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속에 뿌리내린 무책임
나는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산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있는 근본적인 오류로 인하여 이 소망은 그릇된 욕망으로 바뀔때가 많다. 무언가를 이뤄보겠다는 욕심으로 성급하게 뛰어든 열정은 금방 식어버리고 내 무의식속에 던져져 천천히 썩어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여지껏 많은 도전과 방치를 반복 해왔다. 누군가는 여러번의 실패로 얻은것이 있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손실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여러번의 실패는 더 많은 경험을 주기도 하지만 내가 겪은 실패는 반복되는 실패였기에 실책이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 인지편향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그에 다른 대응책을 만들어 ‘공상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을 도출했다.
이 후 나는 백일몽에 쉽게 빠지는 내 문제점을 더욱 깊게 파고들어 내가 가진 공상의 습관을 왜 가지게 되었는지, 이것을 장기적으로 내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의식과 무의식 속에 내가 집중해야 할 ‘가시적인 과업’을 설정하였다. 의식속의 일들은 내가 항상 인지 영역안에 두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무의식 속에 쌓여있는 내 ‘잠재적 과업’을 돌아보면서 여지껏 내 공상으로 인해 내가 얼마나 삶에 무책임 했었는지 알게 되었다.
무의식은 편리한 메커니즘이다. 기본적으로 우리의 뇌는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기 위하여 정보의 순위를 두고 인지영역 안에 배치를 하는데, 중요하지 않거나 필수적이지 않은 정보들은 모두 무의식속에 던져두거나 간혹 인지영역에서도 편리하게 지워버리는 경우도 있다. 예시로 카페에서 작업에 몰두하면서 들리는 음악의 가사를 일일이 인지하지 않는 상황이 있다. 우리의 뇌는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막대한 에너지를 쓰는데,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처리했을 때 걸릴 과부화를 막기 위한 일종의 생존전략이다.
내가 중구난방으로 시작했던 여러일들이 내 무의식속에 방치되었던 것도 결국 이런 원리이지 않았을까? 내 몸은 자연스레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일들만 그 인지영역 안에 두고 나머지는 모두 무의식속에 던져두어 내 삶이 과부화가 걸리지 않게 했던것일까? 미래에 대한 높은 기대감과 부담감은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인식’속 강박관념이되어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었고, 내 몸은 사나운 채찍질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짐덩이들을 무의식이라는 창고안에 두고 있었던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방치는 생존을 위한 대응이었을 수 있겠지만 미완성을 양산했다는 측면에서는 무책임한 태도가 분명하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내가 ‘시간’을 낭비하는 피해가 있었기 때문에 내 인지영역 밖에서 삶을 천천히 망치고 있었다고 결론 지을 수 있다. 이제는 이 자기파괴적인 습관을 해결을 해야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는것이 중요하다. 이 의식이 내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키워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들을 보지 않고 무리하게 삶을 몰아세웠기 때문이다. 이제 서른 중반을 넘어가는 나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제대로된 직장에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니기에 나는 더 불안감에 노출되기 쉬운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감을 안고 두려움을 직시하는 방법으로 강박관념을 벗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첫번째로 해야할 일은 내 두려움을 내 옆에 두는 것이다. 단순히 막연한 미래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맞딱드려서 싸워야할 존재로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지는 것을 싫어한다. 꽤나 자존심도 세고 오만함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싸움에 대한 내 의지는 강하다. 그렇다고 내가 이 두려움을 이겨 낼 생각은 없다. 오히려 승리에 도취해 사라진 적수의 공허함에 내가 삶의 의지가 약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분명히 공포는 내가 친구하고 싶지 않은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에서 사라져야할 존재도 아니다. 오히려 내 옆에 두고 내가 항상 바라보고 있어야할 존재다. 그래야 미래를 향한 올바른 발걸음을 옮길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해야할 것은 장기적으로 무언가 이뤄낼 목표가 흐릿하거나 현실적으로 실행 계획이 없는 일은 아예 시작하지 않는 방법이 떠오른다. 앞에서 다룬 인지편향 중 ‘희망적 사고’는 내가 이뤄낼 목표가 흐릿해도 일단 뛰어들게 만들었던 원인이다. 나는 내 문제점의 피해를 가시화 하는 과정에서 ‘시간 낭비’라는 요소를 인지영역안에 두어 이제는 내가 욕심을 버리고 ‘해야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내 몸이 견뎌낼 수 있는 한계치를 넘기는 순간 결국 무의식으로 보내지고 없었던 일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러니 이제는 욕심을 버리자. 이 욕심 때문에 내 미래에 대한 소망은 그릇된 욕망이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지영역에 나를 올려두는 것이다. 때때로 나는 스스로를 무의식의 영역에 던져 놓는다. 그것이 정신적 보상이 되었든, 두려움으로 인한 도피처였든 나는 틈만나면 인지영역을 외면하곤 했다. 스스로를 변호하자면, 누군들 안그러겠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은 참 무섭다. 분명 살이 쪄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체중계 위에 올라가기가 부담스러웠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금방 이해 할 것이다.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외면한 시간이 길어질 수록, 내 실제 모습은 내가 상상하던 내 모습에서 더 멀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상상 속에 화려한 내가 아닌, 초라하고 미약하더라도 현실 속 나를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