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발길이 멈춰진 식당으로 들어가 곰탕 한 그릇 주문하고 안내해 주는 자리에 앉았다. 벽을 마주 보고 앉아야 하는 일인용 식탁이었다. 하얀 벽을 마주 보며 잠깐 앉아 있다 등 뒤로 눈길을 돌리니 창을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2인용 식탁이 눈에 들어왔다. 수저와 물통을 들고 나에게 다가오는 여직원에게 2인용 식탁에 앉아도 되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떡여준다. 다시 자리를 옮겨 창을 마주하고 앉았다.
뜨거운 곰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숟가락을 들고 국물 한 모금 떠먹었다. 국밥 한번 먹고 정오의 햇살이 가득한 창밖을 바라보고, 또 한 번 먹고 창밖을 바라보며 여기 앉길 잘했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창밖 가로수의 노란 은행잎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처럼 흩날리며 떨어져 인도와 차도에,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리와 옷자락에 내려앉았다. 식당 주차장을 관리하는 아저씨가 비를 들고 식당 앞 인도의 노란 은행잎들을 쓸어낸다. 쓸어내는 동안에도 노란 꽃잎 같은 은행잎들은 여전히 흩날리며 내려앉는다. 식당 문을 열고 나와 노란 은행잎들을 밟고 가다 뒤를 돌아보니 조그만 관리실 앞에 서있던 아저씨가 다시 비를 들고 인도의 낙엽을 쓸고 있다.
저녁 퇴근 무렵, 카카오버스앱으로 집으로 가는 버스시간을 확인하니 3분 30초가량이면 서교동정류장에 도착으로 떠있다. 헐레벌떡 동료들에게 간다고 인사하고 가방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뛰기 시작하였다. 몇 걸음 못 가서 다리가 꼬이며 시멘트 바닥에 제대로 넘어져 버렸다. 가방은 저쪽으로 날라 가고 두 무릎과 오른쪽 손바닥이 몹시도 아팠다. 곁에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젊은 남녀가 다가오며 괜찮으세요? 물어본다. 아픔을 참으며 엉기적엉기적 일어나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가방을 찾아들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으으으으... 저절로 신음소리가 쉼 없이 입에서 흘러나온다.
양화대교를 건너는 버스 안에 앉아 한강 저쪽 불빛 휘황한 서울의 야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집에서 누가 기다리나? 뛰긴 왜 뛰어. 캄캄한 정적과 어둠만이 맞이하는 집으로 단 몇 분이라도 빨리 가려고 나는 늘 조바심을 친다. 왜? 모르겠다. 그냥 무턱대고 집에는 빨리 가고 싶은 것 같다. 버스 안에 앉아가는 그 시간 동안 나는 또 머리를 텅텅 비운다. 아무런 생각도 안 하고 그냥 앉아있다.
창이 훤하게 밝고 잠에서 깼지만 나는 그냥 누워 있다. 아무 생각도 안 하고 그냥. 토요일이다. 옷을 대충 걸치고 마스크를 쓰고 길 건너 아파트단지 안에서 토요일에만 열리는 시장에 나간다. 도로 양편의 가로수들에서도 은행잎들이 흩날려 사방 떨어진다. 양지쪽 은행잎들은 가을의 노란색으로 충만되어 떨어지고, 음지쪽 은행잎들은 노란색과 녹색의 중간색으로 흩날린다. 얼마간의 귤과 갓 구어 나온 빵 몇 개, 두부 한모를 사가지고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와 TV앞에 마주 앉아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음악채널로 고정하고 화면을 끈다. 창가로 다가가 아침에 해 널은 빨래가 베란다 작은 바람에 하늘거리는 것을 바라보다, 또 성냥갑 같은 맞은 켠 아파트 사이사이로 온통 가을의 색을 입고 술렁이는 붉고 누른 나무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나무들이 모두모두 단풍색이구나.
아들네가 오지 않는 어떤 주말에는 정적과 고독의 낮 시간들을 백화점이나 다이소에 가서 줄이기도 해 본다. 황혼이 내리는 저녁 무렵에는 책장 앞에 마주 서서 두세 번씩 읽은 좋아하는 소설책들의 앞 뒤표지에 새겨진 글들을 이것저것 흩어보며 잠깐이나마 그 글속 세상으로 들어가 본다. 생각해 보니 오늘 하루 종일 누구와 대화를 한 마디도 안 한 것 같다. 심지어 동네 시장에 가서도 카드만 건네고. 혼자서 입을 크게 벌려 아이우에오를 한 댓 번 외쳐본다.
싱싱한 바람과 따뜻한 햇빛의 냄새를 머금은 잘 마른빨래를 개키면서 바라본 창가에 불그스레한 서쪽하늘이 멀리 보인다. 개킨 옷가지들과 수건들을 안고 일어나며 중얼거린다.
하루가 참 빠르구나.
2025년 11월 22일 토요일 밤에 신관복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