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의 삽화

덧없는 것들의 눈물겨움

by 신관복

이름 모를 한 무리의 새들이 내 집 뒤 켠 사과나무에 겨우내 매달려있는 따지 않은 사과와 따서 한 구석에 무져놓은 사과들을 부지런히 쪼아 먹고 있다. 몸통은 회색과 재색, 흰색 빛이 섞여있고 치켜든 기다란 꼬리 끝은 자주색 빛으로 꽤 크고 아름다운 모양의 새 종류이다.

사과나무 밭쪽으로 나있는 2층 구석방 창가에 서서 그것들의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며칠에 한번, 그것도 오후 제일 따뜻한 무렵에 이 새무리는 여기를 찾아오는 듯싶다. 한두 어 시간 사과나무들 사이를 날며 내리며 그렇게 노닐다가 해거름이 되면 어느 순간 와 날아올라 숲 속으로 돌아간다. 나는 그것들의 숙영지가 어딘지는 알 수 없다. 해지는 서쪽 하늘로 날아가는 한 무리의 새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며 나는 새들의 수명에 대해 문득 생각하곤 했다.

눈이 많이도 와 겨우내 하얗던 집 앞 정원의 잔디밭이 누런 옷을 되찾아 입었고 가장자리에 심은 목수국 가지들은 아직도 갈색의 꽃송이들을 매달고 바람에 떨고 있다.

재작년 가을 끝에 그가 앙상하도록 가지치기를 해주었던 정원가장지리의 느티나무는 작년 여름 더 억세게 가지를 뻗어 잎을 떨 군 그 무수한 잔가지들을 바라보며 내가 올 초봄에 꽤 저 나무의 가지치기를 할 수 있을 것인지 가늠해 보았다.

구름 없이 갠 날이면 하늘에서 해살이 내 집 테라스 새시를 뚫고 거실의 화초를 비추고 온실 같은 테라스의 열기가 안으로 밀려들어와 태양열 난방의 은혜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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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주말 오전 오후 중간쯤 밖이 가장 따뜻한 시간이면 목도리를 두르고 뒤쪽 언덕배기의 영자언니네로 건너가 차 한 잔 같이 마시며 하나마나한 얘기로 언니도 나도 시간을 보내고, 자식들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고 내놓은 병원비 보험료 청구를 언니와 아저씨의 휴대폰으로 신청해 주기도 하곤 한다.

영자언니네 집 앞 언덕에 언니와 함께 서서 바람을 맞으며 건너다보는 앞산 중턱에는 수 십 년 아니 수 백 년을 내리고 쌓인 낙엽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고 나무들이 앙상하게 서있어서 헐렁해 보였고 쓸쓸해 보였다. 그래도 산 위쪽에는 소나무와 잣나무 같은 사철 푸른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산전체가 완전히 거무스름하지는 않았다.



작년 봄까지 그가 해마다 알아서 거름포대를 밭에 들이고 뿌리고 해서 그 켯속을 나는 몰랐었는데 봄이 다가오니 문득 거름은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에 영자언니에게 물어봤더니 자기 집의 것을 갈라 쓰자고 하기에 내가 알아서 할게 하고 이장님께 전화해서 도움을 요청했었다. 그런데 어느새 사과나무 밭에 팔레트 채로 실어다 갖다 놓았는지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밭으로 언뜻 눈길을 돌리면서 알았다. 고맙다고 전화로 인사했다.

사과나무 밭에 거름포대를 갖다 는 놓았지만 일일이 나무마다 뿌려주는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안 해본 바깥일이 점점 두려워진다.

전기검침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집집마다 돌며 마을길을 누비고 있다.



발효되지 않은 빈약한 글줄들과 씨름하느라 몸도 마음도 경직되었다. 어깨와 등이 뭉쳐버리고 입안이 헐었다. 되지 않는 글줄들만 밤낮으로 붙잡고 골몰하며 식은땀을 흘리며 부질없는 잡념에 시달렸다.

안젤라 고모는 6개월 동안 모든 생각을 떨쳐버리고 멍하니 바보처럼 먹고 자고 운동만 하라고 간곡히 권했다.

글을 쓰면서 내가 아마 조급하고 갑작스러운 어떤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던 가부다.

그리고 내일이라도 어느 순간 갑자기 내가 쓰러져서 죽을 수도 있다는 우울증상이 항상 나의 몸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다가 나를 밤마다 어떤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자는 듯, 깨어있는 듯한 나를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조바심쳤고 쓰고 돌아서면 또 갈증을 느끼고 또 써도 잘 써지지 않고 하는 나 자신이 파놓은 구덩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구름이 끼면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해토가 되면 내 집 정원의 누런 잔디가 서서히 초록의 옷을 갈아입고, 박새니 제비니 이름 모를 새들이 정원의 소나무에 둥지를 만들고 알을 까고 새끼를 기르고, 앞산의 헐렁했던 나무들이 무수한 이파리를 달아 스치는 바람에 수런거려서 산중턱의 낙엽들이 가리어지고, 생명은 이렇게 저절로 태어나고 스러지는데 그처럼 덧없는 것들과 나의 살아가는 모양은 꼭 닮아 있음에 눈물겹게 안도해야 할 것인데.



맑은 공기를 폐부로 느끼고 싶어 집 주변을 서성이고 들어오는데 휴대폰이 울리고 있어 받아보니 마을길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사과농장의 김사장의 전화였다.

모임이 있어 읍으로 가는 길에 보니 집 앞에서 서성이는 내 모습을 보고 잘 지내고 있는 가 고 안부전화 한 것이었다. 집에 사과가 떨어지지 않았냐며 오가는 길에 사과 한 박스 갖다 주겠다고 한다. 눈앞에 김사장의 모습과 김사장의 노모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맙다고 했다.

전기밥솥에 안쳐놓은 밥이 다 되었다고 뻐꾸기 소리를 내고 있다.

낮 동안 산 골골이 드나들던 바람도 어스름이 내리면서 잠잠해지고 새들은 이미 자기들의 숙영지로 돌아갔을 것이다.

구수한 밥의 향기가 온 집안 가득 퍼지고 있다.

KakaoTalk_20230220_194300627_08.jpg 구름없는 맑은 날이면 내집 테라스는 태양의 빛을 받아들여 스스로 온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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