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은 멀리 있어도

by 신관복

입춘은 달력상에만 존재하는지 한파는 물러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끈질긴 추위로 몸과 마음의 시림은 일상이다. 퇴근길, 내가 탄 버스는 아침출근길에 건너온 한강을 다시 되돌아 건너간다. 나는 버스 안에서 강을 건너는 이 시간마다 착각에 빠진다.

홀로 바람 부는 벌판을 머리 숙이고 걸어가고 있다. 아무리 걸어도 들판에는 회오리치는 바람소리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당신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무서움과 고독으로 온몸을 전율하며 침착해지려고 애쓰는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있다. 헛것인 줄 알았는데 아, 또 다른 나다. 이 들판을 지나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면, 꽃피고 새들이 지저귀고, 맑은 시내가 흐르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을이 꿈속에서처럼 꼭 눈앞에 펼쳐지리라는 마음속 신념만이 춥고 지쳐가는 내 몸을 얼싸안고 부축하고 있다.

버스가 아파트 앞 정류장에 도착해 섰다. 버스에서 하차할 때 나는 늘 긴장되어 내린다. 나의 왼쪽 발이 하차문에서 떨어지는 찰나의 순간에 버스는 벌써 문을 닫고 출발하고 있다. 횡단보도 앞, 녹색신호등이 켜지길 기다리며 맞은 켠을 응시하고 서서 또 중얼거린다.

‘당신이 저 켠에 서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으면 아마도 아침에 헤어졌던 우리는 이산가족 상봉하듯 얼싸안고 한 덩어리가 되어 집으로 올라갈 것이다. 맞은편 도로석에 올라서며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휑뎅그레한 공간을 한번 힐끗 쳐다보며 아파트 정문을 향해 걷는다.

집 문을 열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적막한 방안에 대고 말한다. “나 왔어, 오늘 너무 춥다.” 캄캄한 집안에서 홀로 나를 기다리던 무엇이 휙 내 앞으로 다가와 나의 찬 얼굴을 쓰다듬어 준다.

집안의 이쪽저쪽 불을 켜며 기웃거리다 최근에 아주 굵은 가지를 흙속에서 뻗어내고 있는 금전수 화분 앞에 쭈그리고 앉아 유심히 한동안 들여다본다. 그 옆 유리 화병 물속에 굵고 무수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또 다른 금전수도 들여다본다.

‘봄이 오면 흙속으로 옮겨줄게. 약속할게!’

무엇엔가 쫓기는 듯이 서둘러 싱크대 앞에 서서 저녁 먹을 준비에 몰두한다. 집안에 둘이 있는데 먹을 사람은 하나다. 쟁반에 준비한 저녁밥을 담아 들고 TV앞에 마주 앉으며 중얼거렸다.

‘당신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가끔 적막을 떨치려 출입문을 열고 나와 복도창가에 서서 한강의 야경과 저기 강 건너 난지도 하늘가에 떠있는 달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있다. 붉고, 둥글고, 커다란 보름달 조금 옆에 유난히 밝게 반짝이는 별은 내 마음의 벗이 된 지 오래다.

‘당신도 같이 저 달과 별을 바라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몸이 으슬으슬 추워질 시간이면 이 마음의 벗이 수억광년의 거리에서 반짝이며 어서 꿈나라에서 만나자고 재촉한다.

어둠 속에서 침대의 옆자리를 쓸어본다. 아마도 잠들면 내 옆에 그가 있으리라. 꿈은 내 마음의 벗인 그 별이 빛나는 세상이다. 꿈속에서 그와 나는 이 세상의 이야기를 섞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혼자 중얼거리지도 않는다. 그렇게 나는 꿈속에서나마 그를 만나러 삼라만상의 끝까지 갔다 동틀 무렵이면 나의 침대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되돌아올 때 그는 내 그림자가 되어 말없이 먼저 내 방으로 와있다.


별은 멀리 있어도 늘 같은 곳에서 반짝이며 이 세상 그 누구도 대신하지 못하는 내 마음의 벗이 되어준다.


“여보, 당신이 빛나는 삼라만상의 그곳은 얼마나 먼가요?”


2026년 2월 8일 일요일 저녁에 신관복 쓰다.


더 씀.

그와 마지막 3년을 함께 보낸 영월에는 나를 포함해서 네 여인이 함께 만든 수다클럽이 있다. 어쩌다 시간약속이 맞으면 만나서 밥 먹고 차 마시고 하는 이 여인들이 어느 날 밥을 먹다가 모임 이름을 수다클럽이라고 하자고 의견의 일치를 모아 그때부터 우리들의 밥 먹는 모임의 이름이 생겼다.

저번 주말에 오랜만에 서로 시간이 맞아서 김삿갓계곡에 그림처럼 자리하고 있는 어느 양식집에서 밥을 같이 먹으며 수다를 떨다가 내가 서울살이 하면서 우리 집 복도 창가에서 마주 보이는 이 한강하늘의 빛나는 별과, 내 삶 속의 그림자 같은 어떤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갑자기 수저들을 멈추고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웃으며 나는 매우 정상이라고 그 눈빛들에 대꾸를 해주었다. 어느 멤버가 나에게 무섭지 않냐고 되묻기도 했다. 사심 없이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수다클럽의 이녀들도 내가 많이 걱정되었나 보다.


서울에 도착하면 나는 한강하늘의 그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꿈나라에서 만나자고 속삭이며 적막의 집안으로 들어설 것이다.


KakaoTalk_20260208_190357011.jpg 녹색의 화초들을 햇살이 빛나는 창가 쪽으로 모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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