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소년소녀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기를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 심각하다라는 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피부에 와 닿는 주제는 아니였다. 하지만, 어릴 적에 분명히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고 배웠는데, 어느샌가 우리나라는 혹한의 겨울과 혹서의 여름만이 남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올 여름에도 푹푹 찌는 끈적한 공기가 피부에 와 닿는 모습을 보니, 이제는 조금 피부에 와 닿는 주제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지난 대통령 선거 토론회에서도 'RE100'이나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같은 주제가 후보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보수정당 후보들의 재생에너지에 대한 태도를 보면, 여전히 우리나라는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조금은 무력감을 느낀 포인트가 바로 이 지점이었다. 개인의 관점에서 노력하는 것이 무의미하지는 않을 테다. 열심히 텀블러를 사용하고,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한 번 산 옷을 오래 입는 등의 노력이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남은 평생동안 텀블러를 이용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탄소배출량을 최대한 줄인다고 한들, 어쩌면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에서 몇 시간 배출하는 탄소배출량보다 못할지도 모른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개개인의 노력이 중요한 만큼, 이 사회 전체가 움직이는 시스템을 바꿀 필요도 크다는 점이 어쩌면 기후위기라는 중요한 문제를 외면하게끔 만드는 이유였다.
사실은 나 한 명이 생활습관을 바꾸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텀블러를 사용하려고 노력하기는 하지만, 매일매일 씻기가 귀찮아서 텀블러를 들지 않고 출근하는 날도 많다.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곳을 자가용으로 간 적도 꽤 있었다. 멀쩡한 옷이나 물건을 단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버린 적도 많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삶의 방식, 경제운영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은 말할 것도 없이 어려운 일이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기후위기나 에너지 전환과 같은 문제가 이슈가 된 것 자체만으로도 사실은 성과이기는 하다. 하지만 여전히 원자력이나 화석 연료를 옹호하는 주장이 주류인 모습이었다.
아무튼, 기후위기는 인류문명의 앞날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문제이고, 이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변화를 만들어낼 것인가?'이다. 특히 요즘 미국의 트럼프와 같은 이른바 대안우파 진영에서는 기후위기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는 문제는 더욱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변화는 정치권이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도 지적하듯, 임기 4~5년의 선출직 정치인들은 '당장' 큰 일이 생길 것 같지도 않고, '당장'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는 점에서 기후위기 문제를 경시한다. 결국은 시민사회단체가 정치권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 책은, 우리나라 청소년단체에서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이른바 '기후위기 헌법소송'에서 어떻게 아시아 최초로 국가의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책임을 명시한 판결을 이끌어낼 수 있었느냐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청소년들을 주된 독자로 삼고 있지만, 기후위기의 원인, 중요성, 대응 방안, 기후위기 소송의 과정에 대해 아주 쉽고 명료하게 쓰고 있기 때문에 기후위기 대응에 관심 있는 성인들이 읽어도 손색이 없는 책이다. 사실 나도 기후위기 이슈가 중요하다는 점은 알지만, 구체적으로 기후위기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국제사회나 한국사회가 기후위기 이슈에 대응해 왔고, 어떤 대응이 필요한지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였다.
특히,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기후위기를 '소송'이라는 절차를 통해서 해결해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는 못했다. 놀랍게도 2024년에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는, 2031년 이후의 국가 차원의 탄소배출량 감소 목표를 아예 정하지 않은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하였다. 아시아에서는 이러한 기후 위기 소송에서 법원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사례가 처음이라고 한다.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와 관련하여,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최소한조차도 보호하지 않는다는 이유, 즉 과소보호금지원칙의 위반을 이유로 위헌결정이 난 두 번째 사례라고 하니, 법조인으로서도 꼭 알아야 하는 결정례인 것 같다.
헌법소송이라는 형태를 통해 정부가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야 할 법적 의무를 부과하였지만, 이러한 승리를 결코 법조인들의 승리라고 볼 수는 없다. 청소년기후행동을 비롯한 청소년 단체들과, 기후위기 해결에 관심을 갖는 수많은 미래세대 당사자들, 그리고 세대 간 연대를 실현한 기성세대들의 승리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의 세대를 뛰어넘는 연대가 있었고, 법조인들은 단지 이들의 투쟁 과정에서 기술적 도움을 준 것에 불과하다. 이 책의 저자인 이병주 변호사님도 우연히 청소년 기후 캠프에 참여하게 되면서 청소년 기후 소송에 합류하게 되었으니, 결국 청소년단체의 적극적인 활동과 연대가 이러한 성과의 기반이 되었다.
사실은, 90년대생들은 슬슬 기성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비록 아직은 많은 조직에서 사회초년생에 불과하지만, 90년대 초반생들은 슬슬 대리, 과장급 중간관리자가 되어가고 있다. 많은 언론에서 20대들, 특히 20대 남성의 보수화(나아가 극우화)를 우려하는 기사를 쏟아낸다. 실제로 내 주변 친구들을 보더라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여러가지 가치들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눈에 보이는 가치, 예컨대 돈이나 권력만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다. 당연히 기후위기에 심각성을 느끼는 90년대생들도 많지만, 동시에 상당수의 90년대생들은 기후위기에 별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기후운동과 같은 시민운동에 반감을 드러낸다.
당연히 기성세대가 되어 가면서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을 갖게 되니까, 90년대생들이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면서 기후위기를 비롯한 오늘날의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90년대생들의 후속 세대들에게 조금 더 큰 희망을 걸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후위기의 시대에 태어나서, 기후 재난의 시대에 삶을 마감할지도 모르는 21세기 출생자들이 어쩌면 기후위기와 같은 체제의 모순에 더 큰 문제점을 느끼고, 더 큰 연대를 만들어내고, 더 큰 사회적 전환을 이루어낼 수 있지 않을까? 90년대생들은 이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떡잎'이라기에는 너무 늙어버린 걸지도.
요즘 애들은 맨날 스마트폰만 보고, 틱톡이나 쇼츠 같은 짧은 동영상만 봐서 미래가 걱정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요즘 아이들의 문해력을 개탄하는 보도도 뉴스의 단골 소재이다. 그런데 스마트폰 이전에는 컴퓨터 중독이 있었고 그 전에는 티비 중독이 있었고, 1940년대에 나온 <톰과 제리>를 보면 젊은이들이 맨날 '전화통'만 붙잡고, 라디오만 끼고 사는 걸 비꼬는듯한 장면도 나오더라. 어쩌면 21세기 출생자들은 최초로 AI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물론 생성형 AI 사용 과정에서 엄청난 탄소배출이 이루어진다는 주장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어쨌거나 이제는 그들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떡잎'이 아닌가.
나는 22세기를 보지 못하고 죽을 가능성이 높지만, 신세대들은 22세기를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과연 2100년, 지구 평균 온도는 몇 도일까? 파리 기후협약에서 인류는 산업화 이전과 비교하여 지구 평균 기온을 1.5도 이내로 상승시키도록 전 지구적인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이미 지구 평균 온도는 산업화 이전과 비교하여 1.5도 상승하였다고 한다. 학자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멀지 않았다고 말한다. 2100년에 노년을 보낼 21세기 소년소녀들이 지구를 구원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제는 기성 세대로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세대 간 연대에 앞장설 것임을 다짐한다.