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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일기(8): 입사 2달, 왠지 모를 불안감

by 장파덕

10월 1일부로 입사한 지 2개월이 지났다. 불과 두 달 전, 아무것도 모른 채로 입사했던 게 불과 엊그제...같지는 않다. 2달 사이에 꽤나 많은 일이 지나간 것 같다. 2달 동안에 삶에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행히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전역한 동기들, 심지어 내 입사 동기와 비교해도 난 지난 2달 동안 정말이지 업무량이 적었다. 사실은, 그래서 군 동기들이 나를 정말 부러워하곤 한다. 로펌에서는 매일 '타임'을 찍는데, 정확히 말하면 '타임 시트를 작성'하는 것을 '타임을 찍는다.'라고 말한다. 즉 매일 구체적인 업무와 그 업무에 실제 소요된 '시간'을 기재한다. 실제 소요된 시간을 기재하므로 근무시간과 무관하다.


한 달에 보통 근무일이 20~22일 정도가 되고, 8시간 사무실에 앉아 있어도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 간간히 휴대폰 쳐다보는 시간, 너무 잡다한 업무라서 타임 찍기 애매한 시간 다 빼면 사실 저녁 6시까지 바쁘게 일해도 하루 5~6시간 정도 타임을 찍는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우리 팀 기준으로 어쏘 변호사들 평균 타임이 150시간 정도 된다고 한다. 결국 하루 '실제 근무시간'이 7~8시간은 된다는 뜻이고, 결국 그 뜻은 (주말출근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하루 최소한 2~3시간은 야근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8월 한 달 동안 내가 찍은 타임은 평균의 1/3도 되지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널널했다. 월급을 받기가 민망할 정도로.


솔직히 그때는 편했다. 야근을 한 날은 일주일에 하루 정도에 불과했고, 대부분의 날은 하루 2~3시간 정도 일을 했다. 심지어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할 일이 없기도 했다. 출근해서 법률신문을 읽고, 밀린 카카오톡과 인스타DM에 답장하고, 가져온 책을 한 50쪽 읽고, 듀오링고로 외국어 공부를 하고, 인스타-페이스북-네이버뉴스를 순회하다가, 이래도 저래도 시간이 남으면 블로그에 글을 썼다. 친구들이 '너 로펌 가서 바쁜 줄 알았더니 블로그에 글이 꽤 자주 올라온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좀 민망했지만, 앉아서 휴대폰만 보면서 시간 축내는 것보다는 법률신문 읽고, 외국어 공부 하고, 블로그에 글 쓰는게 조금이라도 낫지 않나 싶었다.


사실, 9월이 되면 으레 로펌에 취업한 법무관 동기들처럼 미친듯이 바쁠 줄 알았다. 그런데 9월은 당연히 8월보다는 바빴으나, 여전히 평균적인 타임의 1/2수준으로 타임을 찍고 마무리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1주일에 하루 꼴로 1~2시간 야근 하는 것 외에는 매일 '칼퇴근'하였다. 다행히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하는 날은 없었지만, 몇몇 날은 하루 2~3시간 일하고 나면 할 일이 없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법률신문을 읽고, 밀린 카카오톡과 인스타DM에 답장하고, 가져온 책을 한 50쪽 읽고, 듀오링고로 외국어 공부를 하고, 인스타-페이스북-네이버뉴스를 순회했지만, 종착점인 '블로그 글 쓰기'까지 오는 날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9월이 되면서, 회사에 있는 동안 왠지 모를 불안감이 지속되기 시작했다. 일이 많아서 정신없이 바쁜 날이든, 일이 없어서 긴 시간 딴짓을 하는 날이든 상관 없이,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불안감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변호사의 일이라는 게, 특히 어쏘 변호사의 일이라는 게 언제 어떻게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그런 것이 아니겠냐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파트너가 '장변 신건 좀 맡아주게'라고 말하면서 엄청나게 두꺼운(정확히 말하면 용량이 큰) 사건기록을 던져주거나, 갑자기 '장변 원래 이거 김변이 맡던 사건인데 자네가 도와주게. 내일까지 준비서면 작성해 주게'라고 엄청나게 촉박한 업무를 던져준다거나..


사실 지금까지 업무가 많지 않기는 했던 이유는, 내가 우리 팀에 누군가의 후임자로 들어온 게 아니라 순전히 인력 보충으로 들어왔고, 그래서 나에게는 8월 이후 새로 수임한 사건 위주로 배당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의 사건인 만큼, 소장이나 답변서를 작성하는 게 주된 일이고, 그러한 서면을 작성하려면 의뢰인으로부터 자료를 받고, 미팅을 진행하는 등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그동안 그리 바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웬만큼 큰 로펌에서 일하는 이상 적어도 하루 2~3시간의 야근은 불가피한 것이라는 것을 이미 인지한 상태에서 입사하였다. 입사 첫 주부터 '우리 팀 평균 타임은 150시간이에요'를 들었다.


그러므로 언제 어떻게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늘 불안하다는 말은 타당하지 않은 원인인 것 같다. 법무관 시절, 송무장교로 일을 할 때도 갑작스럽게 온나라 공문으로 신건이 배당되곤 했다. 육본이나 국방부에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공문으로 새로운 사건을 내게 주곤 했고, 때때로는 하루에 2~3건씩 배당되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쌍욕을 했지만, 그렇다고 송무장교를 하면서 내가 어떠한 불안감에 빠져 살지는 않았다. 그냥 신건을 받으면 욕을 하면서 어떻게든 답변서를 썼다.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실무 부서에 연락해서 자료를 받았고, 때때로 실무자를 만나서 얘기를 듣기도 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불안한 이유는 '언제 어떻게 일이 생길지 모른다.'라기보다는, '언제 어떻게 파트너/의뢰인으로부터 연락이 올지 모른다.'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것 같다. 물론 송무장교로 복무하던 시절에도 법무실장님이 나의 상급자로 있었다. 하지만 법무실장님은 대체로 송무에 큰 관심이 없으셨고, 전적으로 나를 믿고 맡겨주셨다. 중요 사건 한두 건에 대해서만 보고를 받고 관여하셨다. 애초에 행정청 또는 국가 그 자체의 대리인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의뢰인이라고 할 존재가 없었고, 굳이 의뢰인이라고 한다면 연관된 실무 부서의 실무자들이 있었는데, 나나 그들이나 군인/군무원이었기에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로펌에서는 늘 커뮤니케이션에 민감해야 한다. 너무 많은 예의범절이 요구된다. 파트너변호사 중 어떤 분은 이메일을 선호하고, 어떤 분은 전화를 선호하고, 어떤 분은 메신저를, 심지어 어떤 분은 카톡을 선호하고 반대로 어떤 분은 모름지기 어쏘가 궁금한 게 있으면 파트너 사무실에 방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법원에 문서를 제출할 때 담당변호사 이름을 기수 순으로 쓰지 않았다고(즉, 본인 이름이 제일 앞에 오지 않았다고) 조언의 탈을 쓴 쓴소리를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변호사님 그거 좀 권위의식이 지나친 것 아닌가요?'라고 말했을 나지만, 만나이로도 30에 가까워지는 나는 세상 모든 부조리에 맞서기엔 지쳐버렸다.


법무관 시절에는 상급자가 법무실장님 한 명 뿐이었지만, 로펌에 오니 상급자가 너무 많다. 우리 팀에는 어쏘가 10명인 반면 파트너는 거의 30명 가까이 있다. 물론 내게 업무를 주로 지시하는 파트너는 10명도 안 되는 것 같지만, 그래도 10여명의 소통 스타일을 일일히 파악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어떤 분은 정말이지 격식을 따지지 않고 소통하시지만, 어떤 분은 꽤나 격식을 중시한다. 차라리 나에게 일을 시키는 파트너가 3명 정도만 되어도 내가 어느 정도 파악이 되고 예상이 되고, 개인적으로 친밀도를 쌓을 시도라도 하겠는데 10명이 넘어가니 친밀도를 쌓을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 사실 문제는 파트너와의 소통만이 아니다.


물론 아직 의뢰인과의 소통을 많이 해 보지는 않았지만, 의뢰인과의 소통도 굉장히 내게는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이다. 다행히도 우리 회사는 그래도 규모가 있는 회사라도 기업 고객도 꽤 있는데, 아무래도 기업 고객들은 그래도 다들 점잖고 예의바르신 편이다. 다만 그래서 오히려 더 격식을 따져야 할 것 같다. 회사 대 회사의 소통이고 내가 회사를 대표해서 의뢰인 회사에 연락하는 일이다 보니, 아무래도 표현 하나하나에 더 공을 들여야 할 것 같고, 혹시나 수신자나 참조를 잘못 걸거나, 잘못된 표현을 할까봐 불안하다. 예전에 사명이 'OOOO 주식회사'인데 '주식회사 OOOO'으로 써서 (대단히 점잖았으나 분명한) '클레임'을 듣기도 했다.


개인 고객들은 그나마 엄격하게 예의나 격식을 따져야 할 필요는 없는 경우가 많으나, 아무래도 조금 더 '뽕을 뽑아먹으려는' 경향이 강하신 것 같다. 내가 볼 때는 별 것 아닌 일에 자주 전화하는데, 아무래도 파트너 변호사는 나이가 있으시니 나같은 젊은 어쏘에게 조금 더 편하게 전화하시는 것 같다. 파트너 변호사님들 보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얘기 같으면 딱 끊으시던데 나는 아직 그럴 만한 용기가 없다. 그리고 은근히 요구사항이 많으시다.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데 자꾸 해달라고 하신다. 그래도 작은 로펌에서 만나는 개인 의뢰인들은, 얘기를 들어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진상'들이 있다고 하니 이 정도면 오히려 감지덕지해야 한다.


누가 변호사를 '골방에 틀어박혀 혼자 일하는 직업'이라고 하였는가. 변호사야말로 쉴 새 없이 다른 사람과 소통해야 하는 직업이다. 파트너라면 어쏘 변호사와, 어쏘라면 파트너 변호사와 소통해야 하고, 당연히 의뢰인과도 소통해야 한다. 어쨌거나 당위적으로는 어쏘든 파트너든 '동료 법조인'으로 존중해야겠지만 현실에서는 파트너가 어쏘의 '윗사람'에 해당하니 어쏘인 나로서는 파트너와의 소통이 불편하고 때로는 불안하다. 얼마나 내가 예의를 차려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의뢰인과의 소통은 더욱 어렵다. 파트너는 어쨌든 같은 회사 사람이지만 의뢰인은 외부인이고, 내가 말을 잘못하면 회사 전체 이미지를 망칠수도 있다.


이러한 소통의 불안함을 해소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 그냥 '존버'하는 것이다. 그래도 1~2년 정도 지나면 이러한 소통 문제도 익숙해지지 않을까? 익숙해질 수 있는 성격의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둘째, 매일 명상하는 것이다. 주 3~4회 운동하러 가는 것도 힘든데, 그 사이에 친구들도 만나야 하는데, 명상까지 할 시간이 있는지 모르겠다. 셋째, 2년 뒤에 법조경력 5년을 채우니 내년에 경력판사 지원을 하면 된다. 하지만 정당 활동 이력이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공부하기 싫다. 넷째, 내가 파트너가 되거나 개업을 하면 된다. 의뢰인과의 연락은 여전히 성가시겠지만 수임료를 내가 직접 챙기면 그래도 할만 하지 않을까.


하지만 파트너가 되려면 이 회사에서 최소 5~6년은 버텨야 하고, 개업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아무리 빠르게 개업한다고 해도 2~3년 정도는 어쏘로 실무경험을 쌓아야 하지 않을까. 결국 시간이 지나며 익숙해지길 바라면서, 나름대로의 마음챙김에 나서야 하는 게 답이다. 정신과 약을 조금 늘려야 하나 싶지만, 못 버틸 정도는 아니라서, 그리고 약에 의존하긴 싫어서 일단 선택지에서 빼기로 한다. 따뜻한 차를 마시면 마음이 좀 차분해지려나. 생일선물로 받은 오설록 티백 세트를 꺼내봐야겠다. 어쩌면 목욕탕에서 아무 생각 없는 시간을 좀 보내다 보면 머릿속이 조금 차분해질지도 모른다. 말만 이렇게 하고 자주 가진 않는다.


차분함이 필요한 시간이다. 뭐든지 천천히 하면 도움이 될까. 어쩌면 '알빠노' 정신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엄청나게 치명적인 실수가 아니라면, 뭐든 크게 상관 없지 않을까? 설마 짜르기야 하겠어? 알빠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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