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워할 줄 알아야 살아남는다

두려움, 현생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강력한 존재

by 담다

알람은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야 할 때를 알려주는 좋은 수단이다. 나는 꿈에서 깨어나 다시 현실을 살아야 한다고 알려줄 ‘알람’이 필요하다. 내 경험상 내가 아침에 알람을 듣고 가장 빨리 침대에서 탈출한 이유는 일정이 있을 때다. 그 순간을 돌아보면, 제 시간에 참석하기 위한 심리가 나로 하여금 바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종류의 심리는 내가 눈앞의 일에 착수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동기가 되는 듯하다. 과연 이런 마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침에 내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움직였던 이유는 회의에 늦었을 때 ‘페널티’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아침에 일찍 회의가 있고, 내가 담당자인데 그 회의에 지각하는 걸 생각하면 끔찍하다. 오전 수업도 남들보다 늦게 교실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나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된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무거워진다. 즉 내가 현생의 일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두려움에 대한 올바른 태도

두려움에 대해 생각해 보니 내가 인상 깊게 보았던 영화가 생각난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배트맨 3부작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도 두려움에 대한 철학이 나오는데, 이 영화에서는 두려움을 솔직하게 맞이해야 할 감정으로 묘사한다. 몸이 불구가 된 채 자신이 아끼던 세상이 망해가는 것을 보고 주인공은 절망에 빠진다. 그런나 눈이 먼 의사는 그를 향해 두려움을 용기로 억눌러 무력화하는 것이 아닌, 그 안에서 나오는 공포 자체를 끌어안아 생존을 위한 강한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기폭제로 쓰라고 한다.


-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 중에서 -

우리나라의 예시를 보자면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에서 인용한 “필생즉사 사필즉생”라는 오자병법의 말도 유명하다. 어쩌면 이순신 장군이 했던 이 말은 하는 죽음이 두려워 공포를 외면하며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기보단, 눈앞의 공포를 목도하고 전장에서 군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에게 다그치고 싶었던 말일 수도 있겠다. 내가 현재 두려워하는 것은 아마 초기에 내가 고등학교 때 품었던 그 마음일 것이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했던 그 모든 노력들이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허사’로 돌아가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내가 무언가 세상을 향해 남길 수 있는 일들을 찾아왔던 것이다.


내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보다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였다고 한다면 너무 비약이 심한 것일까? 현재로서는 추측만 할 수 있지만, 신빙성이 있다. 욕심을 부리며 헛된 상상을 하는 일은 내 현생에 노력을 붓는 일보다 훨씬 쉽지만 보상이 빨리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내가 다시 한번 두려움의 원천과 욕심을 돌아보는 순간, 내가 여태껏 해왔던 방법은 결국 ‘시간 낭비’로 틀린 것이라는 것이 증명된 듯하다.


두려움을 눈앞에 항상 두고 있을 수 있다면 어떨까? 만약 내 눈앞에 계속해서 두려운 상황이 눈앞에 있는데도 과연 내가 나태하게 시간을 보내며 공상을 할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다시 공상에 대한 원인을 돌아보면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불안감 때문에 긍정적인 상상으로 도망치려는 회피형 전략인 것인데, 이것을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미래를 두려워하는데에서 나오는 문제이다.


나는 미래를 여태껏 추구하고 꿈꿔야 할 대상으로만 여겨왔는데, 실제로 내 마음속에선 미래가 두려움의 대상 일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내가 두려움을 눈앞에 둔다라는 것은 미래를 지속적으로 내 눈앞에 두는 것과 동일한 전제일까? 미래가 눈앞에 있는데, 내가 나태하게 시간을 낭비할 수 있을까? 앞으로 미래를 내 눈앞에 두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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