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사라진 남자, 그리고 남겨진 아내와 아들
국경의 소도시 단둥의 겨울은 평양보다 많이 추웠다. 2004년 겨울, 벌써 한 해가 마지막 며칠을 남겨 놓고 있었다.
중국인들의 크리스마스(성탄절)에 대한 의미는 그냥 가족 연인끼리 같이 모여 식사하고, 쇼핑하고,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즐거운 명절임에는 틀림이 없었으나 성탄절이 무슨 명절인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도 않는 그 의미가 무색하지만 신나는 명절이었다.
성탄절의 의미는 뒤로 젖혀두고 이 소도시의 젊은이들은 연인들끼리 팔을 끼거나, 어깨를 감싸 안거나, 허리를 감싸 안고 거리를 활보했다.
그리고 이 소도시 시민들은 대낮이고 밤이고 압록강변이나, 아파트 단지 안이나, 주택마당, 심지어 십자도로 중심에다 폭죽을 터뜨리며 서로 껴안고 와와 환호를 올리곤 했다.
길거리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럴은 명절이라는 분위기를 만들기에는 충분했지만 나에게는 크리스마스찬송가가 아니고 시끄러운 소음에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아침 여덟 시 즈음에 차대표 부인의 전화를 받고 차대표의 집으로 급히 가는 길이었다.
“지금 빨리 저 좀 봐요, 급한 일이에요, 동강에 있는 변대표 알죠? 그분 아내 되는 사람이 오늘 새벽에 전화가 왔는데 남편과 통화가 되지 않은지 하루가 넘었다고 해요, 일단 제 남편에게 밖엔 알리지 않았는데 언니에게 두 번째로 전화하는 거예요, 얼른 만나서 얼굴 보고 얘기해요.”
나는 전화를 끊는 순간 가슴속 깊은 곳 어디선가 쿵 하는 둔중한 울림을 느꼈다.
“설마?”
다섯 살밖에 안된 변대표의 아들과 오목조목 예쁘장하게 생긴 그의 아내의 얼굴이 순간에 스쳐 지나갔다. 단둥에서 얼마 멀지 않은 동강시에서 북한전문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그들 부부는 해외파견 나온 지 6개월쯤 된 새내기들이었다.
우리 가족과 차대표의 가족이 바람도 쏘일 겸 10월 중순 즈음에 그들의 식당에 가서 가족모임 겸 밥 한 끼 먹은 적이 있었고, 변대표의 아내는 대표부에서 한 달에 한번 정도 얼굴을 보는 정도였다.
변대표는 유머를 재치 있게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리 미남은 아니었지만 중키에 전체적으로 훤한 얼굴에 유한 인상을 가진, 주위사람들이 다가가기가 어렵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인상의 사나이었다.
어려서 소련에 주재원으로 파견되었던 부모를 따라 3년 정도 모스크바에 거주한 적이 있어 조기유학을 했다는 변은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러시아어를 잘 구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다른 주재원들이 파견 전부터 중어에 열중하고, 해외 나와서는 열리지 않는 귀가 하루빨리 열리도록 그야말로 악착스레 노력하고 있는 것과 정반대로 변은 중어공부를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아 단순한 몇 마디 인사정도를 제외하고는 전혀 중국어 소통이 되지 않았다.
이러한 변대표가 중국 땅 어디를 가든 대화는 고사하고 입도 뻥긋 못 할 터인데, 과연 혼자서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문득 늘 그림자처럼 변의 옆을 따라다니며 일처리를 해주던 젊은 중국인의 얼굴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변대표와 그의 가족과, 주변 인물들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차대표의 아파트단지 앞에 이르고 있었다.
차대표부인은 아주 사색이 되어 나를 맞았다.
“ 이건 중대한 일이에요, 아니 사변이에요, 하루 반나절씩이나 남편과 통화가 안 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언니도 알잖아요?” 차대표부인의 떨리는 말을 받으며 내가 말했다.
“혹시 그 변대표 옆에 항상 따라다니던 젊은 친구 있잖아요? 그가 알고 있지 않을까요?”
“아, 그 친구요? 그렇지 않아도 내가 전화를 해봤는데 금시초문이라고 하던데요, 통화해 본 지가 삼사일쯤 되었다나 봐요.”
차대표부인이 낮은 소리로 전해준 이야기는 대략 이러했다.
변대표 아내의 말에 의하면 변대표가 평양 갔다 와서 한 이틀 동안 두문불출하고 집에서 누워만 있었다고 한다. 멍해빠진 얼굴을 바라만 보며 평양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자꾸 물어볼 수가 없어 조용히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다음날 외출한 후로 연락이 끊어졌다고.
사태를 정리하면
변대표 아내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한 차대표부인에게 제일 처음 남편의 행방불명의 사실을 전화로 알려왔다.
그다음 차대표부인은 남편인 차대표에게 알리고, 나에게 전화해 지금 마주 앉아 현황을 공유하고 있다.
변대표가 도주라도 했다면 이 엄청난 사태에 대해 변대표의 아내와 아들, 차대표부부와 그리고 우리 부부는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하는가?
내가 조심히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차대표부인은 신중한 어조로 답했다.
“만일 변대표가 평양과 가정을 버리고 어딘가 숨은 것이라고 가정하면 남편들에게 말해서 빨리 대표부에 보고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아요. 그래야 남은 가족이나, 우리들 가족이 피해를 당하지 않을 테니까요.”
나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이렇게 말을 덧붙였다.
“그래요, 빨리 대표부에 알려 변대표 행적을 찾아봐야 해요. 혹시 알아요? 흑(黑) 사회인가 그런 자들에게 돈 때문에 당했을 수도 있고 또 어디서 교통사고가 나서 연락이 안 될 수도 있잖아요? 제발 그런 일은 없겠지만은 말이에요.”
점심에 주방 식탁에 마주 앉아 이제 어떻게 하냐는 눈길로 남편의 눈을 바라보았다.
남편의 견해는 이러했다.
사고는 아닌 것 같고, 중국을 빠져나가 러시아로 갔든지, 중국 땅 어딘가로 잠적했던지 둘 중의 하나라는 것이었다. 시점이 묘하다는 것이었다. 평양으로부터 호출받아 들어가서 무슨 조사를 받고 출국한다, 못한다, 하다가 겨우 어떻게 출국한 것 같은데 하며 덧붙이는 말이
“사람이 보기와는 달리 결단성이 있네.”였다.
나는 그 말에 갑자기 천장과 집안 여기저기를 휘둘러보며 도청장치가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남편은 그러는 나를 보며 그러면 숨도 쉬지 말고 살자고 하며 웃었다.
창밖에서 회오리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따뜻한 집안에 있는데도 마음은 춥고 불안했다. 나는 학창 시절 항일빨치산에 대한 강의를 듣거나 책을 볼 때 떠올리곤 하던 그 설한풍이 휩쓰는 허허벌판과 산중을 생각하고 있었다.
변대표는 지금 기차 안에 있을까? 아니면 그 찬바람 부는 산중을 걸어가고 있을까?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남편이 늘 말하는 그 자유, 자유로운 세상이란 이런 엄청난 행위 뒤에 얻어지고 만나는 것일까? 그러면 너무 값비싸지 않나? 그의 아내는 왜 아들을 데리고 남편을 따라가지 않았을까? 아니, 변대표는 왜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가지 않았을까? 그들은 앞날을 기약했을까? 기약했어도 언제 만날지 모르는 그 긴긴 세월 아들이 자라서 아빠에 대해 물으면 뭐라고 답해줄 건가?
그날 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어도 눈 날리는 허허벌판이 자꾸 생각났다.
남편이 말했다. “내일 아침부터 대표부가 시끌시끌거리겠군.”
변대표의 아내와 아들은 연중으로 평양으로 들어오라는 소환지시가 내려졌고 변대표는 실종자로 처리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 지어졌다.
이런 결과가 변대표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을까?, 실종자로 되어버리면 남은 가족들이 조금이나마 편할 테니까.
2026년 1월 4일 일요일 밤에 신관복 쓰다.
변대표가 사라진 지 3년 후 우리가족이 서울에 와서 변대표의 행방을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그는 대한민국으로 오지 않았다. 그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