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일기장] 전염의 또 다른 공포

by 제이손

밤 아홉 시가 되면 모두가 살아있지만 죽은 척을 했다.

거리의 작은 인기척마저도 무지한 속삭임으로 치부되던 때였고,

행여나 수를 넘어 모여 앉는 행위는 기사로 발행될 정도였다.

그 당시 나는 약한 비염 증상이 있었는데, 그 해 봄에는 대중교통을 타는 것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보다 더 무서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약국 앞에서 줄을 서며 서늘한 공포를 느꼈고, 이 틈으로 폭리를 취하던 장사치들은

비명을 질렀다. 반대편에서는 전염병을 이겨내는 주사의 횟수와 그 성능의 진위에 대해 여기저기에서

다른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 혼란에도 의료진들은 입에서 새어 나오는 비명을 감싸막고

묵묵히 눈물의 사투를 벌였다.


전염되는 것은 병균뿐만이 아니었다.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한 부분을 보자.

페스트가 돌던 당시 오랑시 시내에서는 ‘알콜이 병원균을 세척한다‘라는 소문이 돌며

너도 나도 술을 사 먹는다.

80년이 지난 2020년,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도 여전히 사람은 술을 마시면 병균을 죽일 수 있다고 믿었다. 결국 이란에서는 코로나19를 치료하겠다고 공업용 알콜인 메탄올을 물에 희석해 마셨던

이란인 500여 명이 사망하는, 소설보다 더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


이 말도 안되는 사실은 왜, 그리고 어떻게 소설의 벽을 넘어 80년 후의 현실에도 전염되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허구’의 힘이었겠다. 인간을 하나로 연대한 것 중 하나가 허구라는 것은

그리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디지털 세상의 숫자로만 존재하는 돈, 실체라곤 그 이름을 내건

빌딩 정도 말고는 없는 기업이나 주식(그러나 여전히 실체는 없다). 신기하게도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허구에 대한 믿음이 말도 못하게 잘 통했으며, 몇몇은 ‘정보’라는 이름으로까지 가공되었다.


허구의 믿음은 ‘침묵의 독’이기도 하였다. 서서히 혈관을 타고 들어와 결국 온몸에 퍼질 때까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절명에 이르기 전에 적절한 방법을 취하지 않으면 결국 본체는 죽고 만다.

화폐, 공동체, 정보, 극에 다다르면서 조용히 엄습하고, 결국 본질은 죽고 만다.

다만 그렇게 되지 않도록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잡아온 것 뿐이다.


코로나19는 정보의 특성 중 ‘전염’과 동시에, 정보의 가면을 쓰고 가공된 ‘허구’의 무서움을 일깨워주었다. 정보는 인류의 구원이지만, 동시에 매우 악한 침묵의 독과 같았다. 독에 중독되지 않기 위해서는

독의 습성을 알아야 하고, 행여나 중독되면 독을 빼내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독의 특징도, 해독의 방법도 알려하지 않은 채로 마구 정보를 전염시켰다. 그 결과는 헤어드라이어로

병균을 죽이려 했고, 입을 벌려 분무기로 소금물을 뿌렸고, 송전탑을 불태우는 것으로 이어졌다(2020년 초 유럽에서 5G 무선통신망이 바이러스를 전파시킨다는 가짜 뉴스가 돌았고, 실제로 시민들이 기지국과 송전탑에 불을 지르는 일이 발생하였다).

게다가 한 동안은 그런 개탄스러운 일이 있던 것조차도 대부분이 몰랐으며,

일부는 여전히 옹호하고 있었다.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제일 위험하다고 했다.

보이는 것만, 그리고 아는 것만 받아들이려는 본능,

서서히 본질을 죽이는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이다.



뉴시스(2020, 04) 이란, 메탄올 마셔 5000명 중독·525명 사망

서울경제(2020, 04) 5G 때문에 코로나에 감염된다고? 유럽서 통신탑에 방화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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