綠山

3. 백두산은 우리나라 산

by 신관복

국경의 소도시 단동에 도착한 2004년 그해 가을 9월 초하루에 아들은 단동육위로초등학교 2학년에 입학하였다.

개학 며칠 전에 입학수속을 마치고 드디어 첫 등교일 우리 온 가족은 아침 일찍부터 분주탕을 피우며 마치 가족나들이 가는 날처럼 설레며 학교로 향했다.

차대표네 가족과 우리 두 가족이 떠들썩하며 차를 타고 아이들의 학교로 가는데 도대체 누가 공부하러 가는지 어른들도 새로 입학한 초등학생들 마냥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고 몸과 마음은 부풀어 높고 청명한 가을하늘로 날아갈듯한 모양새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 평양에서는 북 중 무역이 활발해지자 너도 나도 중국어열풍이 불고 있었으며 부유층들 속에서는 자녀의 소년유학(조기유학)이 간절한 꿈이었다. 지금 그 꿈이 현지에서 실현되고 있는 순간이어서 더 감개무량했다.

이국의 선생님이 밝은 얼굴로 우리를 맞아 두 아이의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갔고 한 교실 다른 애들보다 머리 하나씩 큰 두 아이도 짐짓 긴장되어 앉아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 어른들은 웃으며 밖으로 물러나왔다.

KakaoTalk_20230304_092513766_02.jpg 단동육위로초등학교(丹东六伟路小学)

국경도시 단동에 도착하여 가장 처음으로 신경 쓴 것이 아들의 학업문제였다.

평양에서 소학교 4학년을 졸업하고 나와 함께 출국 한 아들은 한 마디도 이 이국의 말을 몰랐고 이제 학업을 이어나가려면 가갸거겨하며 우리말을 시작하듯이 백지상태에서 다시 언어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것이 우리 부부에게 초미의 숙제였다.

두 아이가 3개월 동안 중국어 과외선생과 함께 매일 언어의 기초부터 배웠는데 아이들은 4개의 성조를 가진 이 나라의 말을 노래하듯이 외우고 그림 그리듯이 병음 쓰기를 반복했다. 개학 전에 다행히 벙어리는 면한 듯싶었다.


언어문제 때문에 3살이나 어린애들과 한 교실에서 학교생활을 시작했기에 이 나라의 국어에 대한 아들의 열의는 다른 과목에 비해 높았다. 나도 집에서 낮시간에는 국어교과서만 들여다보면서 새 단어공부를 했고, 번역을 해서 뜻을 익혔고 아들이 하교해서 집에 돌아오면 본문외우 기를 경쟁하곤 했다.

교과서 본문 중 오늘날까지 기억하고 있는 아름다운 시가 있다.

在山的那边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면 "산 너머 저편"이라는 중국의 20세기 유명한 시인 왕자신의 시였다.

나는 이 시를 우리글로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이 나라말로 그대로 읽는 것이 더 아름답고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기에 아직도 가끔 아들과 이 시를 되뇌고 있다.

삶의 크나큰 뜻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이런 시가 어쩌면 어린아이들에게는 부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새 언어를 익히는데 초등학교 국어교과서만큼 좋은 학습교재는 없었고 교과서 본문외우기처럼 빠른 언어습득의 길은 없다고 지금도 단언하고 있다.

이렇게 한 학기가 지나고 2학년 1학기 끝무렵 학교 선생님들과 상의하여 겨울방학이 끝나고 다음 학기는 3학년 2학기로 진학해서 공부시키기로 하였다. 제 나이에 맞는 학년에서 또래들과 공부하고 싶어 하는 아들 때문에 우리 모자는 조급했지만 한꺼번에 오르지는 못하고 이렇게 한 학기씩 거스르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그 시절 한 학기에 한두 번씩 학부모총회를 소집했는데 차대표부인과 나는 이 모임에 아주 열심히 다녔다.

담임선생이 교단에서 일장 연설을 하는데 50%도 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모임 내내 선생의 눈과 마주치며 제일 앞 책상에 앉아서 듣곤 했다.

맨 첫 번째 학부모총회의 날 교실 뒤쪽 벽면에 학급애들의 이름과 성적이 순위별로 나열된 프린트물이 걸려있었는데 마지막으로 꼴찌와 그다음 꼴찌가 차대표아들과 우리 아들이었다. 차대표부인과 내가 그 벽을 쳐다보며 내 아들이 그래도 형이라 차대표아들보다 앞섰네 하며 마주 보며 웃던 광경이 지금도 잊히지 않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지 어느 날 저녁 세 식구가 둘러앉은 식사자리에서 아들이 우리 부부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그날 사회문화라는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설명을 듣다가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했다고 한다.

백두산을 왜 장백산이라고 합니까? 우리나라에서는 백두산이라고 배웠고 백두산은 조선의 산, 우리나라 산입니다.

강 건너에서 온 이국소년의 당돌한 질문을 받은 선생님이 웃으며 두 나라의 국경에 있는 산이며 백두산, 장백산 이 두 명칭이 혼용해서 쓰인다고 다정하게 말했다고 아들은 이야기했다.

초등학교의 작은 교실에서 조중 두나라의 영토다툼이 일어날 뻔 한 그날 밤 우리 부부는 백두산정계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홀로 안수길 작가의 장편소설 "북간도"를 들여다보며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내 아들의 이 이국의 학교생활은 그 애의 앞날에 어떤 시절로 자리할까.

그리고 이국의 국어과목에서 공부한 왕자신의 시 "在山的那边"에서도 노래하듯이 산 너머 저편이 산, 또 산 첩첩 히 산이지만 그 산산을 넘은 후에는 기어이 바다가 펼쳐지리라는 신념이 그 애의 마음에 깊이 심어질 수 있을 것인가.


2023년 3월 1일 밤에

안수길작가의 대하소설 "북간도"를 다시 읽으며 신관복.

KakaoTalk_20230220_201122229_01.jpg 우리 집 뒤쪽 멀리 언덕배기에 영자언니의 집이 보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골집의 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