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국경도시
그와 나는 이 소도시에 와서 문득 한가해졌다.
평양에서 12년 차 직장인이었던 나는 졸지에 주재원아내라는 전업주부가 되어 집에만 있었다.
그도 특별히 대표부에 회의가 있거나 다른 도시로의 출장을 제외하면 정식 출근은 없었다.
거주하는 곳은 서재에 전화기, 팩스기, 컴퓨터, 프린터기 등 사무를 볼 수 있는 집기들이 갖추어져 있어 집이었고 사무실이었다.
아파트 6층의 한 40평 정도 되는 큰 거실과 방 2개와 화장실과 베란다 쪽에 주방을 갖추고 있는 집이었는데 차대표가 그와 함께 발령 나오자마자 우리 가족을 위하여 당시 시가로 보증금 5,000위안에 한 달 월세 1,200위안으로 계산하여 1년분을 선불하고 모든 가전제품들과 가구들을 들여놓았었다. 당시 그 소도시 노동자 한 달 월급이 평균 600위안임을 감안하면 꽤 호화스러운 집이었음을 한 달 후에 알았다.
우리 셋은 자주 압록강 가를 산책했고 유람선을 타고 강 건너 신의주 땅을 바라보았고, 강변공원에서 이상한 체조를 하는 이국인들을 구경하곤 했다.
신의주와 이 국경도시사이로 통과하는 강물은 시퍼렇게 푸르렀고 강폭은 대동강보다 많이 좁았으며 어떤 곳은 강바닥이 경사졌는지 물살이 빨랐다.
강변을 따라 동쪽으로 계속 올라가다 보면 강변에 비스듬히 시멘트계단들이 많았는데 사람들은 이곳에 앉아서 수영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책을 읽거나, 강가에서 빨래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기 집의 시커멓게 찌든 때가 앉은 창틀의 방충망까지 떼어가지고 나와 강물에 씻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디서든 옥타브 높은 이국 말이 소음처럼 들렸고 웃통 벗어 제치고 거리를 활보하는 남자들과 남녀불문하고 바닥에 침을 뱉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소도시였다.
양안에서 한 강물을 먹고 쓰는데 음식 맛은 판이했고 공기의 냄새와 사람의 냄새도 완벽하게 달랐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 1층에 큰 식당이 있었는데 이 동네 많은 사람들이 하루 세끼를 여기서 해결할 만큼 서민적인 음식종류가 고루 많았고 값이 싼 식당이었다.
그러나 이 식당에서 온 동네로, 아니 아파트 위층으로 올라와 퍼지는 이국의 음식냄새로 나는 입덧처럼 3개월이나 속이 울렁거렸고 이 도시의 음색냄새가 나의 체내에서 무반응을 할 때까지 여러 달 걸렸었다.
더 가관인 것은 하도 속이 울렁거리고 밥을 제대로 못 먹으니 전체적 건강상태가 안 좋아 단동제2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이 도시병원 시스템이 그런지, 아니면 외국인이라 그랬던지 소화기내과, 순환기내과, 신경내과를 거쳐 산부인과까지 조리돌림을 당한 끝에 내린 진단이 임신이라는 것이며 당장 이동침대에 눕히고 꼼짝 말라는 것이었다.
하도 기가 막혀 이동침대에 눕지 않겠다고 간호사와 승강이를 벌이고 당장 진료 그만두고 집으로 가겠다고 떼를 쓰는 나를 보고 보호자로 따라왔던 차대표 부인이 한수 더 떠 축하한다고 히쭉벌쭉 웃으며 내 손을 잡아 주기도 했다.
아무리 지방소도시 병원이라도 이런 엉터리가 있을까 싶었다. 진료비청구서를 받아 들고 또 한 번 경악했었다.
임신소동은 한동안 우리 두 가족이 모인 식사자리에서 웃음거리로 회자되곤 했다.
단동주재원으로 3번째 발령인 차대표는 요리솜씨와 살림솜씨가 있는 조선족 아줌마를 입주도우미로 두고 있었는데 우리 가족은 일주일에 여러 번 그의 집에 초청받아 식사를 같이 하곤 했었다.
이 소도시 상인들은 국경도시 상인들답게 눈치가 빨랐고 속셈이 빨랐다. 그들은 강 건너 저 편에서 온 주재원이나 대표단, 관광객들을 한눈에 알아보았고 먼저 말을 붙였고 과도한 친절을 보였다.
귀국하든, 출국하든 단동을 거치는 저 켠 사람들은 거의 인텔리이거나 당간부, 행정간부들이었고 주재하는 사람들의 안내를 받으며 귀국물품들을 챙기곤 했는데 이들의 장사꾼스럽지 못하고 체통만 지키는 약점을 잡고 늘어지며 약삭빠르게 비싼 값으로 이윤을 챙기려 들거나 다음을 기약하는 과한 웃음을 짓는 것이 이 도시 상인들의 몸에 밴 습관이었다.
이 도시상인들은 가난하고 아무런 제품도 생산해 내지 못하는 강 저쪽 사람들을 상대로 별의별 상품을 다 팔아 돈을 벌었다.
이 소도시의 음식냄새나 공기냄새, 사람냄새는 버무려져서 서서히 내 몸에 스며들었으며 어느 날 저녁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셋이 아파트 1층 식당 야외식탁에 앉아 구운 양꼬치에 이런저런 이국의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불가피한 인간의 적응에 대해 언뜻 생각했었다.
나는 몇 달 후부터 기름진 음식을 잘 먹고, 잘 자고, 가끔씩 부인들과 쇼핑하고, 찻집에서 수다도 조금 떨고 단동육위로초등학교 아들의 국어교과서를 들여다보면서 낮 시간을 보내고, 요청하면 그의 서류를 거들어주며 여느 부인들과 같이 주재원 아내의 생활에 익숙해 갔고 소도시의 생활에 만족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국경도시에서 나의 지금의 평안은 지속될 수 있을까.
2023년 2월 5일 정월대보름날 신관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