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회고의 서재] 밤새 나를 위해 끓여냈던 한 그릇

by 제이손

큰절 한번. 뒤를 돌아 다시 한번 목 인사. 마지막 눈 인사.

너무나도 낯설고 두려운 하룻밤. 그다음 날은 생면부지 또래와 맞추는 손과 발의 모양새.

이튿날에는 잠을 청하기도 전에 우르르 뛰쳐나가 엎드려 뻗쳐서 목이 쉬어라 소리를 질렀다.


다음 날부터 나는 이름 대신 번호로 불렸다.

총과 칼을 매고 뛰어다녔고, 악에 받쳐 산등성이를 올라탔고, 호수 하나를 산머리까지 뒤집어놓는

수류탄도 던져보았다. 발에 물집이 다 저렸지만 밤을 쇠도록 멈추지 않는 걸음.

잠깐의 휴식 동안 건너편에 보이는 성냥갑보다 작은 아파트 불빛만 보았을 뿐인데,

그 집 거실 텔레비전이라도 보일 것 같아 뚫어져라 응시한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할 만했지만, 내 이름은 없어졌지만,

이상하게도 사무치게 생각났던 이름이 있다.

모포를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가느다란 후레시에 의존한 채 눈물 젖은 종이를 구겨대며 적었던 그 이름.

진흙탕에서 모두와 어깨동무를 하고 목 놓아 부르짖었던 그 이름,

초소를 지키는 와중에도 오뉴월 달빛에 문안 인사를 몇백 번이나 실어 보내었던 그 이름,

그리고 그분이 지어주신 밥이 너무 먹고 싶었다.


몸 건강히 자대에 가게 되었고 내 이름을 다시 돌려받았다. 조금 후 첫 휴가를 나왔다.

대구로부터 세 시간을 바삐 달려 온 집. 그분의 이름을 얼른 부르고 싶어 비밀번호를 서둘렀지만

문틈부터 박차고 나오는 소리는 온전한 내 이름.


엉겨 안고 바쁜 눈물의 인사를 하는 와중에 코를 감싸는 고소한 냄새. 군복을 벗어던지고

대충 세수만 한 채, 앉은 식탁 자리에서 그 음식 이름도 궁금해할 새 없이 밥을 말아

한 대접을 말끔히 비웠다.

내 인생에 가장 맛있었던 한 그릇.


그 음식의 맛은 기억나지만 이름을 매번 햇갈리곤 했다. 곰탕이었나 설렁탕이었나.

둘 다 하얗고 고소하니 말이다.

나중에야 내가 집에 오기 전날부터

내 입에 먹이겠다고 밤새 지켜 앉아 곰솥을 끓여내었다는 이야기와,

그렇게 거품을 떠내고 거르는 일도 한 두 시간의 품이 드는 게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늦게 알고 나서야 음식 이름을 겨우 알게 되었다.


사실 곰탕인지, 설렁탕인지 그 이름을 애타게 찾지는 않았다.

내가 매번 애타게 찾고 싶던 이름은

훈련소에서 강제로 잃어버린 내 이름도,

식탁에서 허겁지겁 밥을 말아 넘기던 음식의 이름도 아니었다.


입대 전날 밤 짧게 잘린 내 머리에 눈물 지으신,

가스불을 밤새 지켜내며 아들 입만 생각하며 기다리신,

제 자식 먹이겠다고 불볕더위를 이기고 두 손 가득 채워 면회를 오신,

그분의 이름일 뿐이었다.

작가의 이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