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의 서재] 식사와 인간군상
음식의 선호에서도, 그리고 음식을 다루는 그 사람들 습관을 보더라도 인간군상을 느낄 수 있다. 음식이 채 나오기도 전에 수저를 밀어 넣는 사람. 고 만큼을 먹고 배가 부른 지가 너무나도 놀라울 정도로 몇 점 집어먹더니 힘겨운 표정을 짓는 사람. 튀긴 생선이나 닭껍질에 밥을 싸 먹는 사람. 오이를 공포영화보다 무서워하는 사람. 다채로움의 정수이다.
안 그래도 각박한 세상이다 보니 사람 알아가는 것도 알아채게 되는 것도 무서운 세상인데, 그나마 사람의 다양한 식사를 구경하노라면 조금의 인간성과 위안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재미있다. 수많은 동물 중 식사에 다양한 가치를 매기는 동물이 있을까. 음식을 꾸미고, 예의를 지키고, 음식을 통해 의식을 행하기까지.
그런데 날이 갈수록 점차 도를 넘게 인간성을 강요받다 보니 속 편히 밥 먹는 시간이 보잘것없다. 주둥이에서 소리 좀 나면 어떨까. 대충 잘 펴서 잘라먹으면. 하물며 그놈의 고리타분한 먹는 방법이라니 뭐니 설교를 듣자면 문화의 정체성이던 예절과 전통이던 잠시 내려놓고 혼자 즐기는 식탁이 언제였는지 그리울 지경이었다.
좋은 예가 있다면 이런 것일까. 내 오랜 친구 놈들이 대부분 마다하지 않는 메뉴가 두 개 있다. 안키모 폰즈를 올린 초밥. 그리고 평양냉면. 확실히 안키모 초밥은 무언가 장난을 칠 여지가 별로 없으니 아쉽게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언젠가 한번 같이 갔던 평양냉면집. 발단은 호기심 천국인 나의 겨자와 식초 투척. 그 모습에 질겁하는 녀석들 표정이 재미있긴 했다만. 대체 그 맛의 옳고 그름은 누구의 무슨 기준으로 정한 건지. 아니 그보다 그러건 말건. 하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공깃밥을 시켜 말아먹기라도 했다면 가게 안의 누군가에게 스덴 냄비짝으로 뒤통수를 두들겨 맞았을 분위기이다.
음식 뷔페라도 가는 날엔 하물며 어떤가. 성인이 된 지금도 예식장에서 여러 사람과 뷔페 먹는 게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가 없다. 요즘에야 누가 뭐라고 안 하지만, 어쩌다 한 번씩 내 어린 접시에 삿대질을 올리는 군상들에게 지친 트라우마이다. 한국식 김밥과 낫또,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던 대가이기도 하고.
이렇다 보니 나는 식탁의 매너를 열 번 지킨다면 한 번은 혼자만의 식탁에 나를 가둬보기 시작했다. 애인도 가족도 친구 선후배도 함께할 수 없는 나만의 오만하고 매너 없는 식탁. 날 천박꾼, 미개인, 반달리즘 추종자로 느낀 사람들에게도 최적의 결말일 테고. 그런데 이런 오만한 식탁을 살면서 얼마나 가질 수 있을까?
내 오만의 식탁 앞에서는 많은 불편함이 오간다. 어느 날은 이마를 치게 맛있는 것도 나오고, 맛없는 무언가를 창조해 냈다면 밥상머리에서 씩씩거리며 인상도 박박 써보고, 밥그릇에 소스를 담고, 남들이 모조리 구워 먹는 것을 삶아도 보고, 무언가의 조합과 충고를 가뿐히 무시해 보기도 한다(물론 성공의 맛은 극히 일부다).
다리를 떨고, 게임도 하고, 밥그릇을 잠시 밀어 넣고 남은 일을 마저 하다가 한참 뒤에 와 본다. 예쁜 장식도, 테이블 스푼 계량도, 어떠한 순서도 없다. 대신 내가 취(取)할 만큼만 먹는다. 오만하되 이기적일 수는 없다.
삶의 아주 많은 부분은 내 뜻대로 할 수 없다. 모든 것을 무시하고 뜻대로만 살 거면 이름 모를 산 중턱의 암자조차도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인간군상을 잊어버릴 만큼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저들의 모습대로 살도록 강요받고, 눈치 보고, 허울을 가득 씌운다.
그러니 하루, 아님 열 번에 한 번은 내 모양대로 먹고 싶다. 어쩌면 너무나도 인간적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