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점으로 날리는 한방의 카운터 펀치
‘회심의 일격’이라는 말이 있다. 영어로는 ‘크리티컬 스트라이크(Critical Strike)’ 정도로 번역될 만한 말이다. 이 단어는 문맥상 기울어져 가는 전세를 뒤엎거나 유리한 상황에 쐐기를 박는 정도의 확실한 타격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그 일격이 결과론적으로 성공적이었을 때 부를 수 있다. 즉, 아무리 잘 준비된 한방이어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면 그것은 ‘헛스윙’ 일 뿐이다.
흐름의 판도를 뒤바꿀 이런 중요한 수는 강력함과 동시에 약점을 드러낼 수도 있다. 상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만한 한방은 무조건 내 모든 힘을 집중시켜야 효과가 있기 때문에 완벽한 방어를 취한 채 내지를 수 있는 완벽한 공격은 없다. 그것을 우리는 ‘모순’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우리는 공격과 방어의 적절한 균형을 이루며 선택을 해 나가고, 매 순간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행동 지침이 바로 ‘전략’이다.
전략은 우리에게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지를 고를 수 있게 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약점과 강점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나는 미래에 대한 내 소망이 ‘공상’이라는 약점 때문에 그릇된 욕망으로 바뀌어간 과정을 돌아보는 글을 써왔다. 그러나 이것이 약점이라면 그 순간 내가 낼 수 있는 또 다른 강점은 없는 것인가? 약점이 드러난다는 것은 그 순간 어딘가에 최대한의 힘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뜻이다. 내 ‘공상’이 약점이 되는 순간 내가 역으로 이용한다면 그것이 나의 ‘강점’으로 작용할 수는 없을까?
누구나 살면서 상상만 했던 일이나 상황이 실제로 일어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많았다. 이러한 현상을 최근에는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노력들이 많았다. 몇 년간 한국에서는 론다 번의 “시크릿”이라는 책의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상상하다 보면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라는 논지가 널리 알려진 적이 있었다. 이 책은 워낙 인기가 많아져서 사람들 사이에 유행처럼 돌고 돌며 유튜브에서는 이 법칙을 다룬 수많은 콘텐츠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논리에는 다소 부정적이다. 앞선 글에서 내가 상상을 하는 일이 인지편향과 맛물리며 오히려 안 좋은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끌어당김의 법칙’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는데 1단계에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구체화하고, 2단계에서 나의 것이 되었다고 믿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미 이루었을 때의 긍정적인 감정을 받음으로써 원하는 것과 주파수가 같아지고 실제로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단계는 정확히 내 ‘공상’이 허상의 보상을 주는 단계이다. ‘끌어당김의 법칙’의 한계는 이 단계 이후에 실제로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수반되는지를 깊이 있게 다루지 않는 점이다. 만약 끌어당김의 법칙을 실행했지만 성취로 이뤄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단계에서 무언가 놓쳤을 것이라는 편리한 변명으로 지나가기 쉽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시작하는데 긍정적인 마인드와 태도를 가지고 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그 태도로 인하여 가상의 보상을 받으면 우리 뇌는 이미 성취한 것처럼 느끼게 되고 ‘잠재력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최근에 한국에서 활동하던 많은 ‘동기부여’ 콘텐츠를 만들던 사람들이 지속력 있게 발자취를 남기는데 실패하는 이유라고 본다. 초기의 폭발력으로 대단한 논지를 설파한것 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들도 인간이기에 끈기있는 노력의 벽을 넘지 못한것이다.
나는 ‘끌어당김의 법칙’이 사람들을 현혹시켰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는 상상은 여러 가지 버전이 있지만 그중에는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도 있다. 이 중 하나가 실제로 현실이 되었을 때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야!’하면서 본인의 노력보다 상상력에 더 높은 기여도를 부여하도록 착각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사람들은 양자역학 핑계를 대면서 주파수를 맞추면 그것이 일어난다라고 하지만 아직 제대로 연구도 되지 않은 양자역학의 주파수를 근거로 삼는 것은 너무 성급한 이론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상상력은 그저 우리의 나태한 태도일까?
나는 앞선 논지에서 지속적으로 공상을 고쳐야 하는 태도로 다뤘지만 내 인생에서 나쁘게만 작용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고객사를 상대할 때도 나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대비한다. 어떠한 흐름으로 내용을 전달할지, 어떤 질문들이 오갈지 더 나아가서는 담당자의 성향상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떤 분쟁이 일어날지도 생각한다. 나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한 두 달 이후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고는 했다. 특히 직장동료든 고객이든 사람과 생기는 분쟁은 항상 업무를 처리하는데 불필요한 스트레스로 작용하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미리 상상하며 대비하고픈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내가 상상했던 미래의 일들은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지점에서 분쟁이 생길지 정확하게 예측하고 어떤 고객사에서 새로운 기회를 가져올지 알았던 경험을 돌아보면 상상력은 꽤나 도움이 많이 되는 능력이다.
미래를 꽤나 정확하게 예측하는 능력은 내가 압도적으로 지능이 뛰어나다거나 영적인 연결체가 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저 나는 상상을 많이 할 뿐이고 그중에 하나가 그냥 일어났을 뿐이라고 본다. 다만 나는 관찰을 자주 하는데 사람의 태도의 변화, 반응을 주의 깊게 살핀다. 그러다 보면 사람의 성향이 보이고 다양한 사람들을 겪었던 내 경험에 기반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에 대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만들 뿐이다. 그래서 내 ‘상상력’은 ‘관찰력’과 융합되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현실성 있는 미래를 그리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꽤나 유용한 무기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내 능력을 적절히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야 중 하나가 “미래 연구(Future Study)”이다. 이 분야는 최근 들어 점점 더 주목을 받게 되는 연구 주제 중 하나로 기업들도 좀 더 진지하게 접근 중이다. 최근 AI로 인해 급격히 빨라진 사회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산업에서도 유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그리고 이 분야는 상상력이 핵심이다.
미래연구를 하는데 중요한 부분은 상상을 활용한 ‘스토리텔링’이다. 역사연구와 비슷하게 미래연구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 과거는 남아 있는 약간의 증거를 기반으로 연구한다면, 미래는 다가오는 신호를 포착하여 연구한다. 그래서 이 시그널을 기반으로 다양한 스토리를 구성하여 구체화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그림 참조: https://www.delve.com/insights/speculative-design-and-a-cone-of-possibilities]
대표적인 프레임 워크는 Cone of Possibilities가 있다. 이 프레임 워크는 네 가지의 다른 유형의 미래를 기반으로 미래의 스펙트럼을 시각화한다. 이 과정에서도 스토리텔링은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데 개인적으로 ‘그럴듯한 미래’나 ‘와일드카드’에 핵심이라고 본다. ‘가능한 미래’는 거의 가시화가 쉬운 범위의 시그널에 기반하기 때문에 스토리의 스펙트럼이 크지 않다. 그리고 선호하는 미래 또한 내가 긍정적으로 보는 희망회로 이기 때문에 스토리텔링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다만 그럴듯한 미래는 지나치게 희망적 사고를 할 수도 없지만 현실성이 떨어져서도 안되기 때문에 스토리의 무게중심을 잘 잡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와일드카드는 가장 예측할 수 없지만 영향력 자체가 상당할 수 있기 때문에 무게중심이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모순적인 형태를 띠고 있어 이야기의 중심을 너무 가볍게 잡을 경우에 거의 의미가 없는 가벼운 스토리가 될 확률이 높다.
예시로 나는 이 글을 쓰기 이전에 상상하는 버릇을 조금이나마 삶에 도움 되는 방향으로 써보고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도 이 소설을 작성 중에 있으며 미래사회를 다루는 내용이다. 다만 내가 그리는 미래사회는 종교사회이기 때문에 종교인의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를 고려하면 가능성이 낮은 미래에 가깝다. 다만 이 미래까지 가는데 벌어지는 일련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기반으로 인류 전체가 종교를 가지는 사회이기 때문에 ‘와일드카드’ 스토리텔링에 해당된다.
이 일이 어렵냐는 질문이 들어온다면, 아주 어려움으로 답을 하고 싶다. 우리는 현재 1년 후의 미래조차 제대로 가늠하기 힘든 세상을 살고 있는데 22세기 23세기의 미래가 어디 쉽게 상상이 되겠나. 그래서 가끔은 시적허용으로 공상을 활용하여 스토리텔링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그 과정은 아주 재미있었다.
공상은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인 습관이다. 어쩌면 이 습관이 내가 시간을 낭비하도록 했던 이유도 중독성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재미가 없다거나 고통스러웠다면 자연스레 하지 않았을 습관이지만 나에게 상상은 아주 재미있는 일이었고 살면서 꽤나 많은 기회를 주기도 했고 다가올 미래를 대비할 시간을 가늠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의 마지막을 쓰면서 공상이 없애기만 해야 하는 나쁜 습관은 아니라는 점을 스스로에게 분명히 하고 싶다. 라이트 형제가 새 처럼 하늘을 나는 꿈을 꾸지 않고서 비행기가 어떻게 나올 수 있었겠으며, 빛을 타고 날아가는 상상을 하지 않은 아인슈타인이 어떻게 상대성 이론을 만들 수 있었겠나. 그러니 내가 가진 습관을 냉정하게 바라보려 한다. 상상에 빠지는 습관은 분명히 위험하지만 강력한 한방의 펀치가 될 수 있다.
피해는 크고 시간은 흘러간다. 그러므로 지체할 수 없다.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시작한 이 글은 내가 얼마나 오류로 가득 차있고 나약한 면이 많은지 알게 된 계기다. 전략은 나왔다. 그러니 어떻게 싸워야 할지도 명확해졌으니 이제는 인생을 똑바로 보고 살아가는 것이다.
더 이상 터무니없는 꿈과 무책임으로 내가 가진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그 나태함의 미래에서 내가 맞이할 기대는 긍정적인 소망도, 그릇된 야망도 아닌 무미건조한 ‘허망’ 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