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 차이 나는 삼촌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첫 직장에 취업하셨다. 취업 합격 전화를 받았을 때 마침 같이 있었는데, 전화를 받으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며 허리를 숙이며 보이지도 않는 분들에게 꾸벅 인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거의 17년이 지났고 나 역시 사회초년생이 되어 직장생활 3개월차에 접어들었다. 삼촌 역시 몇 번의 이직을 거쳐 나름대로 좋은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삼촌께서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가 중고등학생이 될 때쯤부터인가, 날 볼 때마다 '인생 별 거 없다~ 재미있게 살자~'라는 말을 반복하셨다. 그때는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하시는 것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솔직히 중고등학생 때에는 '인생 별 거 없다.'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세상에는 흥미로운 일이 넘치고, 당시 나는 내가 노력만 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떡잎, 아니 줄기세포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10년, 20년 뒤에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에 대해서 기대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인생 별 거 있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해도 적어도 내 주변 일정 영역에 대해서만큼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멋진 어른이 될거라고 생각했다. 중고등학교 내내 전교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매우 강했다. 한다면 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재미있게 살자'라는 말에는 동의하기는 하였으나,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기에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고통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기에 사람은 무엇이든 재미있는 일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내가 중고등학생 시절 공부에 매진했던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아주 조금은 공부가 재미있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친구들이 물으면 공부가 재미없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조금 재미있었다. 당연히 공부가 조금 힘들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지만, 지금 잠깐 힘든 과정을 견디면 어른이 되고 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하며 잠깐의 '노잼' 시기를 견뎌냈다.
사실은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삼촌은 만날 때마다 '파덕아~ 인생 별 거 없다~ 재미있게 살자~'라는 말을 반복하셨고, 여전히 나는 그 말을 도대체 왜 만날 때마다 하시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20대 초반의 나는 물론 학점관리를 해서 로스쿨에 가야 하니까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게 살기도 했다(지금 생각해 보면 더 재미있게 놀 방법도 무궁무진했지만 그 때는 몰랐다). 인생에 별 게 너무 많은 시기였다.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대학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맨날 술게임에 지기만 하면서 술을 마시고, 전공수업 들으면서 나름대로 꿈꿔왔던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 보고, 광화문에서 촛불집회도 나가 봤다.
로스쿨에 가서는 정말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당연히 나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도 세상에 정말이지 많았을 것이고, 어쩌면 내가 했던 힘든 시간이라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별 거 아닌 시간이였을 수도 있다. 아무튼 그 때 '인생 별 거 없다.'라는 말이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어떤 취지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구나, 정도는 어렴풋이 개념이 잡히기 시작했다. 아침 10시부터 밤 11시까지 매일 학교에 가서 판례를 미친듯이 외우고 미친듯이 답안지를 쓰고, 그 과정에서 밤에 남몰래 울기도 하고, 때로는 시험에 떨어지는 생각을 하면 불안해서 잠이 안 오기도 했다. 우울과 불안과 무기력이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그럼에도 그때는, 변호사시험에 합격만 하면 '별 거 아닌 인생'이 '별 거 있는 인생'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변호사로서 내가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할 만큼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막연하게나마 변호사가 되면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나름대로 재미있는 인생을 살 거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고, 군법무관 생활을 하면서, 전역하기 전 해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이 쭈욱 이어졌다. 취업에 대해서 별 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라도 되겠지, 어디든지 취업하겠지, 어쩌면 인권변호사가 될지도 모르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전역하는 해에, 어쩌다보니 인권단체에 가까운 곳에 합격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합격전화를 받자마자 또 다른 로펌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인권변호사가 될 것인가, 그냥 평범한 로펌 변호사가 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다가, 주변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받고 결국에는 돈부터 벌어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처음부터 인권변호사를 하면 훗날에 진로 변경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며, 일반적인 변호사의 업무를 해야 견문이 넓어질 수 있다며, 기득권의 입장도 한 번 대변해 봐야 인권활동도 나중에 잘 할 수 있지 않겠냐며, 네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나중에도 충분히 할 수 있는게 아니냐며.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지금은 흔히 말하는 N대 로펌의 하나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만간 3번째 월급을 받는다. 솔직히 말하면 좀 힘들다. 객관적으로 따졌을 때 내 일이 많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매일같이 10시 이후에 퇴근하는 다른 어쏘 변호사님들과 비교해 보면 업무량이 많아서 힘든 것은 아닌 것 같다. 사실 내가 배정받은 팀에 성격 더러운 변호사님이 몇 분 계시다는 '썰'을 듣기도 해서 걱정했는데, 적어도 아직까지는 심각하게 성격에 하자가 있는 파트너변호사도 없는 것 같다. 인적 리스크라고 할 만한 게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뭔가 힘들고 불안하고 때로는 지친다. 시간에 쫓기며 여러 사건을 핸들링해야 해서 그런 걸까.
친구들에게 내가 처음 합격한 직장에 갔으면 지금쯤 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푸념도 해 보았다. 하지만 그 직장에 갔더라도 나름대로 힘든 점이 있었을 거라고, 인권단체라고 꼭 좋은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닐 수도 있다며, 하는 일에 비해 보상이 적어서 힘든 점도 있었을 거라고 나를 위로해주었다. 사실 틀린 말이 아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해 보아도, 어쨌거나 3개월만에 퇴사하는 건 말이 되지 않으니, 최소한 1년이라도 버텨 보라고, 이왕이면 2~3년정도는 버텨 보고, 너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보는 건 어떻겠냐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이성적으로 보면 합리적인 결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지금 직장이 힘들고 지치지만 그래도 3개월만에 그만두는 건 조금 아닌 것 같다. 그래도 1년은 채워야지. 객관적으로 힘들 만한 상황은 아니다. 주관적으로 내가 그 상황을 좀 힘들다고 느끼는 것뿐이지. 그러므로 자기최면이 좀 필요하다. 일이 힘든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나쁜 것도 아니다. 시간이 조금 촉박한 일들이 있고, 여러 가지 일을 한 번에 처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우선순위에 따라 하나씩 차근차근 해내면 되는 일이다. 하나씩 각개격파한다면 전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원래 인생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우리 부모님도 이런 식으로 30년을 직장생활을 하셨으니까.
그러니까, 인생은 원래 별 거 없는 일이다. 대단할 게 없는 인생이기 때문에 우리는 늘 재미있게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재미있게 살지 않으면 별 거 없는 인생이 더 하찮아질 것이므로. 인생 별 거 없다. 재미있게 살자. 삼촌의 말씀이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간다. 내일 월요일에 10시 넘어서까지 야근을 할지도 모르지만, 원래 직장인의 인생이란 그렇게 야근하면서 사는 거지. 10시 반이 훌쩍 넘어서 집에 오더라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게 있으면 되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품으며 이번 주말에는 방울토마토, 해바라기, 물망초 씨앗을 심었고, 넷플릭스에서 <스파이 패밀리> 시즌1을 정주행하기 시작했고, 오랜만에 목욕탕에도 가 보았다.
별 거 없는 인생, 재미있게 살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