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에서 비롯된 피해

문제의 전환점 - 피해의 가시화

by 담다

환자는 고통을 느껴야 병원을 간다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원인을 알아보기 전에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인식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원인을 알아보는 것은 문제 해결 방안의 뿌리가 되지만 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른다면 해결에 대한 노력이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안 좋은 습관을 고치는데 실패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이런 흐름이 내 인생에 얼마나 해로운지 제대로 직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그 피해가 가시적이지 않은 악습관일수록 더욱 쉽게 타협하게 된다. 내가 가진 문제점도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환자가 병원을 찾는 이유는 원인을 알아서가 아니고 아프기 때문이다.


상상으로 낭비된 인생

내가 가진 안 좋은 습관은 맹목적인 긍정으로 미래에 대한 공상을 하면서 성취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 악습관은 표면적인 피해가 없다. 술이나 담배처럼 건강에 해가 되거나, 마약이나 음란물처럼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일도 아니고, 도박처럼 돈을 쓰는 일도 아니다. 그래서 더욱 이 습관은 무서운 악습관이다. 왜냐하면 여전히 성취감이라는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있는 사실만 따지자면 아무런 피해 없이 정신적 보상만 받은 셈이다. 그러나 기저에서는 꽤나 큰 피해가 축적되고 있는데 바로 ‘시간’이다.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란 개념은 점점 더 무겁게 다가오고 있다. 어떤 일을 완수하거나 처리하는데 드는 시간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계산명세서 마냥 일일이 셈하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지금 문제를 돌아보는 이유도 시간적 피해가 가시화되는 나이대여서 그럴 수도 있겠다. 20대에는 내가 무얼 상상하든 ‘할 수 있다’라는 가능성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상상이든 가능했다. 하지만 나이대가 바뀌면서 점점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이 보이자 시간의 소중함을 체감하게 되었다. 소중함을 깨달으면 귀하게 여기거나 아까워한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필요성을 느낀 이유는 ‘시간이 아까워졌기’ 때문이다.


시간 말고도 공상으로 인해 낭비하는 부분이 있다. 내 능력의 집중도이다. 내가 가진 문제점의 또 다른 요소는 여러 가지의 일을 시작하는 부분으로, 내가 무언가에 집중하여 실력을 깊게 만드는 일을 방해한다. 예를 들어 취미생활이 다양한 나는 악기부터 요리까지 많은 것들을 할 줄 알지만 사실 하나에 집중해서 오랜 시간 동안 파고든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악기로 공연을 한다던지, 요리로 돈을 번다던지 할 수 있는 수준은 되지 않는다.


이런 중구난방은 내 커리어에도 영향을 미쳤었는데, 대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도전하곤 했다. 제품 디자인이든 자동차 디자인이든 무언가에 100% 내 능력을 집중하여 노력을 들이지 않았다. 이 문제는 나중에 취업을 하는 시기에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경쟁을 하는 사회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역량을 나타내거나 집중된 포트폴리오가 없다 보니 정작 한 분야에 집중한 사람에 비해 쉽게 선택에서 밀린 것이다. 누군가는 나에게 어렸을 때 안 해보면 언제 그렇게 이것저것 다 해보겠냐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저것 하며 살아온 내 입장에선 20대 때가 아니면 100% 미쳐서 하나에 몰두할 수 있는 시기가 있겠느냐고 되묻고 싶다.


물론 나는 내 20대를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문제를 돌아보지 않으면서 시간을 아끼고 노력을 집중시키지 못한 아쉬움이 있을지언정 되돌아가서 바꾸고 싶을 만큼 허투루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삶에서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며 어떠한 일이나 사람에 편견 없이 접근했다. 그래서 쓸데없지만 남들보다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내 삶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는 시기는 지났다고 본다. 이제는 어린 시절보다 시작을 어려워해야 하고, 과정에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내 첫 직장에서 3년간 버텨왔던 것이기도 하다.


내 첫 직장은 사실 보수도 굉장히 적고 근무시간은 아주 길었다. 지인들이 내게 왜 그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 물었을 때 나는 내 연차보다 많은 책임을 질 수 있는 현장의 경험이라는 피상적인 대답들을 하곤 했다.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신입으로서 굉장히 시건방진 대답이다. 이제 첫 직장에서 겨우 신입티를 벗어낸 사람이 더 많은 책임을 진다고 해서 제대로 책임을 질 수 있겠나? 그럴 리가 없다. 내가 직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프로젝트를 드라이브한 경험은 퇴사하기 직전에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3년간의 내 끈질긴 회사 생활의 솔직한 이유는 성실함을 배우기 위함이었다. 나는 어떤 일을 착실하게 끝내 본 적이 없었기에 내가 회사의 일을 마스터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까지 매달려서 끝내 보고 싶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본다면 내가 직장을 다녔던 이 3년은 내 능력을 집중시켜 한 가지의 능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킨 시기이기도 하다. 내가 이루었던 최근의 ‘성취’인 것이다.


회사에서 맡았던 일은 디자인 업무가 주된 비율이었지만 내가 개발하고 있던 능력은 컨설팅이었다. 변리사들과 소통하며 고객사의 문제를 찾고 전략을 제시하거나, 평가를 받는 입장에서 아이디어를 피칭을 하는 등 나는 사람을 상대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이는 내가 인생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성취의 시기였기 때문에 헛되이 시간을 낭비할 수 있는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좋은 단서가 된다고 본다.


공상으로 발생하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먼저 공상을 멈추는 훈련이 중요하겠다. 이미 이전에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내 안 좋은 습관을 멈추는 방법을 마련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공상 트레킹이나 차단 장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그 순간을 멈추는 방법이지 본질적으로 백일몽에 빠져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뇨병 환자가 급격하게 오른 혈당 수치를 약으로 줄일 수 있어도 근본적으로 잘못된 습관을 줄이지 않는다면 여전히 환자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나는 공상에 빠져드는 내 문제는 근본적으로 접근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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