평한 고구려시대의 안악궁터 자리도 있어서 어른들은 풍광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 아이들은 벌레들을 들여다보거나 왕잠자리, 고추잠자리를 따라 뜀박질하며 지칠 줄 모르고 왁자지껄 하며 걸었었다.
저만치 가는 할머니의 한복치마에 왕잠자리가 붙어서 살금살금 따라가다 그 녀석이 붕 날아가는 바람에 와하고 울던 나와 내 남동생의 어릴 적 모습도 아직 희미하게 남아있다.
우리들은 긴 나무 꼬챙이에 잠자리들을 잡아 가득 꿰어 들거나 제일로 마음에 드는 녀석들은 검지와 중지 손가락사이에 날개를 끼어들고 들여다보면서 누가 더 많이, 또 예쁜 잠자리를 잡았는지 내기하면서 쉴 새 없이 재잘거렸었다.
산길이 끝나고 신작로를 건너 누런 벼이삭이 출렁이는 논길을 지나 작은 시내를 건너면 삼신독공장이 나왔는데 어떤 때는 이 시냇물이 불어서 어른들 등에 업혀 건너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옹기를 굽기에 좋은 흙이 사방에 벌겋게 드러나 있는 고장이어서 독공장이 있었던 것 같다.
어린 나는 갈 때마다 길을 몰라서 거의 다 갈만하면 지쳐서 아직 멀었냐고 묻곤 했다.
조오기 저 등성이만 넘어가면 된다고 막내고모가 가리키면 그 등성이가 너무 멀어 보였고 타박타박 걸어서 끝내 묘소에 도착하면 치마를 뒤집어쓰고 할아버지 곁에서 우는 할머니의 팔을 잡고 늘어지며 폴싹 주저앉아버렸던 기억도 남아있다.
앉아서 바라본 산천은 아늑했고 바람은 순했고 땅은 벌건 색깔로 부드러웠다. 그때 나는 할머니 곁에서 편했고 그래서 묘지에 오는 길은 해마다 즐거웠다.
세월은 할머니와 엄마를 할아버지와 아버지만 누워있던 이 묘지에 잠들게 하였고 나의 아들과 오빠의 딸이, 그리고 갓난쟁이 남동생의 아들이 계속해서 우리 사 남매와 성묫길을 함께 했다.
그 애들은 우리 사 남매처럼 신나서 재잘거리지도 않았고 벌레들을 들여다보지도 않았으며 묘소에 앉아 아늑해하지 않았다. 여기가 어딘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고 분주한 엄마의 치맛자락 붙잡고 가져온 장난감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또 세월은 치마를 뒤집어쓰고 울던 할머니의 팔을 끼고 가만히 앉아있던 나를 어느새 할머니로 만들고 있다.
이 땅에 온 후로 대성산기슭의 묘소로 성묘를 갈 수가 없어서 추석날마다 임진각으로 가는 자유로 위의 고속도로 표지판에 새겨진 평양까지 240km라는 글씨를 보고 눈물 글썽이던 중학생이던 내 아들이 이젠 예비아빠가 되었다.
일주일 전 아들은 전화를 해놓고 말은 않고 울고만 있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나도 같이 울면서 말했다.
울지 마, 이렇게 살아지는 거야.
벌써 6주나 됐다고
......
그 애들이 산부인과 대기실의자에 둘이 맞잡고 앉아서 우는 모양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의 영혼이 멀리 못 가고 나의 대화에도 매번 침묵하고 있다가 참을 수가 없어서 자기 대신 새 생명을 우리 셋에게 보내준 것인가.
그가 삶의 경계선을 넘어 알 수 없는 무한의 공간으로 간지 일 년도 안 되어 아니 겨우 일곱 달 만에 우리 셋에게 또 다른 새 생명이 찾아왔다.
소중한 아가야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이렇게 우리 셋은 다시 넷이 되었다.
나와 그 애들은 새 생명을 품에 안고 또 자연스럽게 삶을 살아갈 듯하다.
오는 설날 우리 넷은 이북의 개성 송악산이 희뿌옇게 보이는 최북단 연천의 어느 산등성이에 자리하고 있는 그의 소나무를 찾아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삶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그리고 당신의 손자의 손을 잡고 내내 이곳에 오겠다고.
예쁜 나의 며늘아 너무 고맙고 사랑한다.
2023년 1월 18일 신관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